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네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은 가을을 맞아 양캠이 위치한 지역의 문학가를 찾았습니다. 1번째 인물은 시인,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영화감독까지 다양한 재능을 뽐낸 심훈 작가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시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죠. 어떻게 이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중대신문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 볼까요?

 

 

효사정 문학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심훈 좌상. 동상 뒤로 노을이 화려한 서울의 모습과 어우러진다. (촬영 후 좌우반전)

암울했던 시대, 저항을 멈추지 않은 채 ‘그 날’만을 소망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날이 오면 넘치는 기쁨에 거꾸러져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 사람. 그는 그 날을 맞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서울캠이 위치한 흑석동 곳곳에 그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종합예술가인 심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흑석에 자라던 무궁화
  심훈은 1901년 동작구 흑석동(당시 경기도 시흥군 흑석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지만 천주교 흑석동성당 한 쪽에 위치를 알리는 비석이 남아 그를 기린다.

심훈 탄생 100년을 맞이한 2001년, 심훈 생 가터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천주교 흑석 동성당앞에서만날수있다.

  학창 시절부터 심훈은 조국의 독립을 꿈꿨다.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도중 헌병에게 체포돼 약 8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고 만다. 당시 상황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 월> 등 옥중서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주홍빛의 벽돌 담은 화로 속처럼서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심훈은 감옥에서 독립에 대한 민족의 열망을 엿봤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심훈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쓴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어머니를 생각하는 심훈의 마음과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사진출처 YTN)

  출소 후, 심훈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다. 항저우에서 대학을 다니며 문학을 공부했지만 우당 이회영, 단채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와 교제하며 항일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1923년, 망명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 후 동아일보에서 입사해 기자로서 일제의 언론탄압에 저항했던 언론인단체 ‘철필구락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문화인 

서울캠 근처에 있는 효사정 문학공원을 거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해보자.

  심훈의 또 다른 흔적은 효사정 문학공원에 숨어있다. 효사정 공원 산책로 곳곳을 살 펴보면 심훈의 일대기와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종합예술가였던 심훈의 일대기를 읽으며 그동안 몰랐던 심훈 예술의 다채로움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먼동이 틀 때>의 한 장면. 심훈은 영화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흔히 심훈을 시를 짓고 소설을 집필한 문학인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영화인이라 피력했을 만큼 영화를 사랑했던 배우이자 각본가이며 감독이었다. 귀국 직후 연극 연구단체인 극문회를 조직하며 연극과 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영화 <장한몽> 주인공 ‘이수일’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동아일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본명인 심대섭이 아닌 필명 ‘훈’을 사용한다. 이듬해 마침내 영화 <먼동이 틀 때(1927)>를 제작해 감독의 꿈을 이룬다. 한국 영화를 개척했던 또 하나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그 영화에서는 심훈이 가진 영화인으로서 재능을 보여준다.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문학혼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을 끝내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넘실대는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심훈 좌상이 세워져 있다. 심훈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의 노력 덕분에 ‘그 날’이 밝았음을 탁 트인 한강을 바라보며 느꼈다.

  영화가 성공한 이후, 심훈의 관심은 문학으로 기울었다. 1928년에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뒤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시작으로 시 <그날이 오면>과 소설 『불사조』 등 다양 한 문학 작품을 집필했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애국심과 민족의식으로 가득 찬 심훈의 작품세계가 담겨있다. 하지만 번번이 검열에 걸려 작품 연재를 중단당했고 조선일보에서 사직하고 만다. 그 후 경성방송국에 입사하지만, 이곳에서도 사상 문제로 퇴직한다. 결국 심훈은 도시를 떠나 당진으로 몸과 마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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