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자.

  학문하는 곳이고 학생들을 가르쳐 좋은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다. 인력과 시설, 시스템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의 최종 수혜자는 학생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수직적 구조 아래의 리더십 그룹들을 재단이 감싸고 있다. 뒷받침하는 행정 직원들은 이들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 이 집단은 이제 학교를 위해서가 아닌 실적과 특혜만을 위해 매진한다. 그러니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은 제도만을 만들며 결실은 아는 자들만 가져간다.

  즉 결과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모 장관 후보자의 모습에 대중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의와 청렴으로 포장되었던 자가 알고 보니 특혜에 더 큰 특혜를 반복하였기 때문 아닌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교수님들은 ‘선생님’ 그 자체로서 존경받아야 한다. 그런데 학문과 연구를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자리와 정치에 집착한다. 이는 끊임없는 열등감의 반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해 ‘스승의 날’ 발생한 한 사건은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을 어디까지 모욕할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학생들을 위한 학문과 연구 성과가 출중한 교수님들은 존경하지 말라 해도 존경받는다. ‘학생 고객 시대’라는 궤변을 보자. 그럴듯하게 서비스로 포장했지만, 단순히 ‘돈줄’이라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소중한 사람일수록 결과보단 조언, 방법을 알려주고 때로는 혼도 내야 한다. 개별주체를 존중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돈줄일수록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며 무조건적 친절이 강요된다. 그 때문에 현장은 무례와 불친절, 떼쓰기와 혼란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학생들도 인기영합주의 수업이나 찾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고자 노력하자.

  선진기업일수록 ‘직원이 먼저, 고객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시스템을 움직이는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알고, HR은 갈등유발에만 급급한데 어떤 Customer Service (CS)를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러니 직원들도 스스로 격(格) 낮추는 승진, 직함 따위나 집착 중이다. 중요한 내부 CS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제발 일 같은 일 좀 하자.

  자 이제는 각자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why’를 생각하자.

  교수님들은 선생님 자체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학문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시면 된다. 학생들은 선생님들과 시스템을 믿고 열심히 배우면 된다. 직원 선생님들은 이 모두를 할 수 있게, 분리된 시스템으로서의 행정을 하면 된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한 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하라고 했다. 존경받아야 한다는 허기진 김칫국 마시지 말고 수신제가부터 하자.

  All바르게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최대 피해자는 학생들이라는 것 잊지 말자!

 

장지훈 
제 13대 노동조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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