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자본의 착취 구조가 문제”
벤야민 “구조보다 관조로”

마르크스와 벤야민, 독일의 두 학자는 자본주의 이념을 뒤흔들었다. 자본에 매몰된 사회를 바라보며 변혁을 역설한 그들의 외침은 현대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그러나 같은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사상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두 학자는 문체에서부터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저술할 때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당대 경제학자의 이론들을 분석했다. 
벤야민은 개인의 주관적 표현을 즐겨 썼다. 예컨대 부르주아 계층의 은폐된 실내공간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유리의 투명성을 ‘비밀의 적’에 비유했다. 이러한 표현법은 당시 제도권 교육과 부합하지 않았고 그가 쓴 교수자격 논문은 학문적으로 엄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려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태도 또한 사뭇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사회 구조 분석에 매진했다. 그는 자본의 착취구조가 계급 간 투쟁을 불러온다며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했다. 자본의 이윤 극대화가 실업자를 늘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기 때문이다. 대량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사람이 없어 자본주의가 쇠퇴하리라는 예언도 남겼다.

  반면 벤야민은 자본주의를 관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19세기 파리의 거리는 가스등과 온갖 상품으로 뒤덮인 물신의 공간, ‘아케이드’였다. 벤야민은 이 공간이 인간에게 ‘판타스마고리아’라는 환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화려한 물질세계에 잠식됐을 때 개인이 정치적 사안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에 잠식되지 않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깨어나야만 진정한 혁명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한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주체적 각성을 강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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