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으로 공을 잘 차는 법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법이 몸에 배어 있는 선수. 그는 엘리트 코스에서 축구를 배우지 않은 촌놈이었지만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는 바로 최전방 공격수, 중앙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까지 소화해 온 노력파 축구선수 조유민 동문(스포츠과학부 15학번)의 이야기다. 코로나19로 빼앗겼던 봄이 그라운드에 찾아올 날을 고대하며 조유민 선수를 만나봤다.

거짓말하지 않은 땀방울이 모여

치열한 그라운드에서의 90분 

“그라운드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 기대하고 있다” 5년전 최덕주 감독은 1학년이었던 조유민 선수에게 기대를 표했다. 감독의 예상은 적중. U-23 대표팀 첫 경기에서 90분 내내 벤치에 앉아 있었지만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연습한 그는 대회가 끝날 때 즈음 그라운드에서 풀타임을 누볐다. 그는 매 경기마다 한단계 성장한다. 기회를 잡을 줄 아는 그의 눈빛은 축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났다. 열심히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 그에게서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K리그 개막이 연기됐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2달전에 시즌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코로나19로 시즌이 미뤄졌어요. 기약 없는 기다림에 선수들이 많이 지루해하고 있죠. 시즌 준비로 힘을 바짝 주고 있는 상태였는데 시즌이 미뤄져서 힘이 풀려버렸거든요. 그렇지만 운동은 끊임없이 해야 하기에 운동하고 집 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보내던 중이었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맞아요. 아버지의 고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계기였죠. 아버지가 그곳에서 축구를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 보였어요. 어린 시절 경험이라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요.(웃음) 그때부터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에 관심이 생겼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하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을 했죠.”

  -야구와 축구 중에서도 축구를 택했던 이유는.

  “야구는 여러 장비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종목이잖아요. 반면에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기에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처음에는 하태호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취미로 축구를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체육부장 선생님께서 축구부가 있는 다른 초등학교 체육부장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스카우트를 받아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며 본격적으로 축구인생이 시작됐답니다.”

  -축구를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이렇게 끈질기게 축구를 하리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웃음) 아마도 그냥 취미로 하겠다는 이야기인 줄 알지 않았을까요. 아 참, '네가 축구를 시작했으니 힘들어서 그만하겠다는 이야기 꺼내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나네요.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그만두라고 할 거다’라고 하셨죠. 그래서 축구를 그만둔다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죠.”

  -이후 중앙대에 입학한 계기는.

  “당시 중앙대 조정호 감독님이 저를 스카우트해 중앙대에 오게 됐어요. 고등학교 재학 당시 축구하는 저의 모습을 보시고 중앙대에 데려오셨죠.”

  -새내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미팅을 나가보고 학교 축제를 즐기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외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여서 축제를 즐길만하면 숙소에 들어가야 했죠.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평상시에도 수업 듣고 운동 갔다가 오후 10시까지는 무조건 숙소에 들어가야 해서 뭔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결국 새내기 시절을 잘 누렸다고 할 수는 없죠. 그래도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니 숙소에서 친한 형들과 야식을 먹으며 저희끼리 추억을 쌓았던 재밌던 기억이 많이 나요.”

  -대학 시절 어떤 선수였나.

  “그때는 공격수였는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선수였어요. 열심히 연습하는 습관이 몸에 배 있었죠. 그래서인지 최덕주 감독님께서 저를 많이 이뻐해 주셨답니다. 덕분에 1학년임에도 많은 게임에 뛸 수 있었죠. 경기에서 골도 많이 넣었어요!”

  -주장이었던 U리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하나를 꼽자면.

  “하나만 꼽기는 어렵네요. 많은 경기가 머릿속에서 떠오르거든요.(웃음) 그래도 꼽자면 대학 시절 마지막 대회의 마지막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점수가 뒤집어지면서 패했답니다. 엄청 아쉽고 화도 나서 기억에 많이 남네요.”

  -중앙대 재학시절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남자 축구 대표팀 멤버에 발탁되며 국가대표에 데뷔하기도 했다.

