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잡잡한 얼굴에 콕콕 박힌 주근깨 그리고 촌스러운 단발머리. 주다영 동문(연극전공 14학번)이 연기한 영화 <순정> 속 ‘길자’의 모습이다. 지금껏 해온 역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는 피부를 태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옷이 뭔지 알게 됐다.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옷으로 무장한 주다영 동문을 만나봤다. 

사진제공 mb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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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주문 제작하듯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고
옷매무새를 다듬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성숙해 보일 거예요

 

지난 1998년 어느 백화점. 한 아기는 어머니가 입혀준 꼬까옷을 입고 베이비 모델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됐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기 시작했다. 이 옷, 저 옷 여러 벌을 입고 나서야 딱 맞는 옷을 골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자기만의 옷과 한 몸이 된 그는 다시 태어났다. 본인과 어울리는 액세서리까지 겸비한 그가 브라운관에 복귀할 일만 남았다.  

  -최근엔 스크린에서 보기 힘들었다.
  “지난 2년간 배우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학업에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교양 수업은 모두 들어서 지금은 혜화에서만 수업 듣고 있어요. 졸업이 약 1년 정도 남았는데, 졸업하고 나서 다시 연기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감을 잃을까 걱정되는 부분은 없는지.
  “작품 미팅을 하면 어릴 때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리지 않아요!’라고 해도 보이는 이미지가 배우에게는 중요하잖아요.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굳이 성숙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아역 배우 이미지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2016년 영화 <순정>에서 충분히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 것 같은데.
  “그런가요? 아역배우 때부터 가지고 있던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그때 깨져버렸어요. 재생 버튼을 ‘딱’ 누르면 대사가 술술 나오게끔 준비를 하는 편이었죠. 대본에 흰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웃음) <순정> 촬영 전에도 나름대로 분석을 철저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첫 촬영 때 무너졌어요. 역할 공부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어색해 보이기까지 했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겠다.
  “3일 정도 촬영을 못했어요. 첫 촬영을 실패한 데서 오는 실망감이 컸거든요. 제가 맡았던 ‘길자’라는 캐릭터를 처음 마주하게 됐고 방법을 몰랐던거죠. 단순히 지금까지 해온 방법대로 하려고 한 게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다시 분석을 했답니다.”

  -‘길자’와 친해지는 데 성공했는지.
  “대본을 보고 예상했던 ‘길자’를 버렸어요. 제 자신도 딱 놓아버렸죠! 아무 생각 없이 느껴지는 대로 연기했어요. 굳이 연기하려고 애쓰지도 않고요. 덕분에 제 인생 캐릭터가 됐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길자’라는 옷이 딱 맞아 보였다.
  “아무래도 영화가 전라남도 고흥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연기가 어려웠어요. 피부가 하얀 편이라 다른 배우들이 다섯번 전신 태닝 할 때 전 열번 정도 하고도 분장을 짙게 했죠. 주근깨도 하나하나 그리고요. 아, 살도 10kg정도 찌웠어요. 전라남도 음식이 맛있잖아요. 서울에서 가져간 옷이 맞지 않아 운동복만 입고 다녔죠.(웃음)”

  -사투리도 장착했는지.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려고 촬영 일주일 전에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고흥으로 향했어요. 억지로 따라 하려고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오게끔 대화를 많이 했죠.”

  -기억에 남는 사투리는.
  “지금까지도 익숙한 게 ‘뭐대?’예요. ‘저 가시나 뭐대?’(웃음) ‘뭐라는 거야?’라는 뜻이죠. 워낙 자주 나온 대사라 입에 붙은 것 같아요.”

  -고흥에서 촬영해 어려운 점은.
  “당시 여러 작품을 촬영해 서울과 고흥을 왕복하는 일이 잦았어요. 서울에서 촬영이 끝나면 고흥으로 퇴근을 했죠.(웃음) <순정> 촬영 전 아예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답니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차 내부에 침대를 만들어 생활했어요.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틈도 없어 매니저분들도 고생하셨죠.”

  -힘든 촬영을 이겨낸 원동력은.
  “동생들이 큰 힘이 됐어요. 성별이 다르다 보니 평소엔 통하는 게 많이 없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는데요. 당시 고흥까지 챙겨온 옷 사이 동생들이 써 준 편지를 발견했어요. 아무리 싸우고 해도 가족밖에 없다는 걸 느꼈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기도를 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가족 모두가 신앙심이 깊은지.
  “모태신앙이에요. 저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기도하는 편이에요. 소속사에도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요. 지난 2016년에는 같은 소속사 언니가 복음 광고 오디션을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해 우연히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어요.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기에 눈을 감고 기도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였어요. 영광스럽게도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걸렸죠.”

