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 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건강장애학생의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일러스트 윤국화 학생
일러스트 윤국화 학생

 

건강장애학생 교육권 보장 목적

치료받으며 등교하고

출석인정도 받을 수 있어

 

병원경영에 존폐 좌우되고

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이어져

운영 매뉴얼 수립 필요

 

새 학기. ‘개학’이라는 말이 익숙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또 두려움으로 기억되는 시기인 3월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억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건강장애로 학업에 차질을 겪고 또래 친구조차 만나기 어려운 건강장애학생이 있다. 지난 2005년 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으로 병원학교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병원학교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봤다.

  교육권을 꽃 피우다

  건강장애학생이란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3개월 이상의 장기입원 또는 통원치료 등 계속된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하는 초·중·고등학생을 말한다. 이들은 장기치료 및 결석으로 학교생활과 학업 수행에 불편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인지적, 사회·정서적 적응에 어려움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건강장애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목적으로 병원 내에 설치한 교육기관이 바로 ‘병원학교’다.

  병원학교 수업에 참석한 학생은 본래 소속된 학교에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병원학교는 건강장애학생들의 학습 결손 및 출석 부담감을 최소화하고 이로 인한 진급 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건강장애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수업할 때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어려운 위험 요인을 보완할 수 있다. 음악 치료사로 일해온 백경실 외래교수(국악교육대학원)는 병원학교 수업이 건강장애학생의 치료 효과를 증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병원학교에서 이뤄지는 수업은 장기 입원에 의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울감을 감소 시켜 질병 치료에도 도움을 주죠.”

  병원학교 입교 절차에는 건강장애학생, 소속 학교, 시·도 교육지원청(교육청), 병원학교가 관여한다. 학생은 질병이 발생하면 진단서 등의 서류를 소속 학교에 제출하고 소속 학교 교사는 교육청에 특수교육대상자 선정배치 신청서 등을 발송한다. 교육청의 특수교육운영위원회에서는 건강장애 특수교육대상자의 적격성 여부를 심의한다. 선정 절차 동안의 수업결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정 일자보다 먼저 수업에 참여 가능하다. 건강장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어도 병원학교 수업을 원하는 원내 학생은 입교할 수 있다.

  총 33개의 전국 병원학교는 운영방식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 병원 자체 운영 방식과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 형태로 병원에 설치되는 방식이다. 서울시교육청 관할 병원학교의 경우 병원 자체 운영 방식으로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이 병원학교를 담당하며 대학생 및 자원봉사자들이 학생을 지도한다. 한양대학교병원학교 교육봉사 동아리 박중현 회장(경영학부)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 자원봉사자가 각 건강장애학생들의 교육과정을 구성한다고 전했다. 이외 24개 병원학교는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 형태로 교육청에서 특수교사를 배치해 운영한다.

  뿌리 없어 흔들리는

  최근 병원학교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강원대학교병원학교가 폐교를 결정했으며 부산대병원학교 또한 올해 폐교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8년 한양대학교병원학교는 재정난을 이유로 폐교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에는 화성브론코기념병원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았다.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과 원선숙 장학사는 폐교 원인을 경영상 이유라고 밝혔다. “화성브론코기념병원이 폐업하면서 병원학교는 함께 폐교됐어요. 병원학교에 소속됐던 아이들은 다른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죠.”

  폐교에 따라 건강장애학생들은 병원학교 수업을 이어가기가 불가능해졌다. 백경실 외래교수는 특수교육 중단이 건강장애학생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우려했다. “병원학교가 폐교되면 건강장애학생은 자신이 학생이라는 집단에 소속해 있다고 느끼기 어려워지죠. 병리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힘들고 자존감 하락도 계속되죠.”

