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문학도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관하는 ‘제28회 의혈창작문학상’이 개최됐습니다. 전국에 있는 전문대 이상 학부 재학생(휴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지난달 16일까지 시와 소설, 두 부문으로 나눠 작품을 공모했습니다.

  깊은 전통과 명망을 자랑하는 의혈창작문학상은 중앙대 ‘의혈(義血)’ 정신을 되새기고 문예창작전공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1991년부터 오늘날까지 28년에 걸쳐 꾸준히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해내는 창구 역할을 해왔죠. ‘한국판 스릴러 소설’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소설가 제성욱, 청소년 소설에서 추리소설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가 전아리도 의혈창작문학상 출신입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에서는 총 2편의 시와 1편의 소설이 당선작으로 선정됐습니다. 특히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응모작은 유난히 풍성했다고 합니다. 시 부문에는 총 21명, 소설 부문에는 총 20명의 새내기 문학도가 참여했죠. 심사에 참가한 교수진은 올해 응모작 수도 많고 작품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시 부문에서는 이수명 겸임교수(문예창작전공)와 이승하 교수(문예창작전공)가 심사에 참여했는데요. 3명의 참가자가 출품한 총 20작품이 예선을 통과했고 그중 「옻닭」과 「애인」이 수상의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이수명 겸임교수는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에는 모두 오랜 습작으로 단련한 결과가 드러났다”며 “특히 착상과 표현력이 훌륭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설 부문 심사는 방현석 교수(문예창작전공)와 오정희 교수(문예창작전공)가 함께했습니다. 본선에는 「하자 없는 집」과 「병규」가 진출했고 그 결과 「병규」가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습니다. 방현석 교수는 해당 두 작품에 대해 “오늘날 젊은이들이 직면한 문제와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더불어 “문학청년들의 패기와 열정을 보여줬다”며 선배 문학도로서 뿌듯함을 드러냈죠.

  “진정한 작가에게 매 작품은 성취감을 넘어 무언가를 다시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했습니다. 제28회 의혈창작문학상에 참가한 모든 새내기 문학도에게 의혈창작문학상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바라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청년 문학도와 그들의 작품을 만나봅시다.

 

 

<작품전문>

병규

“우리 유튜버나 하자.”

병규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와 병규는 카운터에 앉아 고깔 모양 과자를 집어 먹고 있다. 여섯 시가 넘었지만 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병규가 손가락에 과자를 하나씩 끼우기 시작한다. 다섯 손가락에 빠짐없이 끼운 다음, 자랑하듯 손바닥을 쫙 펼쳐 보인다. 병규의 손은 마치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울버린의 손 같다.

“장난치지 말고. 나 진지해.”

내가 정색하자 병규는 퉁명스런 말투로 묻는다.

“요새 다들 유튜버 되겠다고 난리던데, 유튜버가 정확히 뭐냐?”

요새 병규는 자주 투덜거린다. 지난 십구 개월 사이에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면서. 이젠 사람들 말도 못 알아듣겠다면서. 나는 연보라색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에 접속한다. 검색창에 ‘먹방’이라고 입력하자 동영상이 수백 개 뜬다. 그중 맨 위에 링크된 삼 분 삼십칠 초짜리 동영상을 누른다. 손톱이 길어서 터치가 잘 먹히지 않는다. 두어 번 반복해서 누르자 동영상이 재생된다. 동영상의 제목은 ‘도전! 콜라에 밥 말아 먹기’. 동영상엔 타이트한 옷을 입은 긴 생머리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의 얼굴은 앳되다. 기껏해야 스물한두 살 정도로 보인다. 여자는 정말 콜라에 밥을 말아 먹고 있다. 콜라가 가득 담긴 대접에 둥둥 떠다니는 밥알을 수저로 떠서 먹고 먹고 또 먹고. 끝도 없이 입안으로 밀어 넣더니 기어이 한 대접을 다 비운다. 여자는 빈 대접을 흔들면서 생각보다 맛있다는 둥, 톡 쏘는 식감이 매력적이라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 댄다. 내 속이 다 메스껍다. 가게 홀에 밴 통닭 냄새도 역하게 느껴진다. 방금 먹은 과자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지만 꾹 참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여자를 가리킨다.

“이 여자가 유튜버야. 동영상 찍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사람을 유튜버라고 불러. 동영상 조회수가 올라가면 유튜버한테 광고 섭외가 들어온대. 광고 업체 사람들이 돈을 주면서, 동영상 중간중간 자기네 광고 좀 내보내 달라고 막 애원하고 그런대.”