영화 <순정> 갈무리. 주다영 동문은 ‘길자’역을 맡았다. 약 10번의 태닝을 거치고 주근깨도 그리는 등 새로운 옷을 입어봤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주다영 동문은 아역 배우를 일찍 시작했지만 ‘연기’가 그에게 맞는 옷인지 고민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옷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결국 답은 연기였다. 남들보다 연기를 일찍 시작했지만 옷매무새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패션 감각이 남달라 보인다.
  “아, 조금 이따 ‘서울패션위크’에 참석하게 돼서 화려하게 입었어요. 너무 화려하게  입고 학교에 오니까 조금 민망하네요.”

  -원래 패션에도 관심 있는지.
  “고등학생 때 연기 말고도 패션 디자인이나 인테리어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련 책도 많이 읽었죠. 특히 가구 인테리어에 푹 빠져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

  -결국 연극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배우 류덕환 선배의 조언이 도움 됐어요. 선배와 함께 촬영하며 중앙대를 알게 됐고요. 중앙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혼동이 왔을 때도 결정할 수 있었어요.
  사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했어요. 연기전공이 아닌 연극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가산점을 받지 않고 다른 학생과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어릴 때부터 쌓은 경력이 도움 됐을 것 같은데.
  “매체 연기와 연극은 다르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는 붐 마이크가 있고 정해진 앵글 안에서만 연기하면 되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해요. 반면 연극은 목소리도 커야 하고 몸을 크게 표현해야 하죠. 작은 목소리를 극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연극에 익숙해지는 게 힘들었을 텐데.
  “연극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어 힘들었어요. 몇 년씩 준비한 친구들에 비해 전 3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기도 했고요.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기간이 그 3개월이었답니다.(웃음) 학원을 마치고도 계속 연습을 했어요. 제가 밤에 문을 잠그고 새벽에 다시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나네요.”

  -노력한 결과가 결국 빛을 발했다.
  “특기 시험에서 리듬체조를 선보이려 했어요. 그런데 리본이 엉켜 실수하고 말았죠. 당황한 나머지 시험장 출구도 못 찾아 헤맸답니다.(웃음) 그런데 시험을 못 봐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죠.
  합격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생활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스크린이나 텔레비전 화면이 아닌 연극무대 위에서의 연기를 보고 싶다. 향후 계획이 있는지.
  “이번학기 중 5월 말쯤 제작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번학기 연극 제작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하고 있죠.”

  -바쁜 하루를 보내는 고학년답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랍니다.(웃음) 평소에는 화장도 하지 않고 학교에 가기도 해요. 동기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제작 연습도 같이하고요.”

  -캠퍼스에서 오가며 많은 학생이 알아볼 것 같다.
  “생각보다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학우도 많아요. 지난해 교양 강의 <ACT>를 들었는데요. 한 학기가 끝나고 팀원이 제가 배우라는 걸 알고선 연락이 오더라고요. 왜 배우인 걸 티내지 않았냐고.(웃음) 누군가 저에게 ‘주배우’라고 부르는 것도 쑥스러워 <ACT> 수업에서도 대본을 담당했죠.”

  그는 세살 때부터 아역모델을 시작했다. 연기가 뭔지 모를 때도 새벽 촬영이 있으면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연기를 위해 친구와의 추억은 양보했지만 ‘하니’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한 만큼 그의 옷차림도 맵시가 살아있었다.

  -어릴 때 기억이 조금은 남아 있는지.
  “어릴 때 활동 모습을 어머니께서 수집해두셨더라고요. 집에서 가끔 펼쳐 보며 기억을 되새기기도 해요. 연기 자체가 뭔지도 몰랐던 때지만 현장에서 어른들과 맛있는 걸 먹는 게 좋았어요.”

  -낯선 현장에서 어리둥절했을 법한데.
  “광고에 몇번 출연할 기회가 있어 촬영 현장이 낯설거나 무섭지는 않았어요. 다만 우는 장면은 힘들었죠. KBS 단막극 ‘누나의 거울’ 촬영 당시 감독님께 ‘눈물이 안 나는데 어떻게 울어요?’라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결국 끝까지 눈물이 나지 않아 스태프 오빠가 발을 엄청 때리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그런 방법을 썼었죠.(웃음)”

  -아역배우로 활동하느라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아프거나 촬영이 있어도 학교를 꼭 들려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렇지만 촬영 때문에 친구들과 수련회를 못 가본 게 아쉬워요. 추억이 조금 적은 편이죠. 제가 맏이고 남동생이 두명 있어 부모님께 힘들다고 말도 못 했어요.”

  -그렇다면 혼자 끙끙 앓은 건가.
  “힘들 때면 친구들이 힘을 줬어요. 제 생일날 촬영이 늦게 끝나 오후 10시쯤 집에 돌아왔을 때였어요. 방에 들어갔는데 예쁘게 꾸며져 있더라고요. 제가 없는 사이 친구들이 몰래 와서 꾸며주고 간 거였어요. 행복한 순간이었죠.”

