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어요?” 비대면 수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교수님의 질문입니다. 학생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교수는 제발 질문 좀 하라며 학생들을 다그칩니다. 위 질문에서, 교수는 학생이 흥미를 갖고 수업에 몰입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궁금했을까요.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은 수업 참여에 대한 열정과 교수를 향한 존경이 있었을까요. 

  학보사에 몸담은 지 어언 2년이 가까워져 옵니다. 새내기 기자 시절, 빨간 줄로 가득 찬 기사를 보며 퍽 속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괜한 자존심에 글을 고치지 않고 버티자, 선배 기자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표현에 담고자 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왜 이렇게 써야만 하는지’ 연이어 물어왔죠. 기자는 기사를 처음 읽는 독자를 섬세하게 고려해야 하는 친절함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반복되는 질문 끝에 놓인 무지를 자각했죠. 

  ‘내 기사’에 대한 똥고집을 키워오던 무렵이었습니다. 여러 선배 기자로부터 숱한 피드백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A는 이러한 이유가 있으니 B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까요?”라는 피드백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B에 맞게 고쳐주세요”라는 말과 똑같은 의도였을지도 모르죠. 취재 과정과 꼭 맞닿아 있었던 질문 저변에는 더 나은 문장을 만들도록 변화시킨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곧 후배 기자와 신문을 향한 관심, 그리고 사랑의 발현이었죠. 

  이번 학기 대학보도부장으로서 한 부서를 이끌며 수없이 던졌던 물음표는 사랑하는 대상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신문사에서 받아온 사랑을 베풀고 싶어 주위에 건넸던 사적인 질문, 제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후배 기자들의 성장을 돕고자 썼다 지웠던 피드백, 대학 사안을 취재하며 스스로 되물었던 대학보도부를 선택한 이유. 후배 기자의 무한한 가능성에 확신을 쥐여주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후배 간 오가는 질문이 편안하길 바랐습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쫓기보다는 상황 너머 대학의 본질을 좇고 싶었습니다. 

  질문이 오가지 않는 사이는 사랑이 부족한 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면 대상이 가진 ‘무엇’에 대해 궁금한 것투성이가 되기 마련이죠. 관계의 진전을 원한다면 사소한 것부터 깊은 속마음까지 알고 싶어지고, 상대방의 성장을 바란다면 잠재력을 끌어올릴 방법을 궁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고, 우리 사회를 사랑하면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질문을 품고 있지 않으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고서야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인식이 깨어날 수 없을 테죠. 누구든 무엇이든, 마음이 가는 대상이 있다면 그를 위해 사랑의 물음표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대학보도부장 김민지

<br>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