병규가 손가락에 애써 끼운 과자를 하나씩 빼먹으면서 되묻는다.

“유튜버가 돈을 많이 받는다고?”

“조회수만 높으면.”

‘도전! 콜라에 밥 말아 먹기’의 조회수는 무려 이만오천 회에 육박한다. 동영상 속 여자는 ‘도전! 콜라에 밥 말아 먹기’ 외에도 ‘도전! 케첩에 밥 비벼 먹기’, ‘도전! 식빵에 와사비 발라 먹기’ 같은 엽기 먹방 동영상을 여럿 올려놨는데, 하나같이 높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이 정도면 월 삼사백만 원은 족히 번다고 말하자 내내 시큰둥하던 병규가 갑자기 “와, 미친!”하고 기함한다. 병규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채가더니 동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시청한다. 병규의 쌍꺼풀진 눈이 번뜩인다.

“아니, 근데 이런 걸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이게 재밌냐?”

“자극적이라서 보는 거지. 자극적인 게임, 자극적인 야동, 그런 데 열광하는 것처럼.”

“난 왜 한 번도 못 봤지? 언제부터 유행했는데?”

“너 군대에 있는 동안.”

“아아, 씨발.”

병규가 손바닥으로 이마와 정수리를 연거푸 쓸어내리면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내뱉은 숨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병규는 지난달에 제대했다. 군대에서 바짝 깎은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삐쭉빼쭉 불규칙하게 자라서 영 볼품없다. 덕분에 병규는 남색 캡모자를 쓰고 다닌다. 아저씨나 내 앞에서만 민머리를 내보인다. 나는 병규가 카운터 구석에 벗어놓은 캡모자를 본다. 캡 정중앙에 알파벳 ‘T’가 수놓아져 있다.

“어쨌든 내가 너 군대 간 동안 생각해 봤거든? 우리가 먹고살 방법은 유튜버가 되는 것뿐이야.”

유튜버가 되는 덴 학벌이나 스펙, 자본금도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동영상 찍을 핸드폰만 있으면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 있다고. “요샌 초등학생 유튜버도 있다더라.” 병규는 아무런 대꾸 없이 꺼진 핸드폰 화면만 응시한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병규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면서 캡모자에 수놓아진 ‘T’ 자수를 만지작거린다. 그때 종소리가 울린다. 손님이 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병규네 아저씨는 가게 출입문에 작은 종을 달아 놓았다. 나는 통유리로 된 출입문 쪽을 쳐다본다. 문 너머로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이 보인다.

오늘의 첫 손님은 흰색 롱패딩을 껴입은 중년 남녀다. 미쉐린타이어 광고에 나오는 마스코트 캐릭터를 닮았다. 그들은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와 병규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병규는 서둘러 캡모자를 눌러쓰고 벌떡 일어난다. 귀여운 병아리 캐릭터가 그려진 메뉴판을 한 손에 들고 중년 남녀에게 다가간다. 손님을 테이블로 안내하는 일. 손님에게 메뉴판을 건네고 메뉴를 추천하고 주문을 받는 일. 병규는 통닭집 아들로서 그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그래서 아주 능숙하지. 손님을 대할 때 병규는 나랑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 장난기 하나 없이 공손하고 친절하게 군다. 프로의식이랄까, 그런 게 엿보인다. 통닭 서빙에 프로의식까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나무통닭이 저희 가게 대표 메뉴구요. 매콤한 거 잘 드시는 분들은 양념통닭도 많이들 찾으세요. 콘치즈통닭도 있구요.”

