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에 진행된 ‘국민의식조사: 격동의 한국사회 심층진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회를 가장 불신하고 있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어쩌다가 불신하게 됐을까.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법안을 만들고 정치를 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여기 누구보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장애인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려는 국회의원이 있다. 바로 이종성 동문(회계학과 88학번)이다.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는 소외계층과 약자를 선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따뜻한 보수' 꿈꾼다. 그의 한평생을 함께 돌아봤다.

중앙대 입학을 위해

공대에서 회계학과로

지원 전공을 바꾸기도
 
장애인 복지 발전의

디딤돌을 만들기 위해 

 

소수자 대변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선 장애인 비례대표가 단 1명도 없었다. 21대 국회에선 장애인 비래대표 4명이 장애인계를 대표해 의정활동을 펼친다. 이종성 동문도 그중 하나다. 국회 개원일을 앞둔 지난달 13일, 그를 만나 그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앞으로의 포부까지 들어봤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당선 소감이 궁금하다.

  “총장님께서도 동문이라고 축하 인사를 보내주셨어요. 여기저기서 축하를 많이 받고 있답니다. 21대 국회 개원일에 가까워질수록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보수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를 했잖아요.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우리 쪽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얼마만큼의 힘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많이 엄습해오고 있죠. 그래서 국회 개원일을 앞두고 여러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중압감과 무게감이 훨씬 크기에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많기도 하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제가 장애인계를 대표해 국회에 입성했잖아요. 그렇기에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을 가장 많이 다루는 보건복지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선택하려 해요. 그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됐던 현안들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20대 국회 임기 동안 제출됐던 장애인 관련 법안 180여개 정도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될 예정이에요. 폐기되는 법안들 중에는 21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면 좋겠다 싶은 법안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법안들을 다시 살펴보는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폐기되는 법안 중 어떤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추진하고 싶나.

  “‘장애인 권리 보장법’을 21대 국회에서 추진하고 싶어요. 기존의 장애인 복지 체계에서는 산발적으로 여러 제도와 정책들이 추진됐어요.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산발적인 현 제도들을 장애인 권리 차원에서 하나로 묶는 법안이죠. 장애인계에서는 그런 내용의 법안을 그간 많이 요구해왔습니다. 법안을 검토하며 21대 국회에서 수정해서 올릴 부분은 없는지도 공부 중이에요. 그동안에는 심도 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 공부할 게 참 많네요.(웃음)”

사진 고민주 기자
사진 고민주 기자

  넓은 평야가 펼쳐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닌 이종성 국회의원의 동네에는 중학교가 없었다.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 “당시에는 휠체어를 타고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 서울로 집을 이사 했어요. 서울에서도 어디로 이사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 어머님께서 반경 1km 안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부 갖춘 동네를 찾았어요. 바로 흑석동이랍니다. 당시 흑석동에는 제가 다닌 학교들이 300m 안에 다 모여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대학 입학 원서를 넣을 때도 중앙대만 지원했어요.” 초, 중, 고, 대학교를 같은 곳에서 졸업한 그에게, 흑석동은 특별한 동네다.

  -어릴 적부터 회계학도를 꿈꾸며 공부해왔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 누군가 제게 꿈을 물어보면 과학자라고 대답했었어요. 공학도를 꿈꾸며 고등학교 생활을 했죠. 사실 저는 회계학과 원서를 쓰기 전까지는 회계학과라는 전공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웃음) 고등학교 3학년 때 회계학과 지원서를 작성하며 처음으로 회계학과의 존재를 알았거든요.”

  -그러면 고3 때 입시를 준비하며 급하게 지원 학과를 바꾼 건가.

  “원서 접수 기간에 급하게 지원 학과를 바꾸게 됐어요. 중앙대 공대에 입학 원서를 제출하러 갔는데 원서 접수창구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어요. ‘장애인은 원서 제출하기 전 교무과에서 상담을 거치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무과에 입학 원서를 들고 찾아갔죠. 교무과에 계시는 분이 말하기를 공대는 실험을 해야 하기에 장애인이 학교 다니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어요. 제게 장애인은 안 받아준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를 향한 소극적 거부였죠. 당시 고등학생인 저는 장애인은 왜 공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답니다. 그냥 난 안 되나보다 생각했죠.”

