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유아 성교육에 관한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유아부터 시작하는

평생 ‘성교육’

부끄럽게 생각 말고 

흥미롭게 다가가면


우리나라에서 성교육의 필요성을 최초로 논한 때는 1927년. 당시 배화여고 교사였던 김윤경 국어학자는 성 관련 질문을 던진 학생에게 퉁명스럽게 답변했다. 이에 학생은 수치심으로 당황해했다. 그는 성 관련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거나 금기시하는 태도가 아이들에게 왜곡된 의식을 심어 줄 수 있음을 깨닫고 『동광』 3월호에서 성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고백했다. 그로부터 93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유아에게 성을 알려주길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다. 유아 성교육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유아이기에 필요한

  성은 단순한 성 행동이나 육체적인 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외순 성&인권 상담연구소 이음 소장은 성은 인간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며 유아기부터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은 태어나서부터 인간 발달단계에 맞춰 지속해서 성장하는 개념이에요. 따라서 유아 성교육은 아이가 성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답니다.” 

  유아 성교육이 성 지식을 일찍 노출시켜 성 정체성의 혼란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유아 성교육은 금기 대상이며 우려해야 하는 교육이 아니다. 유아에게 성교육은 자신의 성과 다른 성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경은 교수(경희대 아동가족학과)는 유아 성교육이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서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올바른 성교육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성교육을 받은 유아는 성지식이 없는 유아보다 성을 덜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외순 소장은 유아기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성교육을 받은 유아는 2차 성징이 나타날 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죠. 체계적인 유아 성교육은 유아가 성장하면서 올바른 성지식과 건전한 성 태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답니다.” 

  실효성 없는 성교육 

  만 0~5세 영유아는 「표준보육과정」에 따라 보육 및 교육을 받는다. 이 중 성교육은 0~1세, 2세, 3~5세로 세분화돼 신체 건강을 주제로 다뤄진다. 김보람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  센터장은 신체와 안전에 국한해 교육하는 우리나라 유아 성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성교육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뿐만 아니라 관계, 경계, 문화, 성장 등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주제로 접근해야 한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체와 안전에만 국한해 교육하는 현실이죠.” 다양한 주제로 접근하는 성교육은 2018년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국제성교육가이드라인」에도 수록된 내용이다.

  유아를 대상으로는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 등 성범죄 상황에서 피해자의 대처에 관한 성교육이 주를 이룬다. 성범죄 대상이 될 위험이 있는 유아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저항해야 함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성교육의 내용적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석원 성교육 전문기관 자주스쿨 대표는 해당 내용이 피해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성범죄 상황에서 피해자가 조심해야한다는 내용의 교육만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피해를 당한 유아가 자신에게 원인을 돌리거나 죄책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8시간만 채우면 된다? 

  「아동복지법」 제 28조는 아동복지시설의 장, 어린이집 원장, 유치원장, 초중등학교장이 6개월에 1회 이상, 연간 8시간 이상 성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성교육을 제공했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기관별로 1년에 8시간의 교육만 진행하면 법적 문제는 없지만 최재원 우정유치원장은 해당 법률이 형식적인 성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내용을 8시간 연달아 교육하는 곳도 있답니다. 보고를 위한 교육이 될 수 있죠.” 기관 재량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보고만 하면 되는 방식이니 어떠한 교육이 이뤄졌는지는 뒷전이다. “아무래도 형식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성교육을 단순히 이론과 방법 교육으로만 치부할 수도 있죠.” 김보람 센터장도 이에 동의했다. 요식적인 교육으로는 유의미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단시간 안에 시간만 채우면 되는 교육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 중인 C씨(33)는 실제로 교육을 하지 않고도 서류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했다고 기록하는 일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교육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남기는 경우도 있죠.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높답니다.”

  효과적인 교육이 더해지려면

  효과적인 성교육을 위해서 교사는 유아성지식,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지식 등을 갖춰야 한다. 유아에게 성과 관련된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는 교수 상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2016년 국가수준의 성교육 관련 지도 자료인 「유치원성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이 제공됐다. 현직 유아 교사들에게 충분한 성지식을 제공하기에는 지도서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안하나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는 형식적인 내용의 지도서를 많이 봤다고 언급했다. “너무나도 형식적인 내용의 지도서를 많이 봤어요. 그런 내용으로는 유아의 흥미를 이끌기 어렵죠. 미디어, 그림책 등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고 접근할 수 있는 지도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경은 교수도 획일적인 유아 성교육을 지양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교사 매뉴얼이 획일적인 방향에서 벗어난다면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지도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이외순 소장은 지도 방법이 명시된 교육 지침서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아의 발달단계에 따른 성교육 내용과 지도 방법이 명시된 교육 지침서에 대한 홍보가 절실히 필요해요.” 

  중요한 만큼 배워야 할  

  교사의 성평등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성인지 및 성평등 교육은 제법 체계적으로 마련됐다. 김혜선 (주)고양이뿔 대표이사는 교사교육과정 내에서 성교육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전했다. “교사는 한 해 동안 상당한 분량의 교과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현실에 있어요. 성교육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는 여타 다른 교육에 비해 한참 뒤로 밀리죠.” 

  교사연수과정 중 성교육, 성폭력예방교육에서 전문 성교육강사를 활용하기에는 예산과 교육시간이 부족하다. 김보람 센터장은 관련한 문제를 언급했다. “전문 성교육강사를 활용하려고 해도 예산과 교육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해요. 교육부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에서 관련 콘텐츠와 매뉴얼을 만들고 있지만 이러한 콘텐츠와 매뉴얼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충분히 진행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실제 현장에서는 온라인으로 성교육 영상을 틀어놓기만 하는 교사들도 많다.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생활하는 현장에서 모든 교사들이 강의에 시간을 할애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외순 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상황적인 문제에 부딪혀 좋은 교육 내용이 있어도 집중해 듣지 못하죠. 그로 인해 현재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심각성에 비해 둔감하게 대처하기도 한답니다. 1년에 1~2번 정도 집합교육들을 통한 보수교육들이 꼭 필요해 보여요.” 

  ‘인간의 성이야말로 사연 많은 삶의 모든 국면을 떠받쳐 주는 토대다’ 쇼펜하우어가 정의한 성이다. 이렇듯 성교육은 평생 동안 배우고 익혀야 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아 성교육에 서툰 현실이다. 건강한 성문화를 위해서 더 나은 유아 성교육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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