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한다. 시대에 향수가 묻어나온다고. 몇몇 웃어른이 ‘나 때’를 회상하며 적적해지는 걸 보면 확실히 그 향수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매캐한 화약 냄새를 맡고, 누군가는 전위적인 구호에 취하며, 누군가는 흥건한 선혈을 떠올린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향기가 감돌까.

  입학하자마자 선배한테 충고 하나 들었다. “쓸데없는 데 관심 두지 말고 앞만 봐.”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그러다 도태될 뿐이야.” 신입생에게 현실을 주지시키려 했다면 성공했다. 선배는 21세기 대학생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에 관한 고찰도, 미래에 대한 열망도 없는 그런 세계다. 거기에 표리부동은 덤이었다.

  따라잡기도 벅찬 마라톤식 사회 구조, 그래 좋다. 그런데 마음 한쪽 깊이 쌓여있는 묵직한 배반감은 무엇일까.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목젖을 넘은 순간은 있었는가. 혈서와 깃발을 든 채 한강을 당당히 건넌 그들의 어깨를 부러워한다. 손에 쥔 건 익명 커뮤니티와 자칭 현실주의자들의 아집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채로 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시대정신을 상실했다.

  혹자는 반론한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솔직해지자. 그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당신들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포기하는 행태에서 과연 어떤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까. 

  총학생회 투표율은 에어팟을 끼워 넣고서야 간신히 과반을 넘겼다. 누군가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지켜낸 자치기구인데 말이다. 등록금심의위원회는 구성원의 무관심 속에서 학생대표자가 치워야 할 연중 과제로 전락했다. 누군가는 그놈의 협상테이블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는데 말이다. 대학평가가 떨어지면 익명 커뮤니티에서 ‘중망대’라 자조하며 혀를 끌끌 찬다. 누군가는 지난 1980년대 현실 속에서 이사장실의 집기를 연못에 던지고 해결방안을 촉구했는데 말이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격언이 무색해졌다. 모두 담담한 표정으로 본인들이 지옥이라 칭했던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안주를 안정으로 착각하는 순간 썩어갈 뿐이다. 본질을 직시하라.

  여전히 우리 주변은 사회적 의제와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도서관 앞에 우뚝 서 있는 의혈탑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의 흔적을 보여준다.

  동의하지 않는 자, 존중해보겠다. 다만 새로운 스무살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현실에 처박지 마라. 정신을 마모 시켜 일시적인 안정을 느끼는 건 당신으로 족하다.

  신입생 시절 고개를 반사적으로 끄덕이는 우리를 보며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단언한다. 너희가 뜻을 새기고 대학 생활을 이어간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껍데기 뒤로 숨은 그대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날개가 꺾인 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중앙인이여, 시대정신을 되찾아라.

박준 대학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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