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손을 잡아줄, 당신이 손을 잡아줄 이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당신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함께할 당신은 ‘장애인’입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과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장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성이죠. 개성과 더불어 사는 삶을 향해 기자는 ‘서울정애학교’에 발을 디뎠습니다. 중앙대 장애학생 도우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좌측 사진) 왼쪽부터 차례대로 준석이, 유진이, 성민이, 서율이, 지훈이의 모습이 보인다. (우측 상단 사진) 핼러윈 데이에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측 하단 사진) 다 같이 힘을 모아 교실을 청소 중이다. 성민이는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지훈이는 분리수거를 하고, 유진이는 책상을 닦는 등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협동한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 사건은 몇 해 전 여론을 뜨겁게 달궜죠. 어렴풋이나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감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장애인을 삶에서 마주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들의 삶은 또다시 기자의 마음에서 멀어졌죠. 드디어 지난해 3월 서진학교가 개교했습니다. 서진학교 설립과정을 담아낸 영화 <학교 가는 길>을 보고, 기자는 더 이상 이들과 멀어지지 않기로 결심했죠. 

  기자는 대학생 자원봉사 플랫폼 ‘서울동행’을 통해 매주 1회씩 약 세 달간 ‘서울정애학교’ A학급을 찾았습니다. A학급의 일원이 돼 수업 활동을 보조했죠. 공립 특수학교 서울정애학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등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죠. 이 공간에서만큼은 장애인이 절대다수입니다. 비장애인인 기자에게 장애인이 중심인 환경은 새로운 세상과 다름없었죠. 장애라는 틀 너머에 살아 숨 쉬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개성으로 가득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알록달록한 얼굴들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의 본명은 가명으로 각색했습니다.) 

  듬직이 성민이 
  성민이는 교실에서 인사를 담당합니다. “차렷, 열중쉬어, 차렷! 안녕하세요!” 성민이는 날마다 칠판에 날짜와 요일을 바꾸는 일도 합니다. ‘듬직이’라는 별명대로 성민이는 A학급의 기둥이죠. 성민이는 친구들 이름도 잘 외웁니다. ‘백경환 선생님’하고 기자를 부를 때도 있는데요. 기자는 반가운 마음을 담아 격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 성민이는 언제 불렀냐는 듯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치명적인 매력쟁이죠.  

  성민이는 이따금 다가와 어깨나 가슴을 툭툭 두드립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A학급을 지원하는 사회복무요원 B씨는 기자에게 다가와 성민이의 행동을 설명해줬습니다. “아! 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툭툭 두드리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해주면 성민이가 좋아해요.” 그 말을 듣고 성민이의 두드림에 답장을 보내듯 기자 또한 성민이를 툭툭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성민이의 입가에는 배시시 웃음이 번졌습니다. 웃음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는 없지만, 성민이만의 방식을 찾아내 교감했다는 사실이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귀염둥이 지훈이 
  지훈이는 자기 옆에 앉으라고 몸짓할 때가 많습니다. 칭찬을 갈구하기도 하죠. 분리수거와 물통에 물 떠오기 등 어떤 역할을 해내고 슬금슬금 다가와 칭찬을 바라는 눈빛을 쏘죠. 엄지를 치켜 올려주거나 냅다 박수를 퍼부어 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온몸을 찌르르 떠는 지훈이 특유의 몸동작은 보는 사람까지 미소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지훈이는 식탐이 많습니다.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벌린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배를 쓰다듬으며 ‘밥’을 외칩니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더 달라고 애처롭게 손짓합니다. 하지만 지훈이는 건강을 관리해야 해서 밥을 더 줄 수 없습니다.  

  지훈이는 어느 날 아빠라는 말을 기자에게 연신 쏟아냈습니다. 기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아빠를 보고 싶은가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업이 다 끝나면 집에 가서 아빠를 만날 수 있다고 다독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사회복무요원 B씨를 찾는 행동이었습니다. A학급을 지원하는 특수교육 실무사 C씨는 지훈이가 여자는 엄마, 남자는 아빠라고 통칭해 부른다고 귀띔했습니다. “아이들과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니 대화는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는 교감하는 것 같아요. 자기표현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제가 알아차리고 대변해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제 존재로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어요.” 

  에너자이저 서율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서율이의 손을 맞잡고 강당을 빙글빙글 내달립니다. 강당을 가득 채우는 서율이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기자의 가슴을 힘껏 울립니다. 이렇게 해맑게 달려본 게 얼마 만인지 기자도 순수한 동심을 되찾은 듯했죠. 서율이는 노래도 좋아합니다. 서율이 자리 한구석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CD 플레이어와 헤드셋이 놓여있습니다. 노래를 틀고 헤드셋을 끼워주면 서율이는 자리에 앉아 책을 가지고 놉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기자의 손을 덥석 잡고 노래에 맞춰 제자리를 콩콩 뛰기도 하죠. 그렇게 서율이와 놀다 보면 기자의 몸은 녹초가 돼 흐느적댑니다. 힘이 넘치는 서율이를 따라서 신나게 놀려면 체력을 단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심전심 준석이 
  준석이는 교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준석이가 나가지 못하게 문을 꼭 지키고 있어야 하죠. 교실을 답답해하는 준석이를 데리고 학교 안을 이곳저곳 산책합니다. 준석이는 교실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는 모자라 학교 바깥으로도 나가고 싶은지 1층 문으로 기자를 잡아 이끕니다. 준석이가 문을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느라 진땀을 뺐죠. 준석이가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타인이 왁자지껄 모인 분위기를 싫어하는 것도 같습니다.  

  텅 빈 강당에 대자로 드러누워 웃고 있는 준석이를 따라 곁에 슬그머니 누웠습니다. 숨소리만 들리는 평화로운 고요에 마음이 편안해졌죠. 기자도 혼자 남겨진 이런 적막함을 좋아합니다. 제 마음에 비춰보니 밖으로 나가려는 준석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또 강당을 벗어나는 준석이를 보며 괜히 정겨웠습니다. ‘너도 나랑 똑같구나!’ 

  반전 매력 유진이 
  유진이는 보통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조용하고 온순한 아이라는 첫인상이 각인돼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유진이가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할 새도 없이 유진이를 따라나섰죠. 문 앞에서 실랑이하다가 놓쳐 버리는 바람에 유진이가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헐레벌떡 유진이를 쫓아갔습니다. 점입가경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유진이와 힘겨루기했죠. 담임 선생님이 와서야 상황은 일단락됐습니다. 마치 인형처럼 여겼던 유진이가 사실은 질풍노도 사춘기 시절 누구나와 같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했습니다. 고집부리고 생떼도 쓰고 학교를 무단 조퇴하고 싶기도 한 평범한 청소년으로 유진이를 바라보게 됐죠. 

  모두의 이름으로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행동과 말이 느리지만 춤추는 걸 참 좋아하던 친구였죠. 통합교육이 이뤄졌기에 기자가 그 친구를 장애 자체보단 개성과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일화 강사(교육학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인을 향한 사회 통합적 인식이 확산하리라 내다봤습니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통합교육을 시작했어요. 통합교육은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유형·장애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또래와 함께 받는 교육을 뜻합니다. 장애학생과 공부한 경험이 있는 20~30대가 사회 중추로 자리 잡는다면 장애인을 향한 차별적 인식은 통합적으로 개선될 거예요.”  

  기자에게 장애인은 이제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성민, 지훈, 서율, 준석, 유진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스몄습니다. A학급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이상 기자와 무관하지 않죠. 장애인과 관계하려는 마음이 하나씩 모여 언젠가 모든 마음이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의 삶이 모두와 관련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그들의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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