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지금 강단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중앙대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건축 설계, 디자인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고 싶다는 송하엽 교수(건축학전공)를 만나봤습니다. 

사진 최수경 기자
사진 최수경 기자

수직에서 수평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간복지를 선물하는 
공공 건축계의 산타클로스

공간이란 물리적·심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범위로,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다. 어떤 건축물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가치는 달라진다. 송하엽 교수(건축학전공)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개인이 혼자 쉴 수 있는 공간, 사람이 돋보이고 그들의 자존감도 높여주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과연 송하엽 교수는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고 싶은 걸까.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했는데, 건축과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이론적인 가설을 세우는 데 재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산업공학과, 수학과,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죠. 세 전공단위는 각 산업의 미래, 수학적인 가설, 공간 가설을 다뤄요. 그중에서도 건축학과는 실용적이고 학술적인 면을 모두 다뤄서 선택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미적인 감각이 있었어요.(웃음) 공학과 예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듯해요.” 

  -학부 졸업 후 국내 건축공사 현장에서 설계 업무를 맡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고려대 공대 건설 현장에 근무할 때 대형강의실 천정을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대칭이 안 맞고 틀어져 있었죠. 이미 진행한 작업을 다시 하려면 재료나 인건비에서 큰 손실이 있어요. 하지만 대학 공간이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바로잡았죠. 학생들은 전후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지만 건축가로서 만족감에 흐뭇했던 기억이에요.” 
 
  -설계 업무를 맡다 미국 유학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회사에 다닐 때 쿠웨이트에 출장을 가서 다국적인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싱가포르 엔지니어, 인도 제도사, 영국인 건축가, 일본 회사와 함께 일했죠. 특히 영국인 건축가와 영어로 일해보니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어요. 국내에서 경험하지 못한 설계 관리 방법을 쓰더라고요. 꼭 한번 해외에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출장 갔다 온 후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했답니다.(웃음)”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필라델피아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미술관, 청소년관, 카지노 호텔 등을 설계했는데, 건물마다 어떤 점을 고려했는가. 
  “카지노 호텔은 숙박시설뿐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이 부대시설을 더 즐길 수 있는지 등을 신경 써야 해요. 미술관은 로비를 큰 리빙룸처럼 설계할지 등을 고려해요. 관장이나 예술가가 런칭 파티를 할 때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죠. 청소년관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해요. 복도에 놓일 사물함의 크기를 정할 때도 아이들이 얼마나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답니다.” 

  -미국 설계 현장에서 가장 애착이 간 건축물은. 
  “미국에서 중앙대로 부임하기 전에 공공 건축 영역을 몸소 체험했어요. 공공 건축의 일환으로 소년원을 설계했죠. 처음에는 ‘유스센터(Youth Center)’라고 이름이 붙어서 청소년시설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소년원이어서 문화적으로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방법으로 이름을 지어서 님비시설로 치부되는 걸 피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담벼락이지만 시설 내부에도 교화를 위한 다양한 복지시설을 많이 갖출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답니다.” 

  -공공 건축을 체험하면서 느낀 바가 크다고.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 출신 선배 건축가들이 학교, 소방서, 주민센터 등 공공 건축을 설계하는 걸 봤어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건물에 애정을 가지게 됐죠. 동네 도서관, 책방, 체육관, 수영장, YMCA 헬스장 등을 마치 자기 집처럼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공간복지를 실현하고 싶었답니다.”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 
  “건축디자인은 사람, 땅, 도시를 생각하는 직업이에요. 미국에서는 단독주택에 살면서 아이들과 행복했지만, 한국 땅에서 건축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벌초도 못하는데 집 잔디나 관리하고 있으니 자괴감도 들었죠. 앞으로 이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신토불이처럼 내 나라, 내 땅에서 작업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했죠.” 

  -서울공예박물관 설계공모전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유기성을, 파빌리온 건축에서는 착생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도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디자인한다고 완성되지 않아요. 도시 건축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게 생활하는 사람이 도와야죠. 공예박물관은 원래 조선시대 별궁 터에 위치한 고등학교였어요. 그런 역사성을 가진 장소를 열린 공간으로 설계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박물관에 드나들 수 있게 했죠. 

  착생이라는 개념은 이끼를 떠올리면 돼요. 이끼는 조건만 맞으면 잘 살잖아요. 이런 강한 생명력이 건축에서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건물을 짓고 난 후 성공 여부를 바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착생하는지 보고 판단하죠.” 

2021년 7월 개관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교육관의 모습. 송하엽 교수가 설계에 참여했다.
2021년 7월 개관예정인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교육관의 모습. 송하엽 교수가 설계에 참여했다.

  -2009년부터 중앙대 건축학부에서 강의했는데, 중앙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여러 대학의 채용공고를 보고 있었는데 중앙대 교수직에 욕심이 났죠. 건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중앙대 위치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강북 역사도심구역과 강남 비즈니스지역에 가깝기 때문이죠. 또 회사 다닐 때 많은 중앙대 동문과 일했고, 제가 학부생 때 설계작품을 도와준 선배도 중앙대 출신이에요. 놓치고 싶지 않았답니다.” 

  -건축설계사로서 중앙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이나 조형물이 있다면. 
  “204관(서울캠 중앙도서관)이요. 일단 중앙대를 상징하는 시계탑이 남아 있어요. 중앙마루 쪽에서 올라가다 보면 언덕에서 도서관 벽면의 유리들이 보이죠. 마치 쪼개진 바위처럼 위압감도 없고 자연스러워요. 밤에 강변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불 켜진 도서관도 보인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죠.(웃음) 중앙대 건물들이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면이 있어요.” 

  -어떤 면이 아쉬운가. 
  “대학 건물은 대학의 상징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대는 중앙대만의 문화예술을 살리거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건물이 부족해 보여요. 건물이 군더더기가 없고 심플하지만 그런 면이 좀 아쉽죠.” 

  -중앙대 강단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라는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학생들도 레포트를 쓰고, 저도 글을 쓰며 서로 학문적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2011년부터 3년 동안 학생들이 여행했던 곳 얘기도 듣고, 제 경험을 같이 공유하며 책의 소재와 주제를 정했답니다.” 

  -건축설계, 디자인, 교수, 저술 활동 등 많은 활동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 교수로서 연구한 이론을 실현해볼 수 있는 분야가 건축설계, 디자인이에요. 공공 공간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결심이 지금껏 저를 이끈 원동력이죠. 요즘은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로부터도 힘을 얻는답니다. 가족, 학생, 스승님뿐만 아니라 제 책에 반응해주는 독자,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도움이 많이 돼요.” 

송하엽 교수가 쓴 『22세기 건축』. 미래 건축의 청사진을 그린다.
송하엽 교수가 쓴 『22세기 건축』. 미래 건축의 청사진을 그린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인프라텍쳐 (Infra-tecture)’를 주제로 책을 1권 더 쓸 예정이에요. 저술이나 설계 활동 이외에는 건축계에 ‘중앙학파’를 만들고 싶답니다. 중앙대 동문의 건축작업이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요즘 학생설계공모전에서 재학생들의 활약이 남달라요. 국내외 여러 설계공모전에서 제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답니다.(웃음)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졸업 후 실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싶어요. 중앙대의 예술적·공학적 DNA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건축계에 한 획을 남기는 게 저의 목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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