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자들에게 늘 보여주고 싶던 신문 중 하나가 ‘중대신문’이다. 이번 호 역시 한 명의 편집장으로서 감탄했다. 불법 증축을 다룬 ‘동작 톺아보기’는 기자가 고생한 흔적이 문장마다 묻어났다. ‘음악으로 평화를 전한 사람, 존 레논’ 기사 역시, 기사 문법의 틀과 적절한 유머가 조화를 이루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했으리라 생각한다.

  굳이 흠을 찾자면 ‘영문과 A교수 규탄 자보 훼손돼’ 기사가 아쉬웠다. 민감한 사건일수록 더 드라이하고 악랄하게 사안을 분석했어야 했다. 물론 기사가 다룬 사건의 초점은 대자보 훼손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라면 으레 미투라는 더 큰 주제와 연결 지으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기사에서 다룬 것은 비대위의 입장뿐이었다. 거대한 이야기를 축소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한쪽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 형태는 ‘미투 보도’에서 끊임없이 지적돼 온 문제점이었다. 정의로운 기사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의감만으로는 뛰어난 기사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사회의 기저에는 저마다의 뱀이 똬리를 트고 있다. 인간의 원죄는 뱀에서 비롯됐다. 『성경』 속 뱀은 탐욕과 악에 대한 인간의 경계심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문열 작가는 『사람의 아들』에서 ‘도대체 그 선의 기준이 뭐냐’며 냉소를 보낸다. 그리고 뱀에게서 지혜를 본다. 『사람의 아들』 속 뱀은 지혜 없는 선은 악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당대의 어떤 비극은 언론이 선악을 판단하고 악을 배척하는, 『성경』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시작된다. 정의로운 언설이 부족해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언론의 본령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사안을 해체하고 분석할 지혜를 주는 데 있다. 중대신문의 뱀은 무엇인가. 정의로워질 것인가 독자에게 지혜를 줄 것인가. 답은 기사로 해주시리라 믿는다.

이상환 
성대신문 편집장
글로벌경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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