병규의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진다. 홀은 사 인용 테이블 한 개와 이 인용 테이블 세 개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아서, 별로 크지 않은 소리도 쉽게 울린다. 듣고 있자니 웃기다. 저렇게 구구절절 소개할 필요가 있나. 메뉴라고 해 봤자 고작 세 가지뿐인데. 일반참나무통닭과 양념통닭과 콘치즈통닭. 메뉴판에 적힌 메뉴 이름만 봐도 맛이 대충 예상되는 메뉴들이잖아? 중년 남녀는 콘치즈통닭과 맥주 두 캔을 시킨다. 병규가 카운터 옆에 설치된 주류용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고 고깔 모양 과자, 치킨무 같은 기본 안줏거리를 세팅하는 동안 나는 아저씨에게 주문을 전달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병규가 지나가는 말로 너까지 도울 필요 없으니 그냥 앉아있으라고 말린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병규가 군대에 있었던 지난 십구 개월간 나는 틈날 때마다 가게에 들러 일을 거들었다. 이제는 돕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카운터 뒤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가면 부엌이 나온다.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기름 냄새와 열기가 훅 끼친다. 다섯 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비좁은 부엌에 커다란 불가마 오븐이 놓여 있다. 오븐이 두 평은 족히 차지하는 것 같다. 아저씨는 목장갑을 낀 채로 오븐 앞에 쪼그려 앉아 생닭을 초벌하고 있다. 아저씨는 늘 저 자리에서 저 자세로 닭만 굽는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아저씨 옆에 서서 오븐 안을 들여다본다. 타닥타닥 구워지고 있는 닭과 그 아래 깔린 장작을 가만히 응시한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장작 같지만, 저래 봬도 아저씨가 강원도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참나무 장작이다. 아저씨는 매주 월요일 새벽 병규와 함께 용달트럭을 몰고 강원도로 내려갔다가 화물칸에 참나무 장작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 병규가 입대하고선 아저씨 혼자 왕복 여섯 시간 거리를 오갔는데, 졸음운전으로 사고라도 날까 봐 나는 늘 신경이 쓰였다. 가까운 데서 파는 장작을 쓰라고 설득도 해봤지만, 아저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질 좋은 참나무를 써야 불길이 잘 나고 불길이 잘 나야 참나무 향이 통닭에 잘 밴다는 게 아저씨의 신념이었다.

“아저씨, 콘치즈 하나 주문요.”

아저씨는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알았다고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기다란 쇠 집게로 닭을 뒤적인다. 콘치즈통닭은 육칠 년 전 통닭 업계에 불어닥쳤던 ‘퓨전’ 열풍에 따라 급히 만든 메뉴다. 당시 아저씨는 새 메뉴 출시를 내켜 하지 않았다.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진다고 했다. 아저씨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살던 대로 사는 게 최고라고 믿는 사람. 그러나 손님들이 자꾸 콘치즈 메뉴를 찾으니까, 다른 통닭집엔 다 콘치즈 메뉴가 있는데 왜 여기만 없느냐고 따지니까, 콘치즈통닭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퓨전 열풍이 사그라든 지금까지도 콘치즈통닭의 인기는 여전하다.

십 분 정도 지나고, 아저씨가 오븐에서 닭을 꺼내 넓적한 무쇠 그릇에 담는다. 다 구워진 닭은 노릇노릇하다. 아저씨는 닭 위에 조리용 슬라이스 치즈와 옥수수, 스위트칠리소스를 듬뿍 뿌린다. 이내 병규가 부엌으로 달려와서는, 완성된 콘치즈통닭이 담긴 무쇠 그릇만 들고 홱 나가버린다. 나도 병규를 따라 홀로 나간다. 중년 남녀가 홀 벽에 걸린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병규가 무쇠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그들은 기뻐하며 포크와 칼을 든다. 칼로 닭의 배를 가른다. 노릇한 껍질 사이로 뽀얀 살이 드러난다. 나는 다시 카운터 앞에 앉는다. 고깔 모양 과자를 마저 집어 먹는다. 병규도 내 옆에 앉는다.

병규네 가게에 메뉴가 두 가지뿐이던 시절부터 나와 병규는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 초등학교 땐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중학교 때 친해졌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론 아예 베스트프렌드가 되어 단둘이 붙어 다녔다. 내 생각에, 우리가 이만큼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우리 둘 다 편부모 가정 자녀였기 때문이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애들은 양부모 가정에서 자란 애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 잘 어울려 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차이를 느끼고 나가떨어진다는 것.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애들은 결국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애들끼리 어울리게 된다는 것. 이것은 꽤나 차별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편견에 찌든 사람들이나 지껄이는 비도덕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떡해. 내가 겪은 현실이 그랬던 걸 어떡하냐고.

나와 병규는 J역 삼 번 출구에서 친해졌다.

