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포도밭과 양조장을 가진 와이너리가 외국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와이너리가 한국인의 철학을 담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주 술기로운 주류생활에서는 대부도에 위치한 그랑꼬또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해풍을 맞고 자란 대부도 포도가 향기로운 와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양조가에게 직접 들어보자.

숙성실에서 와인 제조 과정을 설명하는 김다솜 팀장.

대부도에 자리잡은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32개 조합원이 설립한 그린영농조합이 운영한다. ‘그랑꼬또’는 프랑스로 ‘큰 언덕’이라는 뜻으로 대부(大阜)도의 한자 뜻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랑꼬또 와이너리의 양조장도 이름에 걸맞게 언덕 중턱을 깎아 지어졌다. 포도밭을 가꾸다 잠시 양조장을 들른 그린영농조합 김지원 대표는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므로 다른 종류의 술이 필요해요. 서양은 음식이 느끼해 타닌이 풍부한 레드와인으로 혀를 씻어내죠. 하지만 한국에는 김치가 있어서 떫은맛의 음료가 없는 거예요” 라고 전했다. 이 철학으로 만든 그랑꼬또 와인은 떫은맛이 적고 청량감이 풍부한 깔끔한 와인을 지향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다시 밭을 관리하러 떠났다. 요즘은 농번기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대신 김지원 대표의 딸인 김다솜 마케팅팀장을 따라 먼저 숙성실로 향해본다. 숙성실에 들어가니 후덥지근한 바깥과 달리 서늘한 공기가 감돈다. “1년 365일 17℃ 정도를 유지해요. 여름에는 여기가 가장 시원하죠. 반지하에 있기 때문이에요”라고 김다솜 팀장이 전했다. 와인은 온도가 30℃가 넘으면 식초가 될 정도로 온도에 민감하다.

  숙성실 한쪽에는 거대한 1만L짜리 탱크가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연간 1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 현재는 연간 7만병 정도를 생산한다. 이 장비들은 이탈리아의 유명 양조 장비 제작업체인 ‘델라 토폴라(Della Toffola)’ 제품이다. 포도의 품종과 양조장 규모에 맞춰 맞춤 제작해 단가가 높았다고 한다. 덕분에 와이너리 설립과정에 40여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와인을 유리병에 담고 코르크로 막는 작업을 진행하는 병입실은 아쉽게도 방문할 수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수입이 막혔던 스페인산 코르크가 최근 들어와 병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병입 전에는 청결을 유지해야 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다. “병입을 할 때는 여러 필터를 거쳐 무균상태로 만들죠. 효모가 조금이라도 들어갈 경우 발효가 다시 진행돼 터질 수 있어요”라고 병입 과정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뜨거운 햇살 속 영글어 가는 청수 포도.

  양조장 뒤편에 김지원 대표가 직접 관리하는 포도밭은 ‘청수’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을 가 살펴보니 나무마다 좁쌀만 한 포도송이가 맺혀 있다. 안내하던 김다솜 팀장은 밭 옆에 굴러다니는 돌들이 전부 밭에서 나온 거라며 돌을 골라내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품종으로 농촌진흥청이 그랑꼬또 와이너리에 양조를 의뢰했다. 결과는 대성공. 첫 빈티지인 지난 2015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각종 와인대회에서 상을 받고 ‘2019 한국-스페인 정상회담’에서 만찬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모처럼 와이너리를 방문한 만큼 테이스팅도 해본다. ‘청수 화이트와인’ 2019 빈티지를 가장 먼저 마셔본다.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느껴진다. “병입한 와인은 1년 정도 안정화를 해야 향이 피어나죠. 이 와인은 한달 반밖에 안 된 와인이에요. 그런데도 향이 느껴지고 깔끔해 기대하고 있죠.”라고 김다솜 팀장은 설명했다. 2018빈티지는 조금 더 달콤하고 파인애플, 리치 향 등이 풍부하게 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시음 공간.    사진 홍설혜

  ‘청수 화이트와인’은 와이너리에서 구매할 경우 6만원으로 가격이 높은 편이다. 재배하기 까다롭고 아직 재배한 지 몇 년 안돼 생산량이 연간 3000병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포도송이를 많이 남겨 재배했더니 나무가 죽은 적도 있다.

  주력 상품인 ‘캠벨’ 와인도 레드, M5610, 아이스 와인을 차례로 시음해봤다. 캠벨은 지난 1954년 대부도에 들어왔다. 캠벨은 미국 품종이지만 현재는 세계 생산량의 90% 정도를 한국에서 재배할 만큼 한국인 취향에 맞는 포도다. 특히 대부도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당도와 산도가 높고 향이 온 마을을 감돌 정도로 풍부해 널리 재배되고 있다.

  ‘그랑꼬또 레드’는 다른 레드와인에 비해 타닌이 적어 로제와인에 가깝다. 덕분에 대부도 해산물과도 잘 어울린다. ‘M5610’은 세미 스위트 로제 와인이다. 벨런스가 좋아 아시아 와인트로피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향 등의 향신료 향이 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아이스 와인’은 오렌지 빛깔의 스위트 와인이다. 아쉽게도 이제 판매용도 품절되고 시음용도 다 동났다고 한다. “아이스 와인은 포도를 인위적으로 얼려 당분을 농축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서 아이스 와인을 만드는 해에는 다른 와인 2가지를 못 만들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이스 와인’을 한모금 마셔보니 달콤한 캐러멜 향과 바닐라 향이 느껴진다.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돼 있어 기자가 체험한 견학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투어를 마치며 김다솜 팀장은 “와인은 하늘에 있는 별과 같이 무수히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외 와인, 한국와인 구별 없이 다양한 와인을 경험해보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면 어떨까요?”라고 독자에게 제안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가족과 함께 근처 양조장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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