  “유니버시아드는 대학 올림픽이에요. 대만까지 가서 다른 대학 선수들이랑 축구 경기를 치르니 매우 재밌었어요. 이전까지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랑은 축구 할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기분도 들었죠.”

  -'2019 U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중앙대가 거머쥐었다. 중앙대 소속으로 U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로서 감회가 새로웠겠다.

  “제가 주장이었을 때 팀에 있었던 후배들이 우승을 했죠. 솔직히 말하면 질투도 나고 부러웠어요.(웃음) 주장일 때 후배들에게 직설적으로 혼낸 기억이 많아 후회하기도 했답니다. 후배들의 경기를 보니까 잘하고 있더라고요. 각자의 스타일을 인정해줬다면 후배들이 더 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죠. 다시 돌아간다면 여유 있고 능글능글한 주장이 되고 싶어요. 한편으로 감독 부임 이후 5년 안에 중앙대를 강팀으로 만드신 최덕주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대학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8년 '수원 FC'에 입단했다. 프로 구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땠나.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학연, 지연이 남아 있어요. 또한 K리그 구단의 예산 자체도 충분하지 않답니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프로 리그에 진출할 때 어려움을 겪고 있죠. 저도 마찬가지였답니다. 프로 구단 입단을 거의 못 할 뻔하다가 상황과 운이 잘 맞아서 입단하게 됐어요. 김대희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덕분이죠.

  이제껏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뛰었던 제가 프로에 진출하고 나서는 중앙 수비를 맡게 됐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중앙 수비를 맡기셨거든요. 감독님의 지시인만큼 무조건 열심히 했어요. 그래도 수비랑 공격의 축구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프로 입성 첫해 소속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고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려 노력한 덕분이죠. 저를 믿어주시는 감독님 밑에서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경기를 뛸 기회도 많이 받게 됐어요. 경기를 많이 뛰면서 자연스레 실력도 더 늘게 됐죠. 그렇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히고 우승까지 하는 꿈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됐답니다. 아시안게임 때는 일정이 빡빡해 힘들었는데 동기부여가 워낙 강해 힘든 줄도 몰랐어요. 나라를 대표해 나갔다는 사실과 군 입대 면제가 가장 큰 동기부여였죠.”

  -결승전이 한일전이어서 더 긴장됐을 것 같다.

  “다른 토너먼트에 비해서 긴장이 안 됐어요. 오히려 더 차분해졌죠. 여기서는 흥분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결승전이라는 마지막 관문에 다다라서 한일전은 대표팀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히 주었거든요. 제 옆에 괴물 수비수 김민재가 있고 앞에는 손흥민, 황의조, 황의찬 등 훌륭한 선수들이 있으니 든든하기도 했죠.”

  -아시안게임 전후로 정말 많은 팬도 생겼다.

  “많은 팬이 생겼어요. 아시안게임 전 축구 팬들께 저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죠.(웃음) 제가 신인 때 수원 FC 퇴근길 풍경이랑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경기 끝나면 선수들이 바로 퇴근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시안게임을 다녀와서는 팬 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셨어요. 경기가 끝나면 앞에서 팬 분들이 기다려주시는데 너무 감사하죠.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수가 되도록 열심히 더 연습하고 있죠"

  -앞으로의 목표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오래 축구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평생 하고 싶죠. 저는 축구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하거든요. 그라운드에서는 다른 생각이 전혀 안 들고 오롯이 축구에만 몰입하게 돼요. 그럼에도 축구선수 생활을 은퇴하게 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되고자 해요. 지도자가 되면 어렸을 적 좋아했던 선생님의 좋은 모습을 배우고 싫어했던 선생님의 안 좋은 모습은 닮지 않으려 해요. 학연, 지연,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저의 신념으로 멋있게 후배를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제 마지막 꿈이랍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저에게 중앙대란 좋은 계기 그리고 꿈을 향한 계단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중앙대 덕분에 제 꿈에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죠. 촌놈이었던 제가 최덕주 감독님께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배우게 됐어요. 좋은 계기였죠.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감사해요. 중앙대 덕분에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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