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마지막 글자만 스치듯 봐도 당신이 생각났어요.”

  머릿속에서 나온 말치곤 꽤 감미롭다고 여겼다. 하지만 상대방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당신을 자주자주 그리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니 의아했다. 잘 와 닿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어설프게 말한 탓도 있을 테다. 하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당신이니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며칠을 두고 그때를 곱씹으니 시들한 반응 속 숨겨진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당신이 생각났다”는 부분이었다. 생각났다는 말은 “지금까지 당신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속에 품고 있었다. “불을 켰다”고 말하려면 여태껏 불이 꺼져있었음을 전제해야 하는 경우와 같다. 마음이 전등이라면 불빛이 ‘깜빡’ 꺼진 상태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때 전했던 말은 달콤하다기보다 씁쓸한 말이었다.

  이후로 뭔가 떠올렸다고 깨달았을 때면 돌연 그 대상에게 송구스러워진다. 생각해내는 순간 그동안 그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을 설득해봤다. 기억은 한정된 자원이고 망각해야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하지만 결국 납득하지 못했다. 심각한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망각은 종종 사랑·배려·정의 등 언제나 간직해야 할 것마저 앗아갔다. 근본적인 가치는 잠시나마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상기하는 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잊은 시간이 찰나라고 해도 다시 떠올리는 순간에 이미 무언가가 변해버린 뒤다.

  당신이 시큰둥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헤아린다. 전구에 불이 깜빡이듯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이 아니라 항상 빛나는 등불 같은 마음을 바라지 않았을까. 따라서 고민 끝에 내린 답은 간단했다. 더는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멈추겠다는 말이 아니다. 한순간도 마음에서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잠시도 잊지 않으면 생각해낼 일도 없으니까.

  중대신문 역시 같은 다짐을 새긴다. 각오는 개강호에서 이미 드러났다. 지난해 당선된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 현황을 점검해 중앙인이 뽑은 학생대표자의 발자취를 짚었다. 출범이 불투명했던 장애학생인권위원회(장인위)도 잊지 않았다. 난항을 거듭하는 장인위 설립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모든 중앙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인지 살폈다.

  그러나 이 중 새로이 떠올린 사안은 하나도 없었다. 한결같이 생각했기에 앞으로 다룰 주제만이 가득했다.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학내 사안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강사법·전공개방모집제도·안성캠 발전 등 짚을 문제가 많다. 지면 위 기사는 매주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중대신문이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중대신문은 새삼스레 독자를 생각해내지 않겠다. 정보전달, 여론형성 등 언론의 근본 가치도 그때그때 떠올리지 않겠다. 개강호부터 종강호까지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잊지 않으려한다. 앞으로 불빛은 절대 ‘깜빡’하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는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