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란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뜻합니다. 흔히 가이드로 대체되는 단어인데요. 이번학기 문화부 기자는 길잡이가 돼 교환학생과 남다른 한국 문화를 체험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교환학생에겐 특별한 하루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번주 길잡이와 교환학생은 한국전쟁과 참전용사를 기리는 전쟁기념관에 다녀 왔는데요. 전쟁기념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여느 관광지보다도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Let’s go!

 한민족 아픔을

재현한 곳에서

전쟁을 기억하다

 

내년은 한국전쟁 70주년이다. 휴전 이후 반백년을 훌쩍 넘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은 약 5만5000명이 넘고 현재까지도 종전선언은 이뤄지지 못했다. 전쟁의 여파는 여전히 우리 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약 60만명에 달하는 국군 장병은 오늘도 경계 근무에 나서고 학교는 전쟁 직후 사회상을 다룬 전후 소설을 가르친다. 이처럼 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상흔은 크다. 외국인은 이 비극적인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전쟁 참전국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온 교환학생과 함께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으로 향했다. 

  형제로 태어나 전우가 되다
  야외 전시장에는 반구형 돔 위에서 서로 포옹하는 군인 조형물이 놓여있다. 전쟁터에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맞서 싸우던 형제가 극적으로 만난 모습을 형상화한 기념 조형물 ‘형제의 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기자의 설명에 캐나다에서 온 제네사 학생(프랑스어문학전공 3)의 동공이 커진다. “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티저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허시(Hearsey) 형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으세요?” 기자의 기습 질문에 제네사 학생은 애꿎은 하늘만 쳐다본다. “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예요. 형은 먼저 참전한 동생이 걱정돼 동생 몰래 참전했고 결국 둘은 전쟁터에서 상봉했죠.” 기자가 설명을 덧붙이자 제네사 학생 목소리가 한껏 격앙된다. “놀라운 이야기네요! 저보다 많이 알고 계신데요?”

  평화의 광장에 수많은 깃발이 펄럭인다. 한국전쟁 UN 참전국 기념비다. 월계관으로 꾸며진 총 21개 참전국 기념비에는 참전 내용, 참전용사에게 바치는 추모 글이 한국어와 해당국 언어로 적혀 있다. 프랑스 국기 앞에 선 앤서니 학생(소프트웨어학부 4)이 추모 글을 불어로 멋스럽게 읽는다. “유엔 프랑스대대 소속으로 싸웠던 프랑스와 한국의 병사들…. 자유를 위한 그대들의 싸움이 미래 세대에 큰 귀감이 되기를….” 읽는 동안 떠오른 생각을 묻자 앤서니 학생이 쑥스러운 듯 대답한다. “프랑스군이 한국을 도왔다고만 들었어요. 파병한 군인 수와 해당 임무에 대해선 잘 몰랐죠. 고국을 떠나 한국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명예로운 그 이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엔군 전사자 이름을 새겨 추모하는 공간도 있다. 좌우 벽을 빼곡히 전사자 이름으로 채운 공간, ‘전사자명비’다. 벽을 찬찬히 훑는 앤서니 학생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파리에 위치한 ‘쇼아 기념관(Shoah Memorial)’이 떠오르네요. 그곳에도 세계 2차 대전 때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거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 죽은 유대인 이름이 적혀있거든요.” 반면 제네사 학생은 복도를 걷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전한다. “사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서 한국전쟁을 배운 기억이 없어요. 캐나다가 한국전쟁에 참가한 지도 몰랐죠. 이렇게 수많은 이름을 마주하니 이들의 희생이 보다 선명히 다가오네요.” 이를 경청하던 앤서니 학생이 한마디 거든다. “프랑스에선 ‘냉전(Cold war)’에 대해 배우지만 한국전쟁은 깊이 배우지 않아요. 전쟁이 있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배울 뿐이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슬픔
  전쟁기념관 2층 6·25전쟁실은 북한군의 남침 배경부터 전쟁의 경과와 정전협정까지 한국전쟁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앤서니 학생이 걸음을 멈춘 곳 앞에는 당시 학도병이었던 참전용사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어린 학도병들이 전쟁에서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요. 당시 그들 나이가 지금 제 나이보다 어렸다는 점도 역시 슬프고요.” 이어 가이드분께서 이산가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중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제 아버지 고향도 북녘땅에 위치해 있어요.” 우리 민족이 가진 분단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제네사 학생은 비극적이라고 전한다. “만약 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볼 수 없게 된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이요.” 프랑스에도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눈 전쟁이 있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앤서니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지난 1793년부터 3년간 프랑스 혁명 직후 방데지방에서 일어난 ‘방데의 반란’이 있어요. 당시 혁명 정부를 향한 왕당파농민의 반동으로 일어난 반혁명운동이에요.”

