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해. 자칫하면 매몰될걸.” 기자로 선발돼 처음 교육을 받으러 가던 날, 평소 친분이 두텁던 대학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기자에 임하는 첫날의 설렘은 선배와의 대화에 차갑게 식었으나 이윽고 물음표로 바뀌었다. 조언이라는 선배의 표현에 ‘매몰’이라는 단어는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돌리는 취재처 연락, 화요일부터 시작하는 취재, 목요일에 작성하는 초고와 수많은 피드백, 토요일에 임하는 조판까지. 하루하루를 기사에 쏟아붓는 일상은 말 그대로 매몰이었다. 새벽까지 꺼질 줄 몰랐던 편집국의 불빛은 기사에 갈린 청춘으로 켰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열정을 쏟은 만큼의 결과는 희박했다. 사실을 적었지만 비판의 논조로 기사를 작성했다며 항의 전화를 받았고 답변을 주기로 한 전문가와의 연락 두절은 다반사였다. 그랬기에 기사에 대한 권태는 기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찾아왔다. 인터뷰를 지속할수록 불편함을 드러내는 취재원의 감정은 스스로를 침전하게 했다. 

  이런 기자를 일깨운 건 한 통의 메일이었다. 어린이 차별적 공간 기사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줘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인지하지 못했던 기사의 날갯짓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기자는 기사에 매몰되는 대신 살아남기를 택했다. 살아남고자 기사의 본질을 수도 없이 되뇄고 동료 기자에게 물었다. ‘중대신문에서 해당 내용을 다뤄야 하는 이유’를 질문함으로써 기사가 세상에 나왔을 때, 허점이 존재하는 가리워진 길이 아닌 독자를 향한 열린 길로 뛰어가길 바랐다. 

  팔딱이는 중대신문을 위해 곳곳에 귀를 기울이니 자연스레 본질에서 벗어난 이들의 행보가 눈에 들어왔다. 비대면 상황 속에서도 교육을 이어나가고자 실시된 화상강의 수업에서는 타 학우의 외모를 품평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전공에 대한 배움을 얻고자 마련된 자리임을 망각한 태도였다. 학생 사회의 목소리를 듣고자 소집된 학생총회는 음소거 실시와 채팅 비활성화로 학생들의 입을 막았다. 학생들의 외침을 앞장서서 들어야 할 대표의 모습은 부재했으며 학생총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처사였다. 학내 코로나19 방지를 목적으로 폐쇄한 학생자치공간은 학생대표자의 사적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타학생의 모범이 돼야 할 학생대표자는 폐쇄의 뜻조차 모르는 무지함을 보여줬다. 

  기자의 본분이 독자를 위한 진심 어린 마음인 것처럼 중앙대에 존재하는 저마다의 내면에는 본질이 존재한다. 이를 망각한 모양새는 결코 존중받지 못함을 2년 남짓의 중대신문 기자 생활 속, 빼곡히 적힌 취재 수첩을 통해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본문의 본질을 전하며 그동안 써 내렸던 수첩을 닫으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살아있는가, 아니면 매몰됐는가.”

서민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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