“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 밖에 없다.” 3년 전 이런 우스개를 듣고 ‘빵 터진 적’ 있다. 사실 말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말도 안하고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과욕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듯 작년부터 초코파이 광고 카피가 바뀌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라고. 이번학기 이 말을 해주고픈 상황이 있었다. 졸업논문을
재미가 참 중요한 때입니다. 재미없는 것은 시시하거나 지리멸렬하고 지루한 대접을 받고 있죠. 재미없는 것이 언제 대접받았겠냐마는, 요즘은 독특한 발상과 의표를 찌르는 재치 없이 각광받는 콘텐츠를 보기 힘듭니다. JTBC에서 핫하게 떠오른 썰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캐스팅과 색다른 연출로 책상 하나 있는 스튜디오에서 큰 성
현직기자 시절, 학내 선거에 관심이 없는 학우 개개인을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당신들 일인데 왜 남의 일처럼 생각하느냐고 말입니다. 기자 신분이었던 탓으로 저는 이미 선거판 속의 사람이었습니다.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올렸죠. 하지만 기자 신분을 벗은 지금, 편집국 밖에서 선거를 바라보니 학우들은 처음부터 선거에서 배제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우들에
칼등·하교만 반복하는 내게 학교일은 관심 밖이다. 이 글의 주제만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부분 수강신청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의견을 하나씩 듣다보니 이번 학기 수강신청 때 겪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8월 중순, 지난 학기에 겨우 주 전공을 마친 나는 제2전공과목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문화콘텐츠융합전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발을 구르던 이들은 임시방편으로 주변의 갖가지 것들을 이용해 비를 피하며 총총걸음으로 흩어졌습니다. 다양한 ‘갖가지 것들’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건 바로 중대신문입니다. 학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구하기도 쉽고 생각보다 비를
중앙대 양 캠퍼스를 매일 오가며 이번학기를 보냅니다. 아침엔 안성캠에서 수업을 듣고 서울캠으로 올라가 스터디를 가지다 보면 하루가 짧습니다. 한달 동안 왕래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양 캠퍼스를 비교하게 됩니다. 같은 이름의 중앙대를 다니고 있지만 다른 두 개의 중앙대를 다닌다는 느낌이 듭니다. 중앙대를 향한 변화의 훈풍은 안성캠을 비껴간 채 부는 것 같습
대학생에게 ‘졸업’은 달갑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번듯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상황에서, 이제는 학생이라는 신분마저 잃게 생겼다. 졸업이 즐겁지 않은데, 졸업앨범 촬영이 기쁠리 있을까. 6만 원에 가까운 졸업앨범비와 메이크업, 옷, 구두까지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비용은 수십만 원에 이른다. 가뜩이나 각종 시험 응시료와 책값 지출이 큰 와중에,
중대신문의 열혈독자는 아니라도 미지근한 독자로서 ‘YES썰’은 참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매 주 신문을 챙겨 볼 열의는 없지만 그래도 학교 소식이 가끔 궁금하긴 했거든요. 이런 저에게 팟캐스트는 적격이라는 생각을 했죠. 흔들리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소설가가 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 방송은 부담 없이 듣
법학관을 지나가다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총학생회가 내걸은 플래카드인데요. “잠깐! 독도침탈야욕의 일본제품 구매는 다시 생각해주세요”였어요. 문과대 해방광장 쪽에도 비슷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일본제품 구매를 다시 생각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이걸 무슨 의도로 내걸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플래카드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대신문 명함이 무색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한 사명감이었지만 알리고 전한다는 기쁨에 매번 굽은 허리를 곧추 세웠지요. 동료 기자와는 우스갯소리로 “학부생 중에 학교 사정을 이만큼 아는 애들이 어디 있겠냐”며 피식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쓰기 위해 알았습니다. 자연스레 학교 사정은 곧 ‘내 일’이었고, ‘내 얘기’였지요.
다이어트와 성적표는 교훈을 줍니다. 변화와 발전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약속이 시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습관은 손과 머릿속에 머물러 앉으며 시간은 가야 할 길을 점점 희미하게 문지르죠. 따라서 발전과 변화는 이전의 것들을 떨쳐내는 희생을 선결과제로 요구합니다. 발전과 변화에 희생이 불가피함을 사실로 가정한다면, 셋은 형제와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