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총 9차례의 헌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헌법은 34년 동안 단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논의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기도 했죠. 일각에서는 시대 정신과 미래 가치에 적합한 헌법을 만들어 개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제9차 개헌 이후 정치권에서 벌어진 개헌 논의 과정을 살펴보고 기본권과 정부 형태, 직접민주주의 등 다양한 개헌 쟁점을 살펴봤습니다. 

헌법 개정안에서 서명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제공 KTV
헌법 개정안에서 서명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제공 KTV
3당 합당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 KTV
3당 합당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 KTV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개헌을 제안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제공 KTV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개헌을 제안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제공 KTV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전부 개정된 것으로, 이듬해인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여러 차례 개헌을 논의해왔지만 약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개헌은 이뤄지지 않았다. 1988년 이후 이뤄진 개헌 논의, 그 발자취를 돌아봤다. 

  3당 합당, 그리고 내각제 합의각서 
  1987년 민주화를 쟁취했던 대한민국. 약 2년 후인 1990년 1월에 3당 합당이 이뤄지는데 내각제 개헌이 정치권에서 은밀하게 논의된다.  3당 합당에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정의당, 김영삼이 이끌던 통일민주당, 김종필이 이끌던 신민주공화당이 참여했다. 이로 인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이라는 국회 원내 216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한다. 

  합당 기자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현재의 정치구조가 오늘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민주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당해 10월 말 ‘내각제 합의각서’가 유출돼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무 조건 없이 합당한다고 했던 그들의 선언이 무색해져 버린 순간이었다. 

  이후 민자당 내에서 계파 갈등이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는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내각제 추진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또 다른 당사자였던 김종필 당시 최고위원은 침묵하며 정치권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김영삼 대표는 급기야 내각제 개헌을 정면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해당 파문이 발생한 지 약 일주일이 흐르고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는 청와대에서 단독회동을 가졌다. 해당 회동에서 양측은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로 시작된 당 내분을 수습하고 즉시 당을 정상화하도록 합의했고 내각제 개헌은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합당이라는 정치적 술책을 위해 이면에서 몰래 논의돼왔던 내각제 개헌은 당 정상화를 명분으로 없던 일이 돼 버린 것이다. 

  대통령 묻고 내각제 개헌 
  내각제 개헌은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 사건 이후 7년 뒤 다시 수면 위로 오른다. 1997년 대선 정국에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 대선 후보는 김종필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한다. 이후 양측은 김대중 후보를 단일 후보로 선출하는 ‘DJP 연합’을 구성했고 이후 합의문을 작성·발표하는데, 해당 합의문에는 ‘내각제 개헌’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DJP 연합은 합의문에서 내각제 개헌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DJP 연합은 먼저 독일식 순수내각제로 내각제를 하겠다고 청사진을 밝혔다. 이어 잦은 내각 교체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총리 임명 1년 이내에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없고, 차기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불신임안이 처리되지 않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제’를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DJP 연합은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체제로 국민의 정부를 출범한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에 관한 양측 입장은 점차 엇갈리기 시작한다. 1999년 2월 2일 자민련은 독일식 순수내각제를 골자로 한 헌법 요강을 승인했다. 반면 국민회의는 자민련 발(發) 내각제 공세 강화에 침묵하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후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여공조 약화를 우려한 DJP 연합은 연내 8월까지 개헌에 관한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당해 7월 21일 김대중-박태준 간 회동을 필두로 내각제 개헌 논의의 추진력은 약화했다. 이후 DJP 연합 공조는 내부 갈등을 겪다 2001년에 붕괴했고 그 여파로 내각제 개헌은 지켜지지 못한 채 또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개헌 이야기하는 나쁜 대통령?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이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기 위해 제안된 원포인트 개헌안이었다. 1월 9일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시급한 과제에 집중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는 것이라며 개헌 제안 이유를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국가 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하기 어렵다”며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것을 우려했다. 이어 1회에 한해 임기 4년으로 대통령을 연임하도록 헌법을 개정할 뜻을 밝히면서 국정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헌법이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등 개헌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은 정치권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두고 “개헌은 차기 정부에서 거론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며 국론을 분열하고 국정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논의라고 언급했다. 이어 개헌에 관한 일체의 논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발표했다. 특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당해 4월, 청와대는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각 당의 합의를 받아들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해 발의한 개헌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개헌 정국은 다시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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