중학생 시절, 나는 매일 저녁 J역 삼 번 출구로 나갔다. 삼 번 출구 바로 옆, 오 층짜리 상가에 천원피자와 롯데리아, 김밥천국이 입점해 있었다. 거기서 저녁밥을 사 먹었다. 오늘 피자를 먹으면 내일은 불고기버거를 먹고 또 모레는 치즈김밥을 먹는 식이었다. 세 가지 메뉴만 돌려먹다 보니 물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돈은 오천 원뿐이었고, 오천 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그 세 가지뿐이었으니까. J역 삼 번 출구는 동네 날라리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머리를 바가지 모양으로 자른 남자애들과 미니스커트보다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자애들이 삼 번 출구 앞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애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사고 치고 다니기로 유명한 애들이었다. 그 애들은 왁자지껄 떠들었다. 구구구구, 거리의 쓰레기를 쪼아먹는 비둘기를 향해 침을 찍 뱉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돌 후크송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다가 별안간 “시발, 존나 좆 같아!”라고 욕을 했다. 인적 드문 순간을 틈타 담배도 피웠다. 병규 역시 그런 애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도 그 애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 있게 되었다. 함께 떠들고 침을 뱉고 욕을 하게 되었다. 다만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혹시 누가 신고라도 하면 학교에 연락이 갈 테고, 학교에선 부모님 모셔오라 할 게 뻔했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애들은 보통 밤 열 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싫지만, 부모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통금 시간이 열 시인데, 지키지 않으면 부모가 자기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랬다. 심지어 어떤 애 부모는 현관문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걜 기다린다고 했다. 열 시가 조금이라도 넘으면 애들 핸드폰엔 불이 났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핸드폰은 계속 울렸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양 행동하던 애들이 고작 부모 문제로 벌벌 떨다니. 우스웠다. 반면에 나에겐 정말로 무서울 게 없었지. 내겐 아빠가 없었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귀가를 독촉하는 부모. 현관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부모. 그런 부모가 내겐 없었고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J역 삼 번 출구 앞에 나 혼자 남을 때까지. 아니. 아니지. 혼자가 아니었지.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지. 병규 말이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땐 뭐든 다 재밌었는데 둘만 덩그러니 남고 나니 딱히 할 일도 없고 지루했다. 너는 왜 집에 안 가느냐고 병규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말을 걸었다가 더 어색해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을 뿐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병규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병규가 망을 봐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괜히 찔려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병규가 담배꽁초로 이 보도블록과 저 보도블록 사이에 난 틈을 후벼 파면서 물었다.

“넌 왜 이 시간까지 여기 있냐. 니네 부모님은 혼 안 내?”

내가 먼저 묻고 싶었는데 쟤가 선수 치네. 나는 내내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순간 벤치의 갈라진 나뭇결에 걸려 스타킹 올이 나갔다. 고개를 숙여 스타킹 상태를 확인했다. 허벅지 중간 부분부터 발목까지 줄줄이 구멍이 나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구멍 하나하나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우리 엄만 나한텐 별로 관심 없어서.”

병규가 피식거렸다.

“개웃기네. 난 아예 엄마가 없는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당황해서인지 내 입에선 아무 질문이나 마구 튀어나왔다.

“아빠는 있어?”

병규는 겉면에 ‘빛나리 나이트클럽’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연두색 라이터를 매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난 아빠가 없는데.”

내 말에 병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겨 죽겠다는 듯이 배를 잡고 발을 굴렀다.

“뭐야, 너 나랑 존나 비슷하다! 난 엄마가 없고 넌 아빠가 없고 우릴 합치면 애미애비 없는 애들이잖아!”

애미애비 없는 애들. 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분명 욕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부모 가정 자녀’ 같은 낯간지러운 말보다 훨씬 낫게 들렸다. 자꾸 되뇌다 보니 웃겨서 나도 병규를 따라 낄낄 웃었다. 한참을 웃다 지쳐 다시 벤치에 널브러졌을 때, 병규가 뜬금없이 빅뱅의 신곡 <천국>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투애니포세븐, 그댄 나만의 헤븐. 투애니포세븐, 여긴 영원한 헤븐. 중간중간 능숙하게 바이브레이션을 넣었고 고음 구간도 막힘 없이 불렀다. 노래 되게 잘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어둠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난 병규의 옆얼굴을 관찰했다. 둥글게 자른 앞머리 사이로 눈썹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눈썹이 진했다. 쌍꺼풀진 눈은 부리부리했다. 코가 큰 편이었으며 콧대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엄청 잘생기진 않았지만, 학교에 널린 남자애들보다는 반반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고음을 내지를 때 병규는 가느다란 다리를 까딱거렸다. 나도 병규따라 다리를 까딱거렸다. 스타킹에 난 구멍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그런 밤이 반복되자 나와 병규는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병규네 엄마가 오래전에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규도 내가 저녁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J역 근처를 배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밤, 병규가 통닭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나는 저녁밥을 먹지 않은 상태였다. 피자도 지겹고 햄버거도 지겹고 김밥도 지겨워서 쫄쫄 굶고 있었는데, 통닭을 먹자고?