  -정말 속상했겠다.

  “맞아요. 속상한 마음에 중앙대 중문을 나오면서 원서를 팍팍 찢어버렸답니다. 그 길로 고등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접수창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담임 선생님도 속상해하셨죠. 선생님께서 ‘그래서 원서는 어디 있어?’라고 물어봤는데 제가 ‘다 찢어 버렸는데요···.’라고 말했답니다.(웃음) 그 부분은 선생님이 굉장히 황당해했어요. 학교장 도장을 받는 절차를 다시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죠.” 

  -몇년 동안 꿈꾸던 꿈을 접고 새로운 학과를 선택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끼리 상의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회계학과라는 전공이 있다고 저에게 알려줬답니다. 회계학과 관련된 일은 주로 앉아서 일하잖아요. 또한 숫자를 다루는 전공이다 보니 자연계였던 저와도 잘 맞을 것 같아 부모님께서 추천하셨죠. 실제로 학교를 다녀보니 할 만했어요. 또한 무조건 중앙대만을 가야 했던 저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학 진학을 시켜준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만큼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강했어요. 놀지도 못하고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지도 못했답니다. 동기들 눈에는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범생이’로 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웃음) 1학년 여름부터 공인회계사 준비반에 들어가 공부하기도 했어요.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다가 문득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1학년 말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봤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 같다.

  “그쵸. 취업을 향한 불안감도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니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에 들어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할 일이지 말이에요.(웃음) 아무튼 9급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했답니다. 낮에는 9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학교 수업을 듣는 생활이었죠.”

  -학생과 공무원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니 대단하다. 어땠는지 궁금하다.

  “젊었을 때 공직 경험을 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후회가 많이 돼요. 2가지 일을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학점도 좋지 않았어요. 어려운 대학 생활을 보내다가 3학년 말에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공무원을 그만뒀죠.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열심히 하려 했더니 취업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녀야 할 4학년이 됐어요. 늦어버렸죠. 만족할만한 대학 생활은 아니었답니다. 대학 생활에 낭만을 즐기지도,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아 아쉬움이 남아요. 학생일 때가 가장 좋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죠.”

  -그럼에도 중앙대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대학교 3학년 때 85학번 복학생 선배들이랑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대학 시절 추억은 대부분 가물가물한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다 같이 올라갔는데 한라산 중턱부터는 선배들이 저를 번갈아 가면서 업어줬죠. 선배들 덕분에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모두가 하나 된 일체감을 느꼈죠. 여행에서 회계학과 단체 티를 입고 사진을 찍기도 했답니다.”

중앙대 회계학과 재학시절, 선배들과 학과 단체 티를 입고 제주도를 여행한 이종성 동문. 사진제공 이종성 동문
중앙대 회계학과 재학시절, 선배들과 학과 단체 티를 입고 제주도를 여행한 이종성 동문. 사진제공 이종성 동문

  대학 졸업 후 그는 취업을 위해 뛰어다녔다. “지금도 회계학과가 개설돼 있는 학교가 별로 없어요. 그만큼 회계학은 전문 분야이기에 당시에는 더 취업이 잘됐답니다. 추천서도 많이 들어왔고요. 그런데 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장애 상태 때문에 면전에서 핀잔을 받은 정도 있어요. 난 대학교 입학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는 지난 20년 넘는 기간 동안 현장에서 땀 흘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해결하는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회계학을 전공하던 ‘범생이’가 장애인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에 어떤 계기로 들어섰을까.

  -회계학과 졸업 후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직장을 찾아다니다 직원을 뽑는 장애인 단체를 알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한국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였어요. 지금 지장협 회장님께서 그 당시 부장을 맡고 계셨는데 제게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 곳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죠. 저는 어릴 적부터 장애 때문에 교육, 진학에서부터 취업까지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제가 겪은 어려움을 개선하는 일도 참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어요.”

