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장서 내몰린 사람들
스마트폰 '보유'는 했지만…

시민-정부 협업한 해외 사례 
시대 변화 반영한 지원 필요

정보화 시대와 함께 찾아온 소비시장의 변화는 노년층 소비자를 몰아내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약 63%로 특정됐다. 그중 70대 이상의 경우 약 42% 수준으로 20대 디지털정보화 수준인 약 126%에 비해 특히 심각한 격차를 보였다. 노년층의 미약한 정보 활용 능력은 이들의 소비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진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걸까. 해외에서는 디지털 소비 시장 속 소외되는 노년층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지 전문가와 짚어봤다.

  기술의 차이는 격차를 낳고
  과거의 기술이 주로 생산에 한정됐다면 오늘날 기술은 소비의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정재민 교수(카이스트 경영공학부)는 소비기술은 곧 정보 활용 능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소비기술의 노년층과 청년층 간 차이가 정보격차를 심화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될수록 노년층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소비 능력은 떨어져요. 스마트폰이 있어도 전화나 문자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잘 활용하지 못하죠.”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실시한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년층의 정보 활용 능력은 단순 정보 접근율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구체적인 지표를 살펴보면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은 약 14%로 모바일 기기 보유율인 35.1%에 비해 낮게 측정됐다. 강진구 교수(중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육학과)는 정부 기관과 시민단체가 평생교육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나 기술 수준은 급변하는데 노년층에 적합한 학습 환경은 미흡해요. 특히 지자체에 따라 평생교육 관련 재정지원에도 현격한 규모 차이가 있죠.”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이 인력, 시설, 프로그램 등에서 전반적으로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정재민 교수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노인 정보화 교육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문서 작성과 컴퓨터 조작법을 배우는 현 노인 교육 시스템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요.”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노년층을 위해 디지털 기기 접근 능력보다 활용 능력을 중요시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핀란드와 독일, 스웨덴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국가에서 주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노인을 위한 시민 미디어센터인 시립 ‘뮌스터 벤노하우스(Bennohaus in Munster)’에서 50대 이상 연령층을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행 중이다. 특히 노년층의 뉴미디어 접근을 활성화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뉴미디어 시민TV 공동 제작, 노년층과 청년층이 함께 하는 영상 프로젝트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러한 독일의 디지털 미디어 교육은 노년층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과 디지털 역량을 개발해 미디어를 활용한 사회적 참여를 활성화한다. 

  디지털 복지 선도한 해외
  이외에도 노인 소외 문제를 해결하고 노년층의 사회적 참여 기회를 확장하기 위한 해외 사례는 다양하다. 미국은 노년층이 겪는 디지털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재사회화 정책을 마련했다. 특히 노인과 같은 정보 소외계층의 정보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강진구 교수는 미국 정부가 정보접근권 확대를 위한 여러 사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정보 소외계층에 교육 홍보 활동과 교육 워크숍을 수행해요.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TV 전환 홍보교육 홈페이지를 운영하기도 하죠. 주로 워크숍을 통해 소외계층인 노인의 정보 접근권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어요.” 

  또한 미국에서는 정비된 제도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직접 진행하는 정보화 교육도 존재한다고 강진구 교수는 설명했다. “미국의 노인 정보화 교육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기보다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강해요.” 미국 전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익집단 미국 은퇴자 연합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에서는 세대공동체 프로그램의 하나로 세대 기술연계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강진구 교수는 이와 같은 정보화 교육이 세대 간 갈등 해소에도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노년층은 학생에게 컴퓨터 활용 기술을 배우고 학생은 노년층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죠. 이는 청년층과 노년층이 서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특히 노년층의 경우 컴퓨터 문해력과 사고력이 향상되는 이중효과를 낳아요.” 정재민 교수 역시 ‘역 멘토링 교육방식’이 가진 이점을 설명하며 우리나라에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기술 공유의 장이 확대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들을 위한 똑똑한 디자인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된 노인을 돕는 방법은 교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공공 서비스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영국 기업 ‘클리닉(Clinic)’과 ‘BWA 디자인(Bwa Design)’은 노인을 배려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클리닉은 세대 간 격차 해결에 주목한 네트워크 ‘세이지 & 어니언스(Sage & Onions)’를 디자인했다. 해당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연령대의 이용자가 조언과 경험을 나누며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해지도록 돕는다. BWA 디자인은 노년층이 온라인 서비스를 능숙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문제에 주목해 ‘풋노트(Footnote)’를 개발했다. 이는 문제 해결을 돕는 지식 공유 프로그램으로 여러 사용자와 공공기관, 그리고 제조사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노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발 빠르게 노인의 정보 소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안정적인 정부 정책과 시민사회의 자발성이 톱니처럼 맞물린 덕이다. 빠르고 더딘 차이가 존재할지언정 노인을 위한 나라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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