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삶 사이를 잇다. 당신의 삶 속으로 찾아갑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의 소개말입니다. 다채로운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함께’에서는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느낀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아리아리 동동’에서는 동아리라는 울타리 아래 학생들과 교감하며 소통하죠. 기자가 연 창 틈새로 누군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맺어진 유대감으로 단절된 저마다의 세상이 이어지길 바라죠. 

  기자는 오랫동안 외딴곳에 고여있었습니다. 기자에게 사춘기 시절은 동성애자임을 차츰 깨달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는 과정이었죠. 남다름을 감춰야 한다는 사실은 기자의 마음을 걸어 잠갔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터놓는 방법은 그렇게 잊혀갔죠. 펼쳐진 상황에 수동적인 판단과 반응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떠밀리듯 살았죠. ‘결핍되고 어긋난 존재’라는 죄의식은 기자의 삶을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사회적 기준에서 낙오했다는 불안은 사회적 당위를 향한 집착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아를 채워줄 그럴듯한 학벌을 위해 쫓기듯 내달려 삼수를 했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기에 그 과정은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끝도 안 보이는 고독으로 가라앉았죠. 

  고독의 밑바닥에 닿는 순간,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과 단절됐던 기자의 마음에는 조그만 창이 나기 시작했죠. SBS 다큐멘터리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 청년(은둔형 외톨이)은 국내 약 3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독사도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청년층의 고독사까지 확산하고 있죠. 고립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적막한 외로움 속에 틀과 벽을 세우다 보면 자아에 갇힙니다. 당위는 자신과 남을 옥죄는 틀이 되고, 자신의 특별함에 얽매인 생각은 소통을 막는 벽이 되죠. 틀과 벽을 세우는 대신 창을 열고 주변의 얼굴을 둘러보세요. 창을 연 만큼 바람이 깃듭니다. 

  창을 열면 바람이 속을 헤집기도 하고 벌레 떼가 덮쳐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창을 여는 것은 분명 가치 있습니다. 인생은 외로움과 괴로움 중 하나를 택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기자는 외로운 단절 대신 괴로운 갈등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꽁꽁 감추고 외롭게 앓기보단 굳이 하는 갈등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죠. 언젠가 또다시 고립으로 기우는 날, 기자가 건넸던 말과 마음을 따라 누군가 기자를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중대신문은 기자에게 널따란 창을 냈습니다. 중대신문에서 써 내린 인연과 취재 수첩은 살아갈 희로애락을 열어줬죠. 삶은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즉 관계로 말미암아 이어집니다. 기자가 그랬듯 여러분도 마음속 창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의 생기를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중대신문!

백경환 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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