  -전공과 관련 없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아무래도 회계학을 전공했는데 운동단체에 들어오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요. 사회복지 분야에 전문성을 갖출 필요성을 느꼈죠. 그래서 사회복지 쪽으로 유명한 중앙대 대학원에 갔어요. 중앙대와 인연이 참 길죠.(웃음) 직장을 다니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됐답니다.”

  -대학원 졸업은 아직 못했다고.

  “수업 이수 시간을 채워서 졸업하는 방법과 논문 쓰는 방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졸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겁도 없이 논문 쓰는 졸업을 택했죠.(웃음) 직장을 다니면서 논문을 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수료만 하고 아직 졸업을 못 했어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제 담당 지도 교수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셔서 지도 교수님 없이 혼자 논문을 쓰게 돼 더 어려워졌죠. 그래서 졸업장은 못 받고 수료증으로 대신하고 있어요.”

  -20년 넘는 기간 동안 현장에서 활동한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서 바라봤을 때 가장 두드러진 장애인 복지 문제는 무엇이었나.

  “두드러지는 문제를 꼽을 수가 없어요. 전반적으로 문제인 상황이기 때문이죠. 장애인 복지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함께하는 사회’라는 말을 사용하잖아요. 함께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해요. 하지만 교육 받을 기회, 일할 기회, 여가를 함께 즐길 기회들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어요. 우선적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가 참여할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어요.

  장애인을 향한 인식도 마찬가지랍니다. 말로는 장애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을 포용해 줄 수 있는 기업들이 많지 않아요. 장애인을 향한 비하 발언과 막말 사태가 많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죠.”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장애인 문제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문제해결에 가장 목말라 있는 장애인이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세력화해야 함을 느꼈죠. 장애인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든,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내세워 간접적으로 참여하든 간에 우리의 목소리를 최대한 키워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지장협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어요. 정치 지도자 육성 교육을 제가 주관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에서 장애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찾다가 저에게 연락이 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됐답니다.”

  -정치인으로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원칙이나 신념이 있는지.

  “기자님은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정치인하면 맨날 약속 안 지키고 거짓말하는 이미지잖아요.(웃음)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최고의 미덕은 속이지 아니하며 최고의 지혜는 속지 아니 한다’ 제가 학창 시절부터 제일 좋아하던 이야기랍니다. 좌우명처럼 여기는 이 말처럼 앞에서 거짓말하고 감언이설 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으려 해요.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죠. 스스로의 감정에도 속지 않을 거예요. 의정활동을 하는 데 있어 제 신념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요.”

  -앞으로 국회에서 장애인들을 대표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장애인 단체의 요구와 건의 사항들을 받고 있답니다. 현장에 답이 있기에 장애인과 항상 소통하면서 부족한 사항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앙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학 생활은 취업을 위한 관문이 아니에요. 지성적인 판단력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시기죠. 대학 4년 동안 최고의 지성을 갖춰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웠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 관련 스펙만 잔뜩 쌓기보다는 여러 가지 인문, 사회, 경제, 정치 분야를 두루 공부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사회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고, 또 정치에 와서 일하는 것처럼 자신의 관심분야는 딱 하나로 한정할 수 없어요.

  또 많은 학생들이 정치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요. 이 같은 인식이 단순한 혐오 의식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보수, 진보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평가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보수 진보의 제대로 된 개념을 알고 바라보면 사회를 보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죠.”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이에요. 모태와도 같죠. 저보다 중앙대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기도 해요. 저는 대학원 과정까지 중앙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굉장히 긴 시간을 중앙대와 함께했답니다. 또 서울캠이 있는 흑석동을 기반으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울고 웃기도 했죠. 저를 있게 해 준 중앙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고맙고 감사한 마음도 절로 들어요.”

-주요경력

2020.04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미래한국당 소속 비례대표)

2013.08~2020.02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

2016.03~2016.12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미래포럼 총괄분과위원

2014.05~2018.03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부회장

2012.07~2013.07 제8대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2009.12~2011.12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 장애인문화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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