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에 숨은 가해자
혐오범죄 노출될까 두려운 이들
파괴된 공공선 소수자는 운다

소수성(Minority)이란 숫자가 아닌 척도의 문제다. 사회적 약자, 즉 소수자는 단순히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 영향을 행사하는 힘이 약한 이들을 일컫는다. 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2차 가해’ 역시 함께 주목받고 있다. ‘2차 가해’라는 용어 자체가 가진 정당성부터 2차 가해로 불리는 혐오 표현의 규제 범위까지, 실로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의 경우 여타 피해자 집단과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사회적 약자에게 일어나는 2차 가해 문제와 위험성을 전문가와 함께 알아봤다. 

 사건 밖에서 가해자는 말한다

 2차 가해는 특정 범죄행위로 1차 피해를 본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과 관련된 2차적 피해를 주는 행위다. 주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함으로써 ‘피해를 볼 만하다’고 단정하는 행태로 나타난다. 윤초롱 변호사는 2차 가해 형태를 설명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가 피해 대상이 되는 특성을 강조했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 역시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퍼트리는 행위 등 다른 2차 가해와 동일한 유형을 포함해요. 그러나 사건을 계기로 소수자인 피해자를 향해 혐오 내지 편견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타 사례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죠.” 이러한 2차 가해는 일반적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며 종종 언론 매체를 통해 가해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한 방송 프로그램은 장애인 여성 성폭력 사건을 다루며 사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마을 주민 인터뷰를 여과 없이 보도해 논란을 샀다. 또한 진행자의 장애인 비하 발언과 성폭력을 희화화하는 발언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들을 향한 오만과 편견

 사회적 약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어떻게 발생할까. 좌세준 변호사는 2차 가해 행위의 발생 원인으로 편견을 꼽았다. “편견은 편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해요. 특히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이들이 배제돼도 괜찮은 사람으로 간주하게 하죠.” 윤초롱 변호사는 편견과 더불어 가해자의 심리상태 역시 2차 가해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당사자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공격성을 사회적 약자에게 표출하기도 해요.” 그는 반대로 사회적 약자가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도 특정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회피하려 문제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서 찾는 거예요.” 한편 박권일 작가는 상당수의 2차 가해가 위험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자신도 모르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아요. 피해 혹은 가해의 경중이나 구체적인 상황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본인이 가진 ‘인상’을 바탕으로 경솔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는 인권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인터넷 공간 내 2차 가해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한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윤초롱 변호사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을 2차 가해가 심화되는 원인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익명성은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더 쉽게 표출하게 하죠. 누군가 먼저 소수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르면 많은 사람이 이에 편승해 같은 의견을 공유하고 그것이 하나의 여론처럼 성장해요.” 그는 소수자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의견을 교환할 때 발생할 문제도 지적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악의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2차 가해를 저지를 수 있어요. 또한 피해자 역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2차 가해 가능성이 더 높아지죠.”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실시한 ‘2018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성인은 전년 대비 13.3p가량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가해 경험은 34.9%, 피해 경험은 49.2%로 집계됐으며 전체 연령대 중 사이버폭력 경험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로 나타났다. 청소년 사이버폭력 경험률 역시 29.5%로 전년 대비 4.7%p가량 증가했다. 사이버폭력 유형으로 분류되는 ‘사이버 명예훼손’, ‘신상정보 유출’, ‘사이버 언어폭력’등은 2차 가해 행위가 이뤄지는 경로다. 

 ‘우리’가 없는 배타적 세상

 소수자를 대상으로 발생한 2차 가해는 공존의 조건인 공공선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 박권일 작가는 권력 관계에 의한 폭력이 공존의 조건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보통 권력 관계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쪽은 사회적 약자에요. 이들을 구조적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게 공공선이죠.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공공선을 훼손해요.” 윤초롱 변호사는 2차 가해가 사회적 약자에 끼치는 정신적 해악을 설명했다. “소수자에 대한 2차 가해는 해당 피해자에게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줘요. 이는 사회적 약자인 본인이 차별과 배제를 당하지 않고 다른 사회 구성원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파괴하죠.” 덧붙여 그는 2차 가해로 인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확대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회적 문제 인식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2차 가해에 가담하지 않았던 다른 구성원 역시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노출될 소지가 다분해요. 결국 소수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돼 공존은 더욱 어려워지죠.”

 좌세준 변호사는 2차 가해에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경우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사회에서 분명 소수자임에도 소수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나 2차 가해는 그 사회 구성원에게 불법이나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요.” 이어 편견에서 비롯한 2차 가해의 위험성을 시사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가 되며 ‘제노사이드 8단계론’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어요. 한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인간성을 의심하게 하는 잔혹 범죄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거죠.” 그는 이처럼 편견이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 밖으로 내모는 배타적 성격을 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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