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문화 향유권 보장 필요

권장에 그친 법안 바뀌어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농인의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화언어(수어)다. 우리나라의 공식 언어도 한국어와 수어, 2가지다. 농인은 최고도 청각장애인에 해당하며 수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회적·언어적 소수집단이다. 수어는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들이 몸짓이나 손짓으로 표현하는 의사 전달 방법으로 한국어와 다른 하나의 언어 체계다.

  1년에 약 22명. 지난 2011년 국립중앙도서관이 발표한 1년 동안 공공도서관에 방문한 농인 이용자 수다. 그리고 약 68%. 강남대학교에서 지난 2012년 청각장애인 도서관 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도서관에서 농 친화적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할 경우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농인의 수치다.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문화생활 향유는 잉여 행위가 아니다.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농인의 수요는 많은데 농인을 위한 공급은 없다. 불균형이다.

  지난 2014년 대구대학교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소 주최로 진행된 조사연구에 따르면 농인이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뽑은 지원 방법은 농인 수어 해설가 또는 수어 통역사 배치, 문자 전광판 제공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 문화·예술 활동의 차별금지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문화·예술사업자는 장애인이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적극적 참여를 도울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농인의 문화생활 보장하는 제도적 지원은 미비한 실정이다.

  있으나 마나 한 법안은 농인의 문화 향유권을 방치해도 무관하도록 방임한다. 실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8조는 한국수어, 자막 등을 이용한 영화 상영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할 수 있다’ 정도의 법률은 규제가 아닌 권장이다. 게다가 해당 법안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나마 있는 법안마저 유명무실하다.

  공연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극에서 ‘배리어 프리 공연’이 키워드로 떠올랐으나 논의는 활동 보조 등 물리적 지원에서 그쳤다. 농인이 작품을 직접 관람하고 향유할 때 필수적인 자막·수어와 관련된 변화는 미비했다. 설령 자막·수어를 지원한다 해도 모든 공연이 아닌 일부 회차에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데 그쳤다. 연극을 제외한 무용이나 국악, 뮤지컬 장르는 더 열악하다. 여전히 농인은 주체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다.

  지난 2018년 래퍼 에미넴이 관객을 위해 수화 통역사와 함께 수화 랩을 선보인 사실이 알려져 이목을 끈 바 있다. 이처럼 해외 여러 국가는 농인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수어 통역·자막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은 배경 설명이 흘러나오는 ‘스마트 안경’을 도입해 장르나 회차에 상관없이 언제든 청각 장애인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수어 없는 자막 제공이 농인을 위한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비한 국내 현황을 되돌아봐야 한다.

  농인의 언어적 권리를 존중하라. 누구나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농인의 수어를 사용하는 언어소수자라는 이유로 문화생활을 누리는 데 차별받아선 안 된다.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아무런 ‘장애’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문화는 함께 향유할 때 가치 있다. 일부끼리만 주고받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이제 같이 좀 즐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