“통닭 비싸잖아. 니가 살 거야?”

병규는 “너 진짜 거지냐?” 되물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J역 삼 번 출구에서 십 분 정도 떨어진 변두리 건물로 나를 데려갔다. 그 건물 일 층에 통닭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통닭집은 지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빨간색 간판에 ‘원조 참나무통닭’이라고 적혀 있었고 간판 아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나는 거뭇거뭇 때가 탄 플래카드에 깨알만 하게 적힌 글귀를 읽었다. ‘참나무의 효능-참나무엔 혈중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참나무의 향이 그대로 배어 있는 저희 참나무통닭은 명실상부 백세시대를 이끄는 웰빙식품입니다.’ 나는 비웃었다. “통닭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나 보지.” 그런데 출입문을 열기 직전, 병규가 말했다.

“우리 아빠가 여기 주인이다.”

나는 그때껏 병규가 통닭집 아들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당황해서 따져 물었다.

“니네 아버지 가게 가는 거라고, 왜 미리 말 안 했어?”

병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어쩌라고. 통닭만 먹으면 되는 거 아냐?”

홀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병규는 나를 부엌으로 잡아끌었다. 나는 그날 병규네 아저씨를 처음 봤다. 그때도 아저씨는 목장갑을 끼고 불가마 오븐 앞에 쪼그려 앉아 닭을 굽고 있었다. 병규가 “아빠!” 하고 부르자 아저씨는 나와 병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엉거주춤 허리를 숙였다.

“얘 내 친구야.”

아저씨가 “그러냐?”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투가 병규 말투랑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는 목장갑을 벗고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웬일로 병규가 친구를 다 데려오고. 둘이 무지 친한가 보구나. 병규랑 같은 반이냐?”

J역 삼 번 출구에서 친해진 사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는 없어서, 나는 얼버무렸다.

“같은 반은 아니고요, 같은 학교예요.”

대충 둘러내고는 아저씨를 올려다봤다. 붉게 그을린 얼굴에 쌍꺼풀진 눈과 큰 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병규와 무척 닮은 얼굴이었다.

“아! 둘 다 인사 좀 그만해. 아빠, 우리 배고프니까 통닭 주라. 양념으로.”

병규가 볼멘소리를 해 댔다. 병규의 말투는 평소처럼 퉁명스럽고 사나웠지만 묘하게 애교가 묻어났다.

“금방 만들어서 갖다 줄 테니까 친구랑 과자 먼저 먹고 있어.”

아저씨는 나와 병규를 홀로 내보내고는 다시 오븐 앞에 앉았다. 고깔 모양 과자를 먹으면서 십 분 정도 기다리자 아저씨가 양념통닭을 테이블로 직접 가져다주었다.

그날의 양념통닭은 정말 맛있었다. 태어나 먹은 통닭 중에 가장 맛있었어. 내가 감탄하자 병규는 피식 웃었다. 나는 종종 여기 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병규는 니 맘대로 하라면서 포크로 닭 뼈를 발라냈다. 그날 이후, 나는 천원피자나 롯데리아나 김밥천국에 가지 않았다.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병규네 가게를 찾아가서 통닭으로 저녁을 때웠다. 병규와 함께 갈 때도 있었고 혼자 갈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엔 일반참나무통닭을 먹었고 또 어느 날엔 양념통닭을 먹었다. 콘치즈통닭이 메뉴에 추가된 뒤로는 콘치즈통닭도 먹었다. 아저씨는 내게 통닭값을 받지 않았다. 자식 친구한테 장사하는 장사치가 세상에 어딨냐면서.

