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들이다. 한복 원단의 멋을 살려 정장을 만들었다.사진제공 김리을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들이다. 한복 원단의 멋을 살려 정장을 만들었다.사진제공 김리을

세상에 없던 옷이 탄생했다. 한복 원단을 사용해 만든 정장, 바로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시각과 표현방식은 세상에한 벌 뿐인 ‘리을’만의 옷을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이 ‘리을’이 만든 한복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삼성과 현대를 통해 한국이 떠오르는 것처럼 브랜드 ‘리을’로 한국을 떠올리게 될 날을 꿈꾼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패션을 공부해본 경험이 없다고 들었다. 

  “맞아요. 제가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지냈어요.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대여할 수 있잖아요. 어느 날 외국인 친구와 한복 대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복 원단은 정말 예쁜데 너희도 불편해서 안 입는구나’ 라는 말을 들었죠. 그 말을 듣고 한복은 원단이 예뻐서 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한복 원단을 사용한 정장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대여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패션에 발을 들이게 됐답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은 없었는지. 

  “당연히 두려웠죠. 하지만 나이키 광고에서도 ‘Just Do It’, 그냥 하라고 하잖아요. 당시 스물네 살이었기 때문에 그냥 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20대는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잖아요.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어요. 오로지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도전했답니다.” 

  -브랜드 이름 ‘리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외국인 친구들이 한글이 위대한 글자라는 사실은 잘 알아요. 근데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글자가 아라비아 숫자거든요. 브랜드의 로고 ‘ㄹ’을 보여주면 ‘이거 숫자 2 아니야?’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면 이 글자는 숫자 2가 아니라 한글의 ‘ㄹ’이라는 글자라고 알려주죠.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한글로 바뀌어요. 브랜드 ‘리을’이 서양의 옷을 한복 원단으로 만드는 브랜드라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요. 제가 의도하고 기획한 부분이랍니다.” 

  -한국과 한복을 세계화하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꼭 한복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독자성을 담은 옷을 기획하고 싶어요. 제 생각을 옷으로 표현하면서 이윤 추구만 생각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에 디자인을 하고 싶답니다.” 

  -한국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 같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우리가 소속한 집단에 자랑거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잖아요. 그 자랑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요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브랜드 ‘리을’만의 차별화된 매력은. 

  “브랜드 ‘리을’은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요. 옷을 입는 사람에 맞춰 디자인하죠. 그래서 ‘리을’의 옷을 입으면 무조건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돼요. 똑같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더라도 ‘이 옷은 ‘리을’에서 만든 옷 같다’라고 말을 하는 이유예요. 그런 부분이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전통한복이 가진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통한복의 멋은 선과 원단에 있다고 생각해요. 생활한복이 선의 멋을 살렸다면 저는 원단의 멋을 살려 옷을 만들고자 했죠.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찾고 자긍심을 느끼는 옷이 한복이잖아요. 일반 옷들과는 다른 한복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전통한복 하면 흔히 떠오르는 양단만 옷의 원단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듯하다. 

  “거의 전통한복을 만들 때 쓰는 원단을 사용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통한복의 원단도 변했는데 사람들이 전통한복에서 쓰지 않는 원단이라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죠. 브랜드 ‘리을’에서 유일하게 한복 원단을 사용하지 않는 옷이 가죽 저고리예요. 저고리는 선이 예뻐서 원단보다는 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죠. 가죽 저고리는 청바지와도 함께 입을 수도 있거든요. 한국의 색이 돋보이는 옷을 사람들에게 입히고 싶다는 저의 목표가 담겼답니다.”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김리을 디자이너의 모습. 브랜드 ‘리을’에서 유일하게 한복 원단을 사용하지 않은 가죽 저고리이다.사진제공 김리을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김리을 디자이너의 모습. 브랜드 ‘리을’에서 유일하게 한복 원단을 사용하지 않은 가죽 저고리이다.사진제공 김리을

  -전통한복 원단은 구김이 잘 가고 세탁이나 보관이 번거롭다고 하는데. 

  “원단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한복 원단이 구김이 잘 간다고 안 입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화려한 옷이 필요한 특별한 날이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어도 되지 않을까요? 원단의 단점을 해결하려고 크게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만드는 옷에 직접 고른 고급 원단을 사용한다고. 비싼 값에 한복의 아름다움이 가려질까 우려도 된다. 

  “그래서 옷을 안 팔아요. 제가 만든 옷을 한 벌도 팔아본 적도 없고요. 원단을 사용해서 옷을 만드는 일은 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어차피 팔지 않을 옷이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고민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옷을 팔 생각은 없나. 

  “아마도 팔지 않을 예정이에요. 제가 한복 정장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복 정장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죠. 이렇게 시작한 사람이 있기에 요즘 생활한복보다 더 화두가 된다고 생각해요. 옷을 팔지 않아도 아이돌도 
많이 찾아 입고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한복 무대의상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한복이 중국의 전통의상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도 제기됐는데. 

  “한복이 우리 옷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방탄소년단이 한복을 입으면서 한복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한복을 알게 됐잖아요. ‘한복이 이제 화제가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이슈화로 인한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한복의 세계화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한복을 입음으로써 세계화가 되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만 해도 세계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국에서 삼성 갤럭시 핸드폰과 현대자동차로 한국을 떠올리기도 하잖아요. 언젠가는 Do you know ‘리을’? 을 시작으로 한국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브랜드 이름 ‘리을’로 한글을 이야기할 수도, 원단과 한복을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세계화를 위해 앞으로 한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복을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입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만든 정장이나 라이더자켓 등을 연예인분들이 찾아서 입어줬어요. 한복을 다루는 사람들이 한복을 예쁘고 멋있게 만들어서 일반 사람들도 한복을 찾게끔 만들어야죠.”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의상이 있나. 

  “한복 정장 이외에도 라이더자켓, 농구 유니폼, 반바지 등 다양한 종류의 의상을 시도하고 있어요. 이번에 삼성 갤럭시와 작업 할 때 한국의 미를 담은 점프수트를 만들었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다양하게 시도할 예정이랍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 김리을로서 한마디 하자면. 

  “제가 남들보다 더 용기가 있어서 한복 디자인을 시도하지는 않았어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돼서 방탄소년단에게 내 옷을 입혀야겠다’ 이런 꿈도 없었죠. 그냥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웃음) 거창한 꿈이 없어도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고, 그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꾸준히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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