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열번째 주인은 프리랜서입니다.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웹툰작가, 편집디자이너가 예시이죠. 이들을 통칭하는 단어는 자유롭게일을 한다는 뜻을 가진 프리랜서인데요. 많은 시간과 작업을 거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노동 환경에서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 영역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계약 통한 ‘노동’하지만
노동자 아닌 ‘개인 사업자’

법과 사회적 인식의 바깥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프리랜서

“이제 본격적으로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영상 속 유튜버가 밝은 표정과 제스처로 입을 뗀다. 8년차 프리랜서인 그는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점, 매일 같은 동료들과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 ‘프리랜서의 장점’을 설명한다. 그러나 곧이어 프리랜서가 선보인 완성된 결과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완벽한 창작물이 완성되기까지 들인 노력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도 프리랜서의 창작 결과물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다. 근로자로 취급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속한 프리랜서로부터 실제 프리랜서 업무 활동 중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일러스트 구순모 학생

 

  ‘프리’하지 않은 그들의 현실
  ‘프리랜서’란 계약 형식과 무관하게 일정한 기업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계약에 의해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률(노동법)에 적용받지 않고 주로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방송PD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프리랜서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의 업무 환경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업무가 이뤄지는 과정 역시 의뢰나 요청 등을 통한 계약으로 이뤄지곤 한다.

  하지만 정작 프리랜서로서 활동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잦다. 민찬욱씨(34세)는 유명 포털 사이트 게임판 포스트에서 웹툰을 연재중인 4년차 프리랜서다. 그는 작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가격을 합의한 후 창작물을 제작하면 작업 도중 계약서가 작성되기도 해요. 작업물을 전달한 이후 계약서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잦았죠.” 그는 실제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굿즈 디자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도중 계약이 무산되며 인건비를 아예 받지 못했다.

  방송 매체에서 프리랜서 PD로 활동 중인 A씨 역시 계약서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계약이 구두로 이뤄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죠. 계약서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아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어요.” 그는 계약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는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보호를 받으려면 업계로부터의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의미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는 창작자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고시하고 있다. 영화, 방송 등 총 8개 문화예술분야에서는 45종, 미술 분야에서도 11종의 표준계약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준계약서는 실제 프리랜서들의 계약을 완벽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B씨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부당한 일을 겪었던 경험으로 계약서 작성을 언급했다. “계약을 하기위해 표준계약서를 언급하더라도 ‘표준계약서대로 계약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불공정한 계약서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워요.” 그는 표준계약서가 법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15년 이상 프리랜서 경력을 가진 김희경씨(36세)역시 프리랜서 활동에 있어 가장 빨리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계약서를 꼽았다. “문체부에서 발표한 표준계약서에는 실무자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프리랜서의 업무 활동이 계약과정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으려면 표준계약서 사항의 강제성이 필요해요.”

  사회적 인식조차 제자리걸음
   프리랜서의 작업물에는 가격의 최저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와 프리랜서의 합의를 통해 작업물의 가격이 책정된다. 그러나 엄연히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작업물임에도 제 값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일러스트 및 웹 편집 디자인 프리랜서 박보배씨(27세)는 클라이언트로부터 ‘좋은 일에 쓰겠다’며 작업물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다. “유기동물 보호단체에 기부할 목적으로 쓰인다는 이유로 작업물의 가격을 낮게 책정 받았던 적이 있어요. 낮은 가격에 난이도가 높은 추가 작업을 강요받기도 했고요. 작업 과정을 자세히 설명 하고 가격 추가 안내를 하니 되려 난감하다는 반응이 돌아왔죠.” 그는 클라이언트로부터 ‘간단한 작업인데 가격 추가가 되니 당황스럽다’는 식의 대답을 들었다. 일러스트 작업 과정의 난이도나 가격 기준을 책정할 수 있는 지표가 부족해 당황스러운 경험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는 결국 해당 일러스트 작업물에 대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

  6년차 프리랜서인 이다혜씨 역시 클라이언트가 프리랜서의 아이디어와 작업물을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요소로 인식해 고충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콘텐츠 마케팅과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작업물을 만들기 전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으니 저렴하게 해 달라’든지 ‘적당히 아이디어 좀 공유해 달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이밖에도 오프라인 미팅이나 프리랜서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젝트 회의마다 불러내기도 했죠. 회의에 참여하고 기획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일이 전부 제 노동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글이든 그림이든 프리랜서 개인의 특성과 실력을 작업물에 잘 반영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엄연히 대가를 요구받아야 할 작업물이 평가절하 된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작가의 경우 인지도가 낮다면 ‘인지도를 쌓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받기도 한다. 민찬욱씨는 처음 외주 당시 작업물에 대해 낮은 대가를 책정받았다고 말했다. “외주를 의뢰한 회사 측에서 가격 협상 기준을 알려주지도 않고 단가를 매우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가장 처음으로 한 외주의 경우 25컷씩 3편의 홍보 웹툰을 그리는 비용으로 총 20만원을 받았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이 프리랜서의 작업물을 노동의 결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프리랜서가 과중한 업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직업으로서 대우받지 못한다. 민찬욱씨는 웹툰 작가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4시간을 일했다. “웹툰업계에서 높은 퀄리티를 요구해 클라이언트와 독자의 기준에 맞춰야 했죠. 이 과정에서 생활과 작업환경이 거의 분리되지 않았어요.”

  김현아씨(30세)는 수공예나 자수로 그림을 완성하는 프리랜서다. 그는 주변에서 프리랜서를 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게 불편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도 마감 시간이 있는데 필요할 때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게 힘들었어요. 작업이 중간에 방해받는 부분도 고려하지 않았고요. 특히 제가 하는 업무를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았어요.” 이다혜씨는 주변인들이 프리랜서를 ‘아르바이트’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저처럼 기획을 하거나 글 쓰는 일로 프리랜서를 한다고 하면 프리랜서로서의 확실한 정체성을 요구하기도 해요.” 그는 주변인들이 프리랜서를 ‘편하고 여유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일반 직업으로 인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실불부한 프리랜서 복지
  인식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는 계약 및 업무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인 해결이 어렵다. 박보배씨는 클라이언트로부터 작업 대가를 받지 못해 법적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혔다. “외주 작업물에 대해 금전적으로 손해를 봤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요. 연락이 끊긴 클라이언트를 찾지도 못했고요.”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사항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금전적 요소 등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개인 간의 계약 위반으로 간주된다. 노동관련 법률 등에 의거한 처벌이 아닌 민사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법적 절차를 밟으며 드는 시간적, 경제적 손해를 프리랜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다혜씨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부당한 일을 겪었지만 법적 문제와 관련해 해결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원고료를 200만원가량 받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의뢰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승소했지만 회사가 폐업해 돈을 받을 수 없었죠. 프리랜서는 개인 사업자라 프리랜서에게 외주비용을 지급하지 않아도 노동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는 결국 민사소송을 이어 갈 여유가 없어 더 이상의 법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심각성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서울특별시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조례’가 시행되는 등 프리랜서 업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일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 조차 해당 조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또 해당 조례는 서울시 내 프리랜서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지방에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이들은 그마저도 보호받지 못한다. A씨는 지방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관련 조례에 의한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김희경씨는 서울시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해당 조례가 실시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프리랜서는 노동의 결과물과 고된 업무 환경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작 이들을 지켜줄 법적 보호망과 사회적 시각은 ‘프리’하게 방치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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