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농촌진흥청이 진행한 ‘동물 치료비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동물 치료비가 ‘비싸다’는 응답이 87.4%를 차지했다. 이는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과다. 대중이 동물 치료비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에는 미흡한 반려동물 의료체계가 하나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반려동물 치료비용이 높을 뿐만 아니라 동물병원별 치료비 편차가 크고 책정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의료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동물 보건소 등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해외사례를 살피고 ‘동물 보건소’가 갖춰야 하는 기능을 전문가와 함께 알아봤다.

 

  국가 지원이 돋보이는 해외 제도

  현재 국내 반려동물 의료비에는 명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국가의 개입 없이 각 동물 병원 내 운영 정책에 따라 의료비가 정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해 어떤 공공의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을까. 동물복지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동물진료수가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동물표준의료수가제’는 동물 의료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질병 등에 따른 기준 수가를 마련하는 제도를 말한다. 독일의 경우 법정 수가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 범위를 지켜야 한다는 예외 조항 하에 진료비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다. 동물권 단체 PNR 박주연 대표는 앞서 언급한 법정 수가가 일종의 ‘진료비 하한선’이라고 말한다. “독일은 동물복지 및 의료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높은 편이어서 수가 하한을 법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죠.” 

  미국과 영국은 동물표준의료수가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지만 표준 진료비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놨다. 해당 국가에서 소비자는 진료비 책정기준을 포함해 다양한 설명이 포함된 동물병원 이용약관을 제공받는다. 단 동물표준의료수가제는 단순히 비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시행을 위해 진료비 책정 기준에 대한 정보 파악이 선행돼야한다는 점이 동물표준의료수가제의 핵심이다. 대중에게 의료기준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동물표준의료수가제를 시행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지난 1999년 동물병원 간 의료 담합 우려 등의 이유로 폐지됐다. 유경근 방배한강동물병원 원장은 반려동물 등을 대상으로 한 의료비에 관해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동물 진료 영역에 관해 꾸준한 논의가 필요해요. 현재 동물 의료는 공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아요. 동물 의료가 사적 영역에 속한 지금으로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치료 개념이 미용 비용과 같은 일상적 소비와 다를 바 없이 여겨지는 거예요.” 박주연 대표 역시 의료수가제 도입은 여러 선행 단계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동물에게 적용되는 진료수가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동물 병원의 진료비 적정 범위 공시를 의무화해야 하죠.”

  서울시 안전환경연구실 유기영 연구원은 해외 사례를 설명하며 민간단체의 국내 반려동물보호 활동이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지원이 증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민간단체가 반려동물 의료를 부분적으로 지원해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미국은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 반려동물 의료지원에 있어 비슷한 정도의 기여도를 갖고 있죠. 우리나라는 민간단체의 더 활동이 많아요. 공공기관에서 의료 지원을 더 해주는 게 필요해요.” 도쿄는 ‘동물애호상담센터’를 직접 운영한다. 해당 기관은 동물의 구조 및 입양부터 치료, 교육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미국의 경우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뉴욕시 ACC’와 전국단위 민간구호단체 ‘ASPCA’가 함께 동물복지를 책임진다.

  모두에게 열린 동물 보건소

  「동물보호법」 제7조와 제14조의 내용은 곧 ‘소유자는 반려동물이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당할 경우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하며 국가는 유실/유기동물을 위한 치료와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규정을 담는다. 그러나 현재는 급증한 반려동물 수에 비해 앞서 말한 조항을 충분히 지킬 만한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게 동물 보건소다.

  동물 보건소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약자를 포함한 모든 반려동물 가구가 공공의료 서비스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박주연 대표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다른 방안으로 동물 보건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국가 예산 또는 사회적 기금을 통해 운영될 수 있는 동물 보건소가 필요해요. 어떤 반려동물 가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겠죠. 특히 저소득층 가구의 반려동물이나 유기동물과 같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존재에게 부담이 없어야 해요.” 유경근 원장 역시 동물 보건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워 의료비를 내지 못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몇몇 동물병원이 할인을 해주고 있어요. 진료에 있어 별도의 지원을 제공 받지 않은 상태로 말이죠. 하지만 동물 보건소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동물복지기관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좋겠죠.”

  동물 보건소는 국내 환경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유기영 연구원은 ‘반려동물보호센터’가 동물 보건소의 기능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보호센터는 의료 기능뿐 아니라 보호 동물 입양 및 동물 교육 등의 기능 수행을 목적으로 설치된 국가적 차원의 동물복지시설이다. 유경근 원장은 동물 보건소가 의료지원과 더불어 동물 사육에 필요한 영양 및 질병 예방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면 더 큰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해당 기능을 포함하는 반려동물보호센터는 그 대안으로 적합한 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

  유경근 원장은 해당 기관에서 동물 보건소처럼 질병 예방 교육을 활성화해 올바른 사육문화를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잘못된 영양 관리나 예방 지식의 부족이 반려동물 질병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동물보호센터에서 동물 사육 방법이나 유기 방지 등에 관한 사전 교육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해요. 사전 교육을 통해 동물이 전보다 덜 아프면 좋겠네요. 예방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원한다면 동물이 아파 병원에 갈 일이 더 줄어들겠죠.” 

  유기영 연구원은 동물 보건소나 동물보호센터와 같은 동물복지시설의 원활한 설치를 위해서는 시설 주변 주민과의 갈등 해결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음 공해나 악취가 주민과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러한 갈등의 해소가 동물복지기관 설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죠.” 박주연 대표는 반려동물의 건강에 대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관심이 촉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동물 진료의 필요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부족해요. 개인적 차원에서는 반려동물의 건강을 잘 살피는 게 동물 의료를 돕는 방법이 되겠죠.” 그는 동물 치료에 대한 인식 전환도 강조했다.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동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자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비용 손실을 막을 방법이라는 걸 대중이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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