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고통이 교차 반복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으며,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매번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최근 다도(茶道)에 관한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영화 <일일시호일(2018)>를 보다가 감독이 제기하는 문제가 오래전에 읽었던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 쓴 『장인-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의 주제 의식과 겹쳐지면서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집착과 편집증을 지니고 있다. 과도하지만 않다면 이것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집착과 편집증이 없다면 인간은 추구에 대한 욕망과 그 실현으로써 기술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장인』에서 리처드 세넷이 주목한 것은 숙련된 기술을 가지려는 인간 욕망의 실체와 그 가치 발생의 사회적 조건이다. 숙련된 기술은 학문에서부터 오락게임에 이르기까지 가치와 관련된 삶의 거의 모든 여러 영역에서 필요하다.

  학자도 더 정교한 학문을 위해 노력하지만, 사기꾼도 사기를 더 잘 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욕망은 인간 속성 중 하나로 여길 수 있다. 추구에 대한 욕망이 인간 속성 중 하나라면 그 추구 자체에 사회적 가치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리처드 세넷은 ‘장인’의 가치는 어떤 일을 잘하려는 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에 있으며, 그 자부심은 윤리의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윤리의식과 결부된 기술을 “생각하는 손”이라 부른다. 인공지능이나 생명복제, 현재는 감당할 수 없는 가공할 에너지 활용 기술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같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생각이 인간을 완성한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오직 차를 마시는 행위에 대한 태도와 형식, 실천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부단한 다도 연습은 불필요한 행위 제거를 위한 추구임으로 이 또한 일종의 장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도에서 질문에 앞선 행위의 숙련을 통한 간결함의 추구는 제도(세계) 자체에 행위를 일치시키려는 통합의식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수단과 방법으로 나눠 보는 방식과 근원적으로 다르다. 통합적 시각의 확보는 오직 세계와 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초월의식에서만 가능하다.

  초월적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마치 공갈빵처럼 알맹이 없는 그 자체가 알맹이로 보이게 될 것이다. <일일시호일>에서 질문 없는 행위란 목적 없는 의식에서만 가능하다. 다도에서 간결함은 추구 대상이지만, 간결함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간결함은 행위에 있어서 가감할 수 없는 행위의 적합성을 의미하는 개념일 뿐이다. 말하자면 간결함의 추구에 의해 도달한 세계가 결코 ‘소박’할 수 없다. 이름이 ‘소박’이지 그 가치가 소박하지는 않다. 삶의 진정은 “생각하는 손”과 목적 없는 행위의 접점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김백균 교수
한국화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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