  -학창시절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고등학교 3년은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보니하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 촬영 때 첫 촬영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성장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또 어느새 ‘보니하니’ 촬영 당시 같이 일한 스태프 언니 나이가 됐더라고요. 그동안 흐른 시간만 봐도 많이 자랐다는 걸 느껴요.”

  -‘하니’로 발탁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이랑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방송국이 집과 가까워 마을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EBS 채널을 보고 자라 와서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준비를 못 했는데 예쁘게 봐주셔서 당시 최연소 하니가 될 수 있었답니다.”

  -생방송이 부담감을 주지는 않았나.
  “아무래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돼서 힘들었어요. 촬영 당일 몇 시간 전에 대본을 받았거든요.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부랴부랴 외웠어요. 그렇지만 웃음을 참아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웃다가 잠깐 진행이 멈췄던 적도 있죠.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애드리브를 치기도 했어요. 당시 ‘보니’였던 친구와 호흡이 잘 맞아서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답니다.”

  -‘하니’와 ‘보니’는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 아닌가.
  “‘보니하니’에 출연할 때 막냇동생이 싸인을 여러장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영문도 모른 채 해줬는데, 어느 날 돈이 생겼더라고요. 저한테는 과자 한봉지만 줬어요. 친구들에게 제 싸인을 판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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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일하다 보면 옷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구멍은 처음엔 작지만 점점 더 커진다. 주다영 동문은 구멍을 메우는 방법을 깨쳤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멍을 한 땀 한 땀 메웠다. 다른 실로 구멍을 메우되 본인의 색깔은 잃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차분한 느낌이 더 강하다.
  “활발한 성격이었는데 영화 <순정>을 찍고 나서 힘든 일을 겪었어요. 같이 출연했던 경수 오빠와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오해를 샀거든요. 무대 인사를 다닐 때 대놓고 욕을 듣기도 했어요.
  영화 개봉 후 하루 인터뷰 네개를 소화하던 중 몇몇 기자분이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시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도 좋지 않게 기사가 나갈까 봐 스트레스가 컸죠.”

  -무서웠겠다.
  “<순정>을 찍는 동안 집에 못 들어갔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태어나서 좋지 않은 말을 그렇게 많이 들은 건 처음이었거든요. 인터뷰를 연이어서 하다 결국 차에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쓰러진 사실도 기사에 실리고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하게 됐어요. 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중, 지나가는 분들이 절 보고 손가락질하더라고요. 결국 화장실에서 쉬어야 했죠.
  그렇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정신이 강해졌어요. 친구와 여행도 하고 다른 촬영을 시작하면서 회복했거든요!”

  -정신건강을 다루는 본인만의 방법은.
  “계획을 따르기보다 즉흥적으로 여행해요. 어머니 잔소리를 피해 혼자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웃음)
또 땀 흘리며 운동하기도 해요. 양재천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 달린답니다. 헬스장에도 꾸준히 가고요.”

  -액션 연기도 잘하겠다.
  “맞아요.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쌍비검을 직접 배워서 연기했던 적이 있어요. 영화 <그림자 살인>에서 와이어를 이용해 공중 곡예를 보여주기도 했죠. 좀 더 활동적인 액션에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다음 미팅이나 오디션에서 액션 능력을 강조해보면 어떨까.
  “그냥 제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려고요. 극 중 캐릭터처럼 똑같이 준비해 오시는 분들이 실제로 많아요. 저는 어차피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미팅에서만큼은 ‘사람 주다영’을 보여드리려고 하죠.
  그렇지만 오디션 최종 단계까지 갔을 때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의욕과 욕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더라고요. 제 마음가짐을 고쳐야할 수도 있겠지만, 미팅에서마저 연기한다면 어느 순간 제 자신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려 해요. 졸업할 때까지 학생 신분으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요. 지금도 배우로선 공백기지만 학생이기 때문에 좋거든요. 졸업을 하면 막막할 것 같기도 해요.(웃음)”

주다영 동문은 옷깃을 야무지게 부여잡았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그는 당당히 브라운관을 찾아갈 예정이다. 사진 제공 mbg엔터테인먼트

 

  -당신에게 중앙대란?

  “자랑이에요. 지난해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도 기분이 좋았죠. 무대에 섰을 땐 느낌도 묘했고요. 학교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후회 없이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어요. 또 좋은 분들을 만나고 많은 걸 배웠죠. 교수님의 전공수업을 들으며 제 자신을 깰 수 있었거든요. 또 학식을 먹고 수업 자료를 프린트 했던 소소한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다시 일학년이 되고 싶은 정도로요! 신입생들이 부러울 따름이에요. 다들 빨리 졸업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졸업하기 싫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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