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제도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시행 중이다. 또한 핀란드에서 사회 실험 방식으로 진행된 적 있다. 위 국가에서 시행된 기본소득 제도는 금액 규모와 지급방식, 재정 마련 방법 등이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지급 액수보다 합의 수준이 먼저
  기본소득의 요소로 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정기성·현금성이 언급된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충분성을 기본소득 개념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성을 기본소득 정책 시행의 주요 목표로 봤다. ‘생계에 충분하며 문화·정치적 참여가 가능한 수준이 목표’라고 밝힌 것이다. 더불어 판 파레이스는 『21세기 기본소득』(판 파레이스 씀)에서 ‘어느 국가에서나 현행 1인당 GDP의 4분의1 정도 액수를 선택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는 기본소득의 지급수준을 점차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기본소득을 도입할 때 큰 규모로 기본소득 제도를 시작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가 매년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2035년에 1인당 90만원 정도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과)는 기본소득 지급수준에 관한 국민 합의수준이 높아지는 부분을 우려했다. “만약 모든 소득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겠죠? 적절한 비율을 찾아야 합니다. 우선 1인당 GDP가 줄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해당 조건 아래에서 사람들이 기본소득 지급에 관한 합의 수준을 높여가야 하죠. 최종 금액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네요.” 

  목적세와 교정과세 그 사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충분한 재정 확보는 필수다. 현재 기본소득 재원 마련으로 증세가 언급된다. 이와 관련해 금민 이사는 공유부기금을 통한 기본소득 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기본소득 제도는 증세없이 어려울 것 같아요. 증세가 아니라면 알래스카처럼 에너지 사용 등으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공유부기금 명목으로 모아 수익을 창출한 후 국민에게 그 수익을 나눠주는 방법이 있죠.”

  강남훈 교수는 교정과세를 부과해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고 이를 사용해 증세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토지세와 탄소세가 교정과세에 속합니다. 토지세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탄소세는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부과해야 하죠. 이를 위해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수입을 창출하고 해당 수입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목적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목적세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소득의 일정 퍼센트를 납부하자고 합의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위해 소득 5%를 납부하자’고 합의하면 그 액수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죠.” 금민 이사도 목적세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걷은 돈을 기본소득으로 그대로 나눠주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기능은 확실합니다.”

  기본소득, 본질이 다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의 부양 의무자 기준 완화에 따라 기본소득의 불필요성을 언급하는 의견도 있다. 금민 이사는 현행 복지제도를 통해서도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으나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와는 본질이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은 탈빈곤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제도입니다. 기존 복지제도로 국민들의 소득 불평등은 완화해주지 못하죠. 그러나 기본소득의 효과는 모든 소득구간에 걸쳐 비례적으로 소득 격차를 축소하는 데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향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기존 복지와 중복된다며 기본소득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한다. 이상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황에 따라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제도를 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기존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은 맥락이 비슷해요. 기존 제도에서 기본소득을 추가로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돌봄수당과 아동수당은 기본소득으로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민 이사는 기본소득이 현금성 복지는 대체할 수 있지만 공공 사회서비스는 대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급수준이 충분하다면 현금성 복지제도는 대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 등의 서비스는 어려워요. 기본소득으로 기존 복지를 대체할 경우 현재 제도에서 받는 혜택보다 줄어들면 안 됩니다.” 

  강남훈 교수도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공공 사회서비스를 대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복지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는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공공부조가 있어요. 오히려 돈만 지급한다면 복지의 질이 저하될 것이고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될 거예요. 또 사회보험은 보험 가입자들의 권리입니다. 보험 가입자들이 약속한 보험에 든 것인데 이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이상해지죠.” 

  기본소득이라는 우주선이 대한민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여러 사회적 요소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적절한 정책의 시작은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루는 것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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