  김혜리 교수(중부대 초등특수교육과)는 병원학교를 향한 제도적 지원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관할해서 병원학교를 관리·지원하는 제도가 미흡합니다. 병원학교 운영은 전적으로 소속 병원 및 교육청 상황에 따라 좌우되죠.”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김길태 교육연구사는 병원학교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안에 교육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업일시, 교육 프로그램 선정, 병원학교 특수교사 임용 및 지원 등 병원학교 운영은 교육청이나 병원학교 내부 자율로 결정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교육청 및 병원의 관심도나 교육 방향성에 따라 병원학교 운영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충북대병원학교에서 8년간 근무했던 이서영 교사는 특수학급과 비슷하고 교사의 재량에 따르는 방식으로 병원학교를 운영했다고 전했다. “병원학교 운영에 관한 세부 지침은 없었습니다 . 프로그램 개설 및 운영에서 지역별로 차이가 있었죠 . 전국적으로 병원학교 운영 방식 및 규정이 통일되지 않아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병원학교마다 운영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지역 차도 크다 보니 건강장애학생의 입·퇴교 절차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김혜리 교수는 학교 복귀 프로그램이나 소속 학교와의 연계시스템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건강장애학생의 학교 복귀 준비 과정도 병원학교별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소속 학교 교사와의 소통 부족은 건강장애학생의 학교 복귀에 걸림돌이 된다. 이서영 교사는 소속 학교 교사와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아 학교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던 건강장애학생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이전 학년에서 학교 복귀 없이 다음 학년에 진급한 경우 소속 학교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 복귀에 두려움을 겪기도 하더군요.”

  열매 맺을 시스템은

  병원학교 운영방침에는 개별화 교육계획 수립이 포함돼 있다. 개별화 교육이란 특수교육 대상자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학생 유형 및 특성에 맞게 진행하는 교육을 말한다. 그러나 김혜리 교수는 실제 병원학교 교육이 개별화 교육과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학교는 학급을 달리해 수업을 운영할 공간이 부족하고, 대부분 특수교사 1인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교급별로 학생을 지도하기 어렵습니다.” 이서영 교사는 개별화 교육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교과 수업은 1:1 개별화 교육을 지향했어요. 그러나 혼자서 많은 수의 학생들을 근무시간 내에 지도해야 하므로 여러 학생이 함께 복식 학급 형태로 공부할 때도 많았죠.”

  이서영 교사는 개별화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체감한 문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초등교사이기에 중등교과를 가르치는데에는 전문성이 없는 제가 교육계획을 수립 및 평가해서 소속학교에 송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학교장, 수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개별화 교육지원팀은 회의를 소집하기도 어려웠죠. 소속 학교의 교과 선생님들과 협의해 개별화 교육을 진행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병원학교 교사의 자격 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학교급의 학생들을 함께 수업하는 상황도 나타난다. 초등교사 자격증을 보유한 특수교사가 중·고등학생까지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그 예다. 박옥식 교수(사회복지대학원)는 이러한 상황이 병원학교 교육의 질을 저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과목에 관한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적인 교습법에서도 차이가 나타나죠.”

  병원학교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건강 상태에 입각해 병원 상황 및 의료진 의견 등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영함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병원학교에서는 학생의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주요 교과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교과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다수기 때문에 음악, 미술 등 심리·정서적 교육과정 및 활동 중심 교육과정이 주가 된다. 김혜리 교수는 이로 인해 중·고등학교 건강장애학생의 교육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교과수업을 중심으로 수업해야 하는 중·고등학교 건강장애학생은 어쩔 수 없이 통원치료를 선택하거나 화상 강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중·고등학교 건강장애학생들의 병원학교 이용률이 매우 저조한 실정입니다.”

  화상 강의 시스템은 개별 공간에서 화상으로 수업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병원학교 현장과 마찬가지로 교사 및 또래 친구와의 교류를 통한 사회·정서적 능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혜리 교수는 이러한 화상 강의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화상 강의 시스템은 대면 수업이 어려운 학생과 가정에서 치료 및 요양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대안적 차원에서 사용하는 정도가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건강장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면 여러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혜리 교수는 나타난 문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병원학교는 건강장애학생이 만족스러워하는 교육 지원 형태다. 병원학교는 건강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기관이다. 그러나 운영 지침 및 매뉴얼 부재는 병원학교 교육의 질을 저하하고 원활한 운영을 방해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과 운영 지침 수립을 재고함으로써 건강장애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교육권의 보장 범위를 넓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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