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기자(사진학과 09학번)의 사진은 밝은 분위기에서 풍기는 은은한 엄숙함이 돋보인다. 대상 본연의 아름다움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은 그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인물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조명, 천, 모든 장비를 총동원해 허투루 찍는 법이 없다. 고운호 기자는 사진과 글이 주는 무게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김수현 기자
사진 김수현 기자

여기 열정 부자 사진기자가 있다. 호기심은 매우 많고, 남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으로 향한다. 어딜 가든 드론은 꼭 한번 띄워 봐야 직성이 풀린다. 열 번을 실패해도 한 번 성공할 때의 쾌감이 더 짜릿하다는 고운호 기자(사진학과 09학번)의 이야기다. 이런 그의 좌우명은 ‘시도’라고. 하지만 그에게 취재 욕심보다 중요한 것은 취재원에 대한 공감이다. ‘찰칵’ 소리를 내기 전 고운호 기자는 수없이 고민한다. 오늘도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끝은 무겁다. 

  -또래보다 일찍 사진을 접했다고. 

  “아버지가 경품으로 받아오신 똑딱이 카메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변 친구들을 많이 촬영했어요. 사진은 제게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지인과 일상을 기록하는 매체였죠. 고등학교 때 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했어요. 떨어져서 힘들어하는 와중에 중앙대 사진학과에 지원할 수 있게 됐죠. 그동안 스스로 익힌 사진 기술에 사관학교 준비로 쌓인 지식이 더해진 결과였어요. 운 좋게 합격했지만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죠.” 

  -부모님이 반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군인을 꿈꾸던 사람이 갑자기 예술을 한다고 하니 이해하기 힘드셨나 봐요. 고등학생 때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대학교에서는 목표를 명확히 해서 반드시 이뤄보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하고 입학했죠. 입학하자마자 사진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러다 1학년 2학기 때 우연히 중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현수막을 봤죠. 지원 마감 하루 전날이었어요. 홀린 듯 지원했고 그렇게 기자 생활에 발을 디디게 됐답니다.” 

  -중대신문에서 쓴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 

  “기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준 기사가 있어요. 1학년 겨울방학에 학교를 돌면서 미화원, 방호원분들을 만났죠.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업무 환경은 괜찮은지 여쭤봤어요. 그때 중간 관리업자가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사안을 취재해서 개강하자마자 연속으로 보도했답니다. 다행히 상황이 나아졌지만 항의도 많이 받았죠. 글이나 사진이 누군가를 울릴 수도 웃게 할 수도 있으니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졸업하기도 전에 조선일보 객원기자로 선발됐다고.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어요. 중앙일보 대학생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죠. 사진학과 학생회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선일보 객원기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지원했죠. 그렇게 객원기자 생활을 3학년 2학기 때부터 시작했답니다. 당시 같이 선거를 준비한 후배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커요. 하지만 기회가 오면 잡아야죠.(웃음)” 

  -객원기자 시절은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이 미화됐지만 되게 불안정한 시기였어요. 정기자도 아니었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지면에 게재되지 않으면 그날은 아무것도 안 한 날처럼 돼 버리죠. 같은 현장을 취재해도 다른 기자 사진이 지면에 실릴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은 분노가 상당하죠. 분노한 기억으로 얻는 점도 있어요. 어떤 현장에 가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나만의 시선으로 취재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실력을 길러줬답니다.” 

  -보도사진을 찍다 보면 초상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맞아요. 조심스러운 사안이죠. 웬만하면 뒷모습을 찍거나 모자이크로 처리하려고 해요. 대중에게는 찍히지 않을 권리도 있잖아요. 사적으로 몰래 찍는 행위는 당연히 금지예요. 알려야 하는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이 분명해야 하죠.” 

  -조선일보 홈페이지의 한 줄 소개가 인상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어도 기자라면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르는 곳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도 헤아릴 줄 알아야죠. 그런 소식을 사진으로 어떻게든 보도하려고 해요. 그리고 현장에 한번 더 들어가 보려 하고, 애써 물어보고. 또 물어보기에 앞서 이들의 아픈 부분을 찌르지는 않는지 계속 고민해요. 취재할 때도 목소리를 들어야 생생한 기사가 나오잖아요. 사진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죠.” 

