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황진이라는 여인이 살았다. 생몰년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교유했던 사람들의 행적과 관련 기록을 살펴볼 때, 중종 재위 시절의 사람으로 짐작되니 대략 500년 전의 일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 즈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부터이다. 용모도 수려하고 노래도 곧잘 부르고, 글씨와 그림에까지 능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를 가까이 하게 된 이유는 십 여 편에 이르는 시(詩) 때문이었다.

  황진이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교감하는 16세기의 여인이다. 16세기를 21세기처럼 살다 간 짧지만 강렬한 그녀의 삶과 문학을 접하면서 고전시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의 시조는 오늘날까지도 절창으로 손꼽히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오늘은 시조에 비해서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한시(漢詩)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詠半月> 반달을 읊다 

誰斷崑山玉 누군가 곤륜산의 옥을 끊어다가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었네요.

牽牛離別後 (아마도) 견우와 이별한 후에

愁擲碧空虛 슬픔에 겨워 푸른 하늘  빈 곳에 던져두었나 봐요.

 

  우리는 다양한 욕망을 갖고 살아가며, 어쩌면 삶이란 이러한 욕망을 채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기생으로 살다 간 황진이가 가장 절실하게 원했지만, 끝내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별 없는 오롯한 사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 많고, 이 작품 또한 반달을 읊조리며 외로운 심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중세의 여인에게 빗(梳)은 자신을 꾸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빗을 던져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예쁘게 단장하는 것이 의미를 상실했음을 뜻한다. 그렇게 던져진 빗은 반달이 되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아마도 배가 고팠었는지), 내가 반달을 통해서 떠올린 이미지는 먹음직스런 만두였더랬다. 그러다 한 번 두 번 다시 읽어보니 이내 반달과 빗의 은유가 자아내는 감동이 밀려 왔고, 촉촉이 눈물도 조금 맺혔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반달을 볼 때마다 황진이의 언어로 형상화된 직녀의 빗이 떠오른다.

  서점에 가면, 최근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자기계발서가 여전히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시집은 저 한 귀퉁이에 놓여 있기가 일쑤다. 요즘처럼 시(詩)가 외면 받는 세상은 슬프다. 자기계발서도 좋지만, 시대와 언어를 초월해서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낭만적인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저 하늘의 반달을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저마다의 반달 하나쯤 가슴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성문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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