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란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뜻합니다. 흔히 가이드로 대체되는 단어인데요. 이번학기 문화부 기자는 길잡이가 돼 교환학생과 남다른 한국 문화를 체험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교환학생에겐 특별한 하루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번주 길잡이와 교환학생은 수백 년 전통을 가진 한의술을 체험하기 위해 한의원을 다녀왔습니다. 과연 한의원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따끔한 침 앞에 유독 얼굴이 굳어지고 말수가 적어지던 두 학생의 본격 한의술 체험기. 지금 시작합니다! 

 

 망문문절(望聞問切)로써

 난생처음 침술을 만나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진한 약초 냄새. 한눈에 들어오는 정갈한 약장. 바늘보다 얇은 침을 맞을 때 느껴지는 따끔함. 혀끝이 텁텁해지는 진녹색의 한약까지. 우리 감각이 한의원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의원이 고리타분하단 생각은 넣어두자. 해외 대학병원에서도 뜸과 침술, 한약을 활용하며 그 효능을 인정하는 추세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한의학도 세계화 시대를 맞고 있다. 외국인 눈에 비치는 한의원 모습은 어떨까. 태어나 침술을 처음 받아본다는 외국 학생들과 중앙대 근처 3대째 이어오는 한의원을 방문했다. 

 

  극도의 긴장을 푸는 방법

  진료신청서를 적고서 순서를 기다리는 앤서니 학생(소프트웨어학부 4)과 제네사 학생(프랑스어문학전공 3) 표정이 줄곧 어둡다. 한약을 상자에 담는 간호사 모습을 본 기자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본다. “한국엔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때 보약은 한약의 일부분이에요. 균형 잡힌 식사가 몸의 기운을 나게 한다는 표현이죠.” 이에 제네사 학생이 맞장구친다. “캐나다엔 ‘하루 사과 한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속담이 있어요. 그만큼 과일 섭취가 건강에 좋다는 의미죠.” 프랑스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지 묻자 앤서니 학생이 싱긋 웃는다. “프랑스엔 ‘하루에 레드와인 한잔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어요.” 

  덜 풀린 긴장을 마저 풀기 위한 기자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프랑스에도 한의원과 비슷한 병원이 있나요?” 이에 앤서니 학생이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병원을 소개한다. “카이로프랙틱은 척추 등의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대체의학이에요.” 제네사 학생은 캐나다에도 한의원이 존재한다고 소개한다. “캐나다 한의원에서도 침술을 받을 수 있지만 가본 경험은 없어요.” 

 

  진료는 질문으로부터

  진료실에 들어서자 상도한의원 원종만 원장이 앤서니 학생에게 아픈 부위를 묻는다. “기침한다고 적었네요. 가래가 나오나요? 평소 알레르기는요?” 원종만 원장의 쉴 틈 없는 질문에 앤서니 학생은 헛기침 뒤 대답한다. “기침한지 3일 정도 됐어요.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있고요.” 

  원종만 원장이 혀를 쭉 내밀며 앤서니 학생에게 같은 동작을 유도한다. 앤서니 학생의 붉은 혀를 본 원종만 원장이 진료를 이어간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몸의 위쪽 방향으로 열이 잘 올라가는 특질이라 할 수 있어요. 몸 안에 심장과 위장에 열이 많은 편이네요. 이런 경우 한의학에선 ‘심장이 뜨겁다’고 표현하죠.” 경청하는 앤서니 학생에게 원종만 원장은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한다. “심장 기능이 과한 만큼 밤에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 해요. 무엇보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하고요. 알겠죠?” 앤서니 학생은 괜히 뜨끔했는지 충분히 잠을 자지 않는 편이라고 실토한다. “원장님 진단이 정확하네요. 4시간 자는 날도 있거든요.”

 

  한의학 기본은 망문문절

  제네사 학생은 왼쪽 목의 통증을 호소한다. 2년 전쯤 머리를 다친 뒤로 오랜 시간 앉아있으면 왼쪽 목의 근육이 긴장된다는 증상을 덧붙인다. 원종만 원장은 제네사 학생의 목과 어깨, 등 근육을 찬찬히 손으로 짚어본 뒤 자세를 바르게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앉아 있을 때 턱을 괴지 않는 게 좋겠네요. 또 항상 허리를 펴고 자기 전 20초 정도 목과 어깨도 스트레칭을 해주세요.” 이를 듣자마자 제네사 학생이 바로 실행에 옮기며 말한다. “통증이 오랜 시간 구부정한 자세에서 비롯된 거였군요. 앉은 자세로 공부할 때 신경 써야겠네요!” 