  -기자의 눈으로 대상을 프레이밍 할 수도 있지 않나. 

  “완벽히 객관적인 글, 객관적인 사진은 없어요. 사진도 촬영자가 어떻게 의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죠. 집회에 사람이 많게 보이고 싶으면 망원렌즈를, 사람이 적게 보이고 싶으면 광각렌즈를 쓰면 돼요. 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보여줘야 하죠. 자신의 양심이나 주관이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찍으면 문제가 돼요. 글을 화려하게 쓰는 기술,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죠. 올바르게 사용하느냐는 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언론사 기조보다 기자 자신의 주관이 중요한 듯하다. 

  “제가 조선일보라는 소위 보수 언론사 소속이잖아요. 대중들은 세월호 사건을 비판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언론사의 기조가 있을지라도 사진기자의 소명으로 다 기록하려고 하죠. 대신 사담은 넣지 않아요. 벌어지고 있는 일을 사진으로 담백하게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우병우 특종을 찍은 지 5년이 지났다. 

  “직급을 막론하고 단지 기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는 성취감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권력자의 민낯이 담긴 사진이잖아요. 사진 한 장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그리고 초심을 되새기게 돼요. 안 되겠지 하고 쉬고 있으면 절대 찍지 못하는 사진이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물에 큰 보람을 느낀답니다.”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든 사진은. 

  “되게 더운 날이었어요. 땀을 주제로 촬영해 오라는 취재지시를 받았죠. 차를 몰고 서울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너무 더워서 대부분 휴업을 하는 바람에 포기하려 했어요. 그때 고물상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목격했어요. 멀리서 봐도 땀이 줄줄 흐르는 모습이었죠. 그 모습을 무턱대고 찍지 않고 시원한 냉수를 사드렸어요. 더운 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알리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 후 촬영했죠. 원래 사회면에 들어갈 사진이었는데 종합 1면에 실렸답니다.” 

  -끈기가 빚어낸 결과다. 

  “그런 셈이죠. 당시 촬영하면서 이렇게 더운 날 왜 일하시냐고 여쭸어요. 그분들이 하신 말씀이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은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는다’였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이 계시는구나 하는 노동의 가치를 느꼈어요. 도저히 못 찍을 상황이더라도 열심히 다녀보면 보이는 순간들이 있죠. 그 순간을 발견했을 때 쾌감은 정말 짜릿해요.” 

고운호 기자가 찍은 사진들이다.  위에서부터 우병우를 대하는 검찰의 자세, 39.1도…빗방울 같은 ‘노동의 땀방울’, 배우 이순재. 미사여구보다는 오롯이 사진만으로 울림을 주고 싶은 그의 의도가 담겨있다. 사진제공 조선일보
고운호 기자가 찍은 사진들이다. 위에서부터 <우병우를 대하는 검찰의 자세>, <39.1도…빗방울 같은 ‘노동의 땀방울’>, 배우 이순재. 미사여구보다는 오롯이 사진만으로 울림을 주고 싶은 그의 의도가 담겨있다. 사진제공 조선일보

 

  -중앙대를 찍을 기회가 생기면 어떤 모습을 남기고 싶나. 

  “코로나19로 멈춰버린 학교의 모습이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한번 제대로 못 다녀 본 신입생의 하루, 학생들이 없어서 일자리를 잃은 방호원·미화원분들. 이런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네요. 상황을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지금을 충실히 기록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자는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해요. 또 기자의 사진과 글과 말은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잖아요. 사진, 글,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기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기자로서가 아닌 사람 고운호의 목표가 궁금하다.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실히 기록해 나갈 계획이에요. 다른 목표로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 목표를 이루려면 역량이 쌓여야겠죠. 지금도 일을 하면서 신문방송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나무가 뿌리내리게 도움을 주는 토양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배워야할 게 많은 부족한 사람이에요. 나무로 치면 힘없는 나무죠. 그 나무가 중앙대라는 토양을 잘 만난 듯해요.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해서 훌륭한 선후배를 사귀고, 중대신문에서 동료들 덕에 글쓰기도 배웠죠. 나무에 맺힌 열매는 땅에 떨어져서 양분이 되잖아요. 열매 맺을 정도로 잘 자라서 중앙대라는 토양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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