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어떤 분야에 열광하며 애정을 쏟는 일입니다. 그리고 덕질을 즐기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게임, 만화 등에 한정해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장르와 분야를 상관하지 않고 쓰이게 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자 역시 가슴 속에 ‘최애’ 하나쯤 품고 사는 공연 덕후입니다. 덕질은 각박한 현실을 버티고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방에 살았더라도 덕질이 마냥 행복했을까요.

  서울은 장르를 불문하고 덕질의 성지입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즐기는 공연을 들여다볼까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만 전국 공연시설의 34.8%가 존재합니다. 수도권까지 범위를 넓히면 50.3%로 절반 이상입니다. 공연 건수 역시 49.6%가 수도권에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 외의 다른 분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윤택한 덕질을 위해서는 서울로 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는 대구 출신입니다. 대구에서 휴학 중이던 시기, 공연 덕후인 저는 서울을 오가며 힘겹게 덕질을 했습니다. 무명 아티스트는 홍대에서, 제법 유명한 아티스트는 올림픽공원에서 공연을 열었으니까요. 이동하는 데만 왕복 여섯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외출에 불과했던 덕질이 지방에서는 여행이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스스로가 중심에서 소외된 비주류처럼 느껴질 때였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대구에서도 ‘투어’공연을 열어주길 기도하면서 지방이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주변에서는 돈과 시간을 쏟아가며 서울을 오가는 수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생활에 대한 지방과 서울 간 인식의 차이인 셈이죠.

  휴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지금, 지방과 서울의 문화 인프라 차이를 새삼 다시 느낍니다. 서울에서는 거대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을 피해 작품성 있는 독립영화를 훨씬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공 미술관은 거장의 전시를 일년 내내 진행하면서도 입장료가 없습니다. 대구보다도 낙후된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화격차가 과연 어떻게 다가올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문화 인프라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꼭 서울에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청년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지방에 남은 청년의 삶은 악화되는 현상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문화격차는 이러한 수도권 청년인구집중을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 정책은 문화 격차로 인한 삶의 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지방에 일자리와 주택을 공급하면 청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리라 여기는 것만 같습니다. 직장과 주거공간이 있지만 즐길 거리가 없어 주말이면 텅 빈 유령도시가 되는 지방의 혁신도시가 떠오릅니다. 삶의 질이 메가트렌드가 된 지금, 문화 인프라가 지방을 떠나는 청년을 붙잡을 의외의 수단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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