이밖에도 원종만 원장의 질문은 멈출 줄 모른다. 이처럼 많은 질문을 통해 몸 상태를 확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종만 원장은 이에 대해 한의학의 기본 진찰 방법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을 설명한다. “망문문절은 낯빛과 윤택 등 생김새를 보고, 숨소리나 목소리를 듣고, 여러 질문을 해 증상을 파악하고, 직접 맥을 짚어 느껴보는 진료 방법이에요. 네가지 진료를 본다는 뜻에서 ‘사진(四診)’이라고도 하죠.” 더불어 원종만 원장은 한의학은 사람의 체질을 고려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몸 상태에 맞춰 진료하는 건 양방과 한방이 같아요. 그렇지만 소화력 등 사람 체질까지 고려해 한약을 짓는 부분은 한방만이 지니는 특징이 아닐까요?” 

 

  이따금씩 따끔따끔 

  이제 본격적인 침술을 체험할 시간이다. 원종만 원장이 앤서니 학생 손과 발, 턱과 팔, 종아리에 총 11개의 침을 놓는다. 혈액 순환을 돕고 올바른 혈 자리를 찾기 위함이다. 처음 맞는 침이 아프진 않았을까. 침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앤서니 학생이 소감을 전한다. “아프진 않아요. 다만 손을 움직일 때 근육에 침이 꽂혀있는 게 실감나네요. 조금 따끔하기도 하고요.” 

  제네사 학생보다 진료가 먼저 끝난 앤서니 학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선다. 그에게 보다 많은 한방 치료를 알려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기자는 원장님께 앤서니 학생을 위한 뜸 치료를 부탁한다. 잘 알겠다는 눈빛으로 원종만 원장이 간호사를 부른다. “앤서니 학생 다시 들어오라 해요.” 어느새 앤서니 학생 복부 위에는 두 개의 뜸이 놓여있다. 온열 치료로 이뤄지는 뜸은 몸 안의 백혈구를 활발하게 만들어 면역기능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뜸의 재료인 쑥이 타는 냄새가 진료실 가득 퍼진다. 앤서니 학생은 뜸 냄새가 좋다고 말한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향을 피우곤 했어요. 뜸 냄새가 향내와 비슷해 좋네요.” 침을 맞은 후 부항까지 뜬 제네사 학생은 한껏 상기된 얼굴이다. “왼쪽 목과 어깨 부분에 침을 맞을 때 살짝 따끔하고 고통스러웠어요. 반면 부항을 뜰 때 컵 안에서 압력 변화가 느껴져 흥미롭더라고요. 온열 기구를 함께 쬔 만큼 따뜻하기도 했고요!” 

  마침내 한의원을 나서는 순간, 제네사 학생의 낯빛이 환해진다. “살아남았어요! (I survived) 제가 해냈다고요! (I did it!)” 체험 다음 날 앤서니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보다 기침도 줄고 기운도 제법 차린 것 같다면서.

 

 -문화수첩: 온전함을 추구하는 통합의료

의학과 한의학을 융합해 치료한다는 뜻의 ‘통합의료’를 들어본 적 있는가. 통합의료는 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등 해외 유수 대학병원에서도 활용되는 등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높아지는 관심과 수요만큼 통합의료는 의료관광 등 국제적인 의료산업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통합의료는 국내에서 갖는 의미도 크다. 기존의 의학과 한의학이 갖는 갈등을 해소하고 이원화된 의료 체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통합의료 기관으로는 대구에 위치한 전인병원이 있다. 의사와 한의사가 1:1 비율로 진료하는 이곳에선 환자의 질병 수준에 맞는 적절한 의학·한의학 치료가 이뤄진다. 

  예를 들어 감기몸살도 통합의료를 통해 치료될 수 있다. 복용한 약으로 생긴 환자의 후유증을 위해 한방치료를 받는 형식이다. 한방치료 이후에도 결핵이나 폐렴 등의 다른 질환이 의심된다면 의학이 기초가 되는 검사를 통해 치료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 재활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활 운동과 함께 근골격계 기능회복을 돕는 한의학 치료가 보태져 온전한 환자 중심의 진료를 추구할 수 있다.

  아울러 통합의료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 등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현대사회 요구에도 부합한다. 실제 전인병원 통합힐링센터는 항암치료로 인해 지친 환자를 위한 스파와 명상실, 산소캡슐과 편백 반신욕기 등 심신치유를 돕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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