 

  일상에 자리하는 전쟁
  마지막으로 전쟁기념관 야외에 마련된 비상대비체험관에 들려본다. 방독면을 직접 착용하거나 대피소 위치를 파악하는 등 비상시 국민행동 요령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두 학생에게 방독면은 난생처음 마주하는 기구다. 한윤진 안전체험 강사가 방독면을 꺼낸 뒤 착용 방법을 친절히 알려준다. “방독면은 화학 가스나 유해가스가 방출됐을 때 사용해요. 자, 눌러 쓴 다음 손바닥으로 흡입구를 막고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앤서니 학생은 프랑스에 이와 유사한 체험 프로그램이 없다고 말문을 뗀다.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다만 방독면을 쓸 때는 숨 쉬기가 어려웠어요.” 제네사 학생도 방독면을 벗으며 말한다. “저도 처음엔 깊게 숨쉬기가 힘들어 살짝 무서웠어요. 매일 방독면을 쓸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평상시엔 지나치곤 했던 ‘비상시 대피소 찾아보기’ 문구가 문득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체험관을 나서는 길 다시 평화의 광장에 들린다. 광장 중앙에 그려진 동그란 문양이 눈에 띈다. 해당 문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이는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 제네사 학생이 가장 인상 깊은 문구로 뽑은 문장이기도 하다.

 

  -문화수첩

  이곳에 나의 유해를 뿌려주시오

  “스무 살 때 나와 전우들이 피 흘리며 치열하게 전투했던 이곳에 나의 유해를 뿌려주시오.” 故장 르우(Jean Le Honx) 참전용사가 지난 2007년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했을 당시 화살머리 고지를 본 뒤 전한 말이다. 당시 프랑스 참전대대 병장으로 복무한 장 르우 참전용사는 지난 1951년 12월에 19살 나이로 대한민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는 이듬해 T-Bone 전투에서 얻은 두 차례 부상에도 불구하고 화살머리 전투에 참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 1956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84세 나이로 그가 숨을 거둔 뒤 국가보훈처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유해봉환 전반을 논의했다. 현재 그는 비무장지대(DMZ) 내 프랑스 참전 기념비에 안장돼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DMZ에서 영면하는 프랑스대대 군인은 장 르우 참전용사가 처음이다. 

 

  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

  캐나다의 6·25전쟁 참전 소식은 한 시골 마을에 살던 허시(Hearsey) 가족에게도 전해진다. 이내 3형제 중 둘째인 아치 허시(Archie Hearsey)가 참전을 결심한다. 당시 나이 21살이었다. 동생을 걱정한 형 조세프 허시(Joseph Hearsey)도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전쟁에 참전한다. 동생에겐 알리지 않은 채 말이다. 격렬한 야간 교전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10월 13일. 동생은 같은 성을 가진 병사가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져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형은 결국 동생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동생은 죄책감과 전쟁 후유증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다. “부산UN기념공원에 안장된 친형의 곁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대로 지난 2012년 4월 형과 동생은 부산UN기념공원에 합장 안장됐다. 형제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추모 글이 적혀있다. “형제로 태어나 전우가 되어 영원히 함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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