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제62대 서울캠 총학생회(총학) 성평등위원장으로서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전 부총학생회장 성희롱 사건의 2차가해지목인 및 총학생회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있었고, 중앙운영위원회 역시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급히 날 호출했다. 정신없이 도착하느라 총학생회실(총실)에 있는지도 모른 채 회의실로 들어섰고, 논의 중 잠깐 총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그 많은 사람들 중 2차 가해자도 함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당황스러웠다. 분노는 그다음이었다. 사과는커녕 어떤 말도 꺼내지 않던 사람이 인수인계를 한답시고 총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당신의 파면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속 편하게 앉아 인수인계를 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화목하고 열띤 그곳에서 나만 완벽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모를 사석 어딘가에서 정말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쟤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귀찮게 또 저러네. 이제 그만 좀 하지. 지치지도 않나. 피해 당사자가 아닌 나조차 이런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아니, 때로는 두렵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이 두려움 때문에 침묵해왔을까. 그때 깨달은 것은, 피해자의 피해를 규정짓는 것이 피해사실 그 자체가 아닌, 피해사실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학생자치기구의 성인지감수성이 중요한 이유다. 제62대 서울캠퍼스총학은 서울캠 전 학우를 대표하는 자치기구로서, 피해 학우를 보호하기는커녕 내팽개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내부구성원에게 관대했다. 그들의 낮은 성인지감수성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피해자는 일찌감치 지워졌다. 피해자 보호보다는 조직의 안위가 우선이었고, 내부구성원이었던 가해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피해자의 말보다 힘이 셌다. 마지막까지 본인은 피해자 중심적으로 임했다고 주장하던 제62대 서울캠 총학생회장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피해사실은 있었으나 가해 사실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는 헛소리가 또 다른 2차 가해인지도 모르는, 너무나도 ‘가해자중심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총학에서 정말 그것이 가능했느냐고.

  나는 비록 가시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채 임기를 끝냈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사건 해결을 위해 힘써주시는 학생대표자분들이 있다. 피해 학우 역시 긴 싸움에도 지치지 않고 함께해주신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 학생사회에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혹은 생기더라도 더 이상 숨지 않고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도록, ‘중립’ 이나 ‘객관성’을 외치기 전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점진적인 변화를 이룰 거라 믿는다.

  중요한 건 사실(FACT)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피해자 중심적으로 이뤄지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자문해야 한다.

 

황세리 학생

사회복지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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