이제는 안다. 아저씨는 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생을 못 쓸 정도로 어려운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그런데 남의 집 애가 돈 한 푼 없이 찾아와서 얻어먹고만 가니 화도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단 한 번도 내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손님들 몰래 콜라를 챙겨주었다. 나는 종종 내가 공짜로 얻어먹은 콜라와 통닭이 총 얼마어치인지 가늠해보곤 한다. 통닭 한 마리 가격은 만오천 원이고 콜라 한 캔 가격은 이천 원이다. 둘을 합치면 만칠천 원. 한 달에 최소 통닭 열 마리는 먹었고 일 년은 열두 달이니까 만칠천 원 곱하기 십 곱하기 십이는 이백사만 원. 내가 병규네 가게를 드나든 햇수만 따져도 십 년은 족히 되니까 다시 십을 곱해야 한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대략 이천사십만 원어치를 먹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천사십만 원. 내가 평생 가게 일을 거든다 한들 다 갚지 못할 돈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쨌든 언제부턴가 병규네 가게가 집처럼 느껴졌다. 먹을 것도 없고 사람도 없는 집보다 통닭과 병규와 아저씨가 있는 병규네 가게가 백 배는 더 좋았다. 촌스러운 간판도, 간판 아래 걸린 플래카드도, 가게에 벤 통닭 냄새도 그저 다 좋았다.

중년 남녀는 콘치즈통닭을 잘도 먹는다. 닭살을 포크로 콕 찍어 먹고 먹고 또 먹고. 끝도 없이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그들을 보지 않는 척하면서 몰래 힐끗거린다. 병규가 다리를 떨면서 속삭인다.

“유튜버 말이야.”

“응? 뭐라고?”

가게에 손님이 있을 때 나와 병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화한다. 손님이 듣지 못하도록. 문제는 대화 당사자인 우리조차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병규는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안 그래도 진한 쌍꺼풀 선이 더욱 뚜렷해진다.

“유튜버! 유튜버!”

“왜 자꾸 짜증이야. 유튜브가 뭐.”

“그거 진짜 우리도 할 수 있어?”

“그렇다니까.”

“근데 조회수가 높아야 돈을 많이 받는다며. 조회수를 어떻게 높이냐?”

“사람들이 많이 볼 만한 동영상을 올려야지.”

“그러니까 그런 동영상이 뭔데.”

“무조건 자극적인 거.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거. 콜라밥 먹방 같은 거.”

“자극적인 거, 자극적인 거…….”

병규가 반복해서 읊조리는 사이, 또다시 종소리가 울린다. 오늘의 두 번째 손님은 젊은 여자 두 명. 친구 사이로 보인다. 병규는 캡모자를 고쳐 쓰고서, 그들을 테이블로 안내한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손님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테이블 네 개가 순식간에 가득 찬다. 갑자기 왜 이렇게 몰려오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어느덧 일곱 시 반이다. 오늘처럼 장사가 잘되는 날은 흔치 않다. 이런 날은 한 달에 열흘도 채 되지 않으므로 바짝 벌어놔야 한다. 본격적으로 서빙을 돕기 위해 코트를 벗으려는데, 병규가 말린다. 너까지 서빙을 하면 카운터는 누가 보냐면서. 결국 나는 병규가 시키는 대로 카운터를 지키기로 한다.

아직 계산하려는 손님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게 싫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을 하게 되니까. 미래니 돈이니 취업이니,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 벌써 반년 넘게 무직 상태다.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도 않다. 내겐 돈이 없다. 작년에 일하면서 모은 돈도 곧 바닥날 것 같다. 아직 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만 쌓여 있다. 돈이 없으므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회사에 다니고 싶진 않은걸.

작년 봄,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지하철로 삼십 분 거리에 위치한 세무 계열 중소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갔었다. 채용공고에는 ‘세무 및 회계학 전공자 우대’라고 적혀 있었는데 막상 입사하고 나니 세무나 회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만 시켰다.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타서 나르고 삼십이 평짜리 사무실을 청소하고 회사 홈페이지에 간단한 공지사항을 게시하고 사오십대 직원들의 농담을 적당히 받아치는 게 내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돈도 줄 만큼은 줬다. 이 정도면 괜찮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A의 생각은 달랐다. A는 나보다 한 달가량 늦게 입사한 인턴사원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서울권 사 년제 대학에 다니는데 일 년 휴학하고 인턴으로 일하는 거라고 했다. A는 모든 면에서 애지중지 자란 티가 났다. A는 메이커 옷만 입고 다녔다. 가끔 명품 가방도 들고 다녔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A네 엄마가 외제차를 끌고 와서 A를 사무실 앞에 내려주었고 다시 저녁 여섯 시가 되면 데리러 왔다. 출퇴근길에 그 광경을 목격하면 나는 목에 걸고 있던 교통카드를 벗어 던지고 싶어졌다. 스물세 살이나 돼서 엄마 차를 타고 다니다니. 마마걸 같으니라고. 속으로 A를 욕했지만, 겉으로는 나름 잘 지냈다. 점심도 함께 먹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A는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까. 취업난이 심각해서 서울권 사 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 이 학년 때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이야기, 연이율 삼 프로 적금 통장에 매달 이십만 원씩 저축한다는 이야기……. 하나같이 재미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한 번은, A가 사무실 근처 백반집에서 팔팔 끓는 김치찌개를 떠먹다 말고 신경질을 낸 적이 있었다.

