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잊고 있던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해 참여한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행 사항이었다. 징계권 조항 삭제가 마지막 관문 앞에 와 있으며, 국회 입법 예고를 통해 목소리를 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현행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되며, 「아동복지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모의 면죄부로 사용되기도 한다. 큰 이변이 없다면 이 조항이 62년 만에 현행법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61번째 국가가 된다. 

  나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따끔한 훈육을 받고 자랐다. 학원에서 숙제를 안 해오거나 시험을 못 치면 손바닥을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물론 부모님과 선생님이 나를 학대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체벌이 용인되는 문화에서 성장한 탓에 체벌 금지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시간이 걸렸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1389건이다. 같은 해에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른 아동은 총 42명에 달한다. 아동 학대와 체벌 사이에 경계는 없다. 죽을 만큼 맞아서는 안 되고, 손바닥을 1~2 대는 맞아도 되는가? 부모가 처음부터 자녀에게 해를 입힐 의도를 가지고 학대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랑의 매’에서 시작한 체벌이 통제력을 상실하면 학대로 이어진다. 강도에 예외 없이 아이를 때리는 행동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체벌이 훈육 효과가 있다는 고정관념도 사실이 아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체벌이 교육 효과가 없다는 이론이 정설이다. 행동주의 관점에서 체벌은 정적 처벌에 해당한다. 체벌은 단기적 행동만 교정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행동을 끌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체벌을 피하고자 속이는 행동을 하게 된다. 2016년 미국 텍사스 대학의 체벌 효과 분석 연구에 따르면 체벌의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체벌을 받았을 때 인지 능력과 자존감이 낮아지고, 반사회적 성향이 발달한다.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체벌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 법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부모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을 버리고,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사랑의 매’란 드라마 속의 “사랑해서 헤어지는 거야”라는 진부한 멘트만큼이나 역설적이고 모순되는 말이다.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긍정적 강화를 통해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낀다. 이 글은 미래의 양육자가 될 나에게 스스로 하는 약속이다. 부모에게 ‘사랑의 매’는 없다.

 

 

 

 

 

 

오은지 학생 
심리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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