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해왔습니다. 마지막은“방백 #도로_외_구역"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도로 외 구역과 관련 된 방백들을 한자리에 모았는데요. 끝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막이 닫히는 순간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심가은·박진용·최지환·서아현·우인제·장준환 기자

법이 포장하지 못해
위험한 ‘안전 비포장’ 도로

입 모아 개정을 촉구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학에서 여집합이란 전체집합 내에서 이미 구성된 집합 외의 요소들이 모인 또 다른 집합을 말한다. 도로에 여집합 개념을 적용하면 어떨까? 평소 떠올리는 ‘길’이라는 전체집합 중 「도로교통법」이 정의한 ‘도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여집합. ‘도로 외 구역’을 알아보자. 

  도로의 여집합

  「도로교통법」에서는 차도, 보도, 자전거도로, 터널, 교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로 구성된 곳을 ‘도로’라 칭한다. 그 외에도 개방된 장소로, 다수의 사람 및 이동수단이 통행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 확보가 필요한 장소를 포함한다. 하지만 교통 활동이 있음에도 「도로교통법」에서 정의하는 도로에 포함되지 않는 도로가 있다. 사적 주체가 도로 설계 및 관리의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바로 ‘도로 외 구역’이다. 

  오흥운 교수(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는 도로 외 구역의 개념을 설명했다. “특정인들 또는 장소와 관련한 용건이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고, 사적 주체가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장소에 있는 도로를 말합니다.” 캠퍼스 내 도로, 주차장 및 아파트 단지 내 통로 등 우리 주변에서도 도로 외 구역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유지에 드러난 사고 발생 사유

  도로 외 구역은 사유지의 특성을 가진다. 구역 소유자가 설계와 관리를 담당하는 사적 도로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상의 규제 및 점검을 반드시 적용할 필요는 없다. 지난 2018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대학 내 교통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20개 대학 모두 보도와 관련한 안전성 문제가 발견됐다. 과속방지시설 설치가 미흡한 대학이 19개에 달했다. 교통안전 표시·표지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는 대학도 14개로 집계됐다. 보행자의 안전을 먼저 고려하지 않은 채 도로를 설치했고 관리도 미흡하게 해온 모습이다. 이렇듯 도로 외 구역은 교통시설 설계 및 안전 관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문제를 보인다.

  오흥운 교수는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 규제와 행정력이 적용되지 않는 도로 외 구역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공공에서 사용하는 설계기준은 대부분 안전성이 검증돼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준이 도로 외 구역에는 반영되지 않죠. 일반적으로 구역 소유자는 안전시설 설치비용을 낮추려 해당 구역의 안전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 조치를 해오고 있어요.”

  도로 외 구역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가해자의 처벌이 어렵다. 해당 법률은 「도로교통법」에 근거한다. 유천용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대부분 반영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음주·약물 운전 및 사고 후 도주를 제외한 12대 중과실을 저질러도 도로 외 구역이라면 형사처벌에서 제외됩니다. 벌칙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니 운전자의 안전운행 의식이 결여되죠.” 12대 중과실이란 교통사고 중 죄질이 무겁다고 분류된 교통사고 유형이다.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서 12대 중과실에 의한 사고를 일으키면 무조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만약 도로 외 구역에서 운전자가 과속운전을 통해 보행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12대 중과실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셈이다. 

출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교집합을 만들어야 할 때

  문제는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더욱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조사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삼성화재에 접수된 전체 교통사고 중 약 15.6%가 도로 외 구역에서 발생했다. 특히 해당 구역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3년간 약 12.3% 증가했다.

  시민교통안전협회 김기복 대표는 공동주택의 대형화에 따라 도로 외 구역이 많아졌고, 이는 교통사고 건수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가 대형화되고 공공시설 규모도 이전보다 확대됐습니다. 도로 외 구역이 그만큼 늘어나면서 차량도 많아지고 교통사고 발생건수와 점유율이 높아진 거죠.” 그러나 경찰신고, 사고조사의 의무도 없어 국가의 공식 교통사고 통계에 집계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도로 외 구역의 안전관리 실태를 파악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존재하더라도 개선이 어렵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대전의 한 어린이가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를 걷던 중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지역이 도로 외 구역으로 분류돼, 가해자는 1심에서 12대 중과실로 인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가 받은 형량은 금고 1년 4개월이었다. 이에 반발해 지난 2018년 1월 도로 외 구역의 교통사고와 관련한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글이 게시됐다. 약 20만명이 청원에 참여하자 정부는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아직 개정 발의안만 제출됐을 뿐 진척은 없다.

  최양원 교수(영산대 드론교통공학과)는 도로 외 구역 문제를 공론화해 「도로교통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제한속도를 설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해요. 단지 내 교통안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요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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