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견해)와 view(견해) 사이의 inter(서로 주고받음) 작용을 보여 주는 일이 인터뷰(interview)입니다. 기자는 지난학기 게릴라 인터뷰에 이어 이번학기에도 인터뷰 코너를 맡게 됐습니다. 그간 여러 인터뷰 취재를 경험하며 기자는 진정한 언론인이 갖춰야 할 자세를 배웠습니다.

  기자는 첫 인터뷰 당시 사전에 준비한 질문지와 피상적인 인물 정보만 단순히 머릿속에 담은 채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큰 과오였습니다.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뻔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한 인물의 작은 초상화입니다. 초상화를 그리기 전에 화가는 인물을 몇 시간씩 살펴봅니다. 기자는 인터뷰에 임하기 전에, 과연 초상화를 그리기 전 화가의 모습과 비슷했겠느냐는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이후 구청장 인터뷰 취재 전 인터뷰이를 꼼꼼히 알아봤습니다. 인터뷰 전날에는 구청장과 마주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상상해보며 인터뷰이를 파악하려 했죠. 그 결과 인터뷰이와 편안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알아가려는 노력이 많이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진행됐던 거죠. 결국 취재 능력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기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알아가려는 노력, 즉 ‘진심’이 들어갔을 때와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취재가 질적으로 차이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언론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6년 전 세월호 사건 보도는 한국 언론의 부끄럽고 참담한 자화상이었습니다. 세월호 탑승자 수, 실종자 수 그리고 구조자 수를 정확하게 보도하지 못한 점.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물어 충격을 안겨준 점. 수백명의 생명이 물속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펜과 카메라는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향한 진심은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명확한 선박 침몰 원인 규명의 당위성과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을 세심하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언론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한국 언론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돌아봤습니다.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따옴표 저널리즘’이 대두되었습니다. 단순 받아쓰기로 전달에만 치중한 보도가 늘어났죠. 진실은 휘발되고 선정적인 언어만 기사에는 남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거죠. 유명인의 발언을 이해 없이 그대로 쓰는 건 언론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진심 담은 이해와 함께 제공하는 기사야말로 언론이 마땅히 써야 할 글이 아닐까요.

  괴테는 법률의 힘은 위대하지만 필봉(筆鋒)의 힘은 더욱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언론이 펜이 가진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펜촉의 끝에서 얻은 기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을 향한 진심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프레임을 씌워서 선정적인 보도를 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뉴스 가치가 증대된 언론 기사가 많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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