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여섯번째 주인은 ‘청년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입니다. 청년층의 공무원 선호 현상은 안정성을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몇 년째 상승세인데요. 하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가 낳은 공시생 열풍이 도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지속되는 취업난과 경쟁 속 오늘도 펜을 쥐는 청년 공시생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공정 기회 꿈꾸는 청춘의 선택

공시생 늘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실효성 빠진 일자리 정책 속

오늘도 펜을 쥐는 공시생

“내 처지가 이래가, 할머니 칠순 잔치에 갔다가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왔다. 그래, 우리가 지금 어디 나설 차례냐. 뭘 해도 죄인 같은데.” 3년 전 청년층의 공감을 산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의 마음을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단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현실 속 공시생의 고민은 저마다 다양하다. 한 공시생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간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준비하자니 학벌과 스펙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공시생은 안정성을 좇아 꿈을 포기하는 현실에 고개를 저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이들이 걸 수 있는 기대는 오직 ‘직업 안정성’ 하나인 셈이다. 무엇이 청년층을 공무원 시험에 내몰았을까. 공시생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직접 들어봤다.

일러스트 구순모 학생

 불공정 사회에서 공정함을 바라다

 대한민국 대학생 5명 중 1명은 공시생이다. 공무원 시험만큼 취업 기회가 공정하고 취업 가능성이 확실한 게임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황서이씨(20)는 공무원 시험의 이점으로 ‘기회의 공정’을 꼽았다. “공무원이 아닌 직업은 학벌이나 스펙이 좋아야 하잖아요. 공무원 시험은 그나마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많은 대학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실을 깨닫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공무원 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이어 사기업에 취직하지 않은 이유도 내비쳤다. “은행에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학력’ 때문에 그만 뒀죠. 사내에서 알게 모르게 고졸자가 차별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대학교에 재학 중인 공시생도 이와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대학 입시부터 경쟁사회의 시작이잖아요. 학벌은 취업에 영향을 주죠.” 박훈석 학생(대구대 통계학과)은 경쟁이 과열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었다. “지방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기는 힘들어요. 그렇다고 중소기업을 가기에는 근로 환경이 좋지 않으니 최선책으로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죠. 공시 쏠림 현상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공무원 시험은 불가피한 선택이란 의미다. 지난 2017년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출신 학교 소재지 때문에 취업에서 불리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방 군소도시 소재 대학 취준생의 66.0%가 ‘그렇다’고 답했다. 광역시 소재 대학 취준생은 56.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어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소재 대학은 46.4%, 서울 소재 대학은 31.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취업에 있어 학벌과 성적, 스펙이 좋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학 소재지에 국한된 고민이 아니다. 도선혜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4)은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공무원 쏠림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소위 스펙과 학점이 좋아야 해요. 그에 비해 9급 공무원 시험은 누구든 응시할 수 있죠.” 

 ‘일단 대학에만 가면 돼’, ‘좋은 대학 졸업하면 좋은 직장 구할 수 있다’는 사회 담론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청년 공시생의 현실은 오늘도 ‘대학’민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에게 ‘고용 안정성’은 직업 선정에 있어 단연 최고 가치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층이 체감하는 학력 차별,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불안 등의 사회 문제는 ‘공시족’을 만드는데 한몫했다. 홍승오 학생(한서대 항공기계학과)은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 중 본인이 가장 어리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주위 공시생을 보면 보통 남자는 26살, 여자는 24살 이상인 사람이 많아요. 딱 대학을 졸업한 나이죠. 졸업을 해도 취업이 막막하니까 다들 공무원을 선택한 것 같아요.” 그는 공시생 비중이 늘어난 현상에 사회도 책임이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공무원 시험 쏠림 현상은 다른 게 아니에요. ‘취업난’이라는 현실이 만들어 낸 결과죠.” 

 황서이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당시 공무원의 직업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 주변에 직업관이 공무원과 맞아 시험을 준비한 사람은 못 봤어요. 저도 그렇고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이라서 골랐을 뿐이죠.” 그는 결혼과 육아, 근로복지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초년생 발 디딜 곳 없는 노동시장

 몇몇 공시생은 정부가 시행하는 일자리 정책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며 노동시장이 가진 문제점에 비판을 가했다. 박훈석 학생은 지난해보다 일자리 정책이 확대됐지만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공무원 채용 인원은 현격히 늘었어요. 하지만 정부 대응책이 임시방편이라는 사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매년 증원된 공무원 채용 비율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 그는 정작 시민이 체감하는 정부 정책의 효과는 시행의도와 엇갈린다고 덧붙였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김민세 학생(공공인재학부 4)은 공시 쏠림 현상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청년 일자리를 확대하려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무작정 공직을 늘리기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줬으면 해요.” 

 한편 사회 초년생이 취업 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홍승오 학생은 취업 과정에서 지나치게 경력직을 우대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많은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오라고 하는데 초년생은 경력도 없고 경력을 쌓을 곳도 별로 없잖아요. 초년생은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는 기업이 경력을 우대 조건으로 삼으려면 국가가 초년생이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삶의 대가

 청년 공시생이 공통으로 꼽은 직업 안정성은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야 얻을 수 있는 특권일 뿐이다. 이들 공시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겪은 고충을 털어 놓았다. 
박훈석 학생은 다른 취업 준비생과 달리 공시생의 준비 기간은 공백기에 그친다고 말했다. “특정 직업군은 취업 준비에 있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할 수 있죠.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합격하지 못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는 합격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때 유독 힘들었다고 답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실태조사는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한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서류전형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최종 학교 졸업 시점’이었다. 결국 공시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밖에 없다. ‘이번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생각이 그들을 옥죄는 것이다.

 김민세 학생은 공무원 시험에 세 차례 도전했지만 더는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다. “경쟁률도 경쟁률이지만 공무원 시험은 노력 하나로 합격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그만두게 됐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공무원을 꿈꿨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행정 체계를 배울 수 있는 학과에 지원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2년 정도 했다. 그러나 안정성 높은 공무원을 준비하는 과정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이제 그는 공무원의 꿈을 접었다.

 지방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종혁 학생(경북대 행정학부)은 정보 접근에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지방에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수험생보다 정보를 얻기가 어렵죠. 서울에는 공시생이 많아 스터디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지만 지방 공시생은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도선혜 학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 힘들다고 답했다. 외로움은 대부분의 공시생이 공통으로 겪는 증상이지만 이를 해소할 잠깐의 휴식조차 공시생에겐 사치일 뿐이다. 

 황서이씨 역시 공시 생활을 회상하며 우울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원래 활발한 편인데 매일 앉아 공부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해서 우울했죠.” 그는 공시생 생활이 그냥 원래 그렇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평범한 사람과 만나 평범한 연애를 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뤄 평범하게 사는 것. 공무원 시험 준비 과정이 힘든 이유는 종착지가 나빠서가 아니다. 다만 그 곳에 이르는 길이 공시생으로 하여금 나쁜 결과를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지나치게 긴 터널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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