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다. 정당한 근거 없이 허황됨을 일컫는 말이다.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한다. 터를 잡은 자리에는 주춧돌과 기둥을 세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주춧돌을 둔 자리는 터의 중심이자 근간이다. 이 의미가 확장돼 터무니는 정당한 근거나 이유를 뜻하게 됐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터’에 자리 잡는다. 나고 자랐던 지역을 떠나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새로운 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그 터를 향한 관심은 비례하지 않는다. 매일 밟고 있는 땅도 지구 저편 낯선 땅처럼 데면데면하긴 마찬가지다. 기자 또한 매일 캠퍼스를 들락거리지만 스스로를 이방인 같다고 여겼다. 흑석동은 서울캠이 있는 지역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지역보도부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지역보도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했다.

  ‘흑석동과 검은 돌은 무슨 상관이지?’, ‘지하철역명에 대학명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중앙대입구역은 없나?’ 과거에 쉽게 떠올린 질문이었으나 정작 답을 찾으려 노력한 적은 없었다. 지난 1951호에서 흑석동의 지형·지질적 특징을 분석하는 기사를 맡았다. 낯설었던 지역에 다가서는 계기였다. 취재를 통해 303관(법학관) 공사 당시에도 검은 돌이 발견됐음을 알게 됐다. 중앙대입구역 대신 흑석역이 된 까닭도 흑석동의 지형 특성과 관련됨을 파악했다. 얄팍한 질문에 묵직한 답이 채워졌다. 지역과 대학은 유리될 수 없음을 각성했다.

  “기자님도 토론에 참여해요. 의견 많이 내주실 거죠?” 지난 24일 동작구청에서 열린 주민토론회를 취재할 때였다. 이방인 같은 이에게 지역의 미래를 묻다니. 부담감이 기자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작구가 특화해야 할 영역을 구민들 앞에서 발표하게 됐다.

  구민들에게 스스로를 중대신문 기자라고 소개했다. 구민의 눈에는 기자가 곧 중앙대학생으로 비칠 테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동작구 내에 3개 대학이 있으나 대학생이 문화생활을 즐길 공간이 부족한 점을 짚었다. 대학생은 핵심 소비 주체이므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문화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에 연고가 없는 대학생의 의견이라며 구민들이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오랜 친구의 고민을 듣듯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구의회 의장·직장인·학부모·노인 등 다양한 구성원이 모인 토론회였다. 나이, 직업을 막론하고 지역의 미래를 말하는 태도에는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지역을 향한 그들의 애착은 지금껏 빈약했던 지역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채워줬다. 지역을 바라보는 대학생의 시선은 그들에게도 새로운 안목으로 다가왔으리라. 서로의 빈틈이 메워지는 순간이었다.

  낯익은 동네를 벗어나 대학에 왔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주춧돌을 마련하는 시기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서’ 인생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지 헤아려보자. 대학생들이 지역구성원으로서 온전해질 수 있도록 대학과 지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지역보도부에 몸담는 동안, ‘터무니있는’ 소리 하겠다.

 

손의현 지역보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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