“우리 회사 사람들 너무 격 떨어지지 않아요? 내 친구네 상사들은 다 젠틀하다던데.”

“네?”

“몸매가 별로라느니 그나마 치마를 입어야 덜 뚱뚱해 보이니까 치마만 입고 다니라느니, 맨날 그러잖아요. 여자 상사든 남자 상사든.”

“아…… 그쵸. 구리죠.”

“지들 딴엔 농담이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성희롱인데. 요새 신고하면 걸린다던데요. 진짜 확 신고해버릴까. 저, 살면서 이런 모욕감은 처음 느껴본다구요.”

A는 씩씩거렸다. 나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 역시 A가 들었던 말을 똑같이 들었다. 듣고 기분이 나빴지. 저 좆 같은 상사 새끼들 입을 다 꿰매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모욕감까지 느꼈나? 애초에 모욕감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봤다. ‘타인에게 무시당할 때 느끼는 수치심과 분노를 통틀어 모욕감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엔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 설명을 읽는 순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용의 복장 검사에 걸려 교무실로 끌려갔었다. 그때 사십 대 여자 담임이 내게 그랬지. 너 같은 애들을 보면 가정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고. 일반적인 부모라면 딸내미 치마가 이렇게 짧은데 두고만 보겠느냐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담임 너머의 책상을 노려봤다. 책상에 사진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담임과 담임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담임의 딸로 추정되는 꼬마애. 세 사람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이 바로 모욕감이었구나. 어렸을 적엔 그런 일 하나하나에 분개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무뎌졌던 것 같다. 나는 화가 났다.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모욕감을 느끼지 못한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A가 느낀 걸 나는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입사 일 년을 채우자마자 퇴사했다. 퇴사한 뒤로는 사무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거기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재취업하면 또 비슷한 일을 겪게 되겠지. 다른 회사에 들어간들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 겪을 바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아, 정말 싫다. 생각하기도 싫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나는 과자를 입에 털어 넣는다. 와작와작 씹는다.

여덟 시 오 분 전, 중년 남녀가 카운터로 다가온다. 그들은 내게 계산서와 신용카드를 건네준다. 나는 카드리더기에 신용카드를 삽입한다. 영수증을 뽑으려는데, 중년 남녀가 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묻는다.

“근데 저 포스터는 뭐예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오래 망설이는 사이, 중년 남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가게를 나선다. 홀과 부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병규가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크게 외친다. 나는 포스터를 응시한다. 포스터는 A3 크기고 오래되어 빛이 누렇게 바랜 상태다. 포스터 속 남자는 연보라색 반팔과 연청색 스키니진 차림인데, 무척 촌스럽게 느껴진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인상을 쓴 채 한껏 폼을 잡고 서 있는 남자. 그 남자는 병규다. ‘타이거’라는 예명으로 불리던 시절에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어쨌든 병규가 맞다.

병규가 캐스팅된 건 고등학생 시절의 일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함께 떠들고 침을 뱉고 욕을 하던 애들은 하나둘 J역 삼 번 출구에 발길을 끊었다. “새끼들, 돌대가리로 좆빠지게 공부해서 뭐 얼마나 좋은 대학 가나 보자.” 병규는 비아냥거렸다. 나가 봤자 함께 놀 친구들이 없으니 나와 병규도 더는 J역 삼 번 출구를 찾지 않게 되었다. 대신 병규는 통닭 서빙을 시작했다. 어차피 돈이 없어 대학 가긴 글렀으니 가게 일이라도 돕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칭 ‘취업 명문’이라는 전문대학이라도 가보겠답시고 독서실에 등록했다. 한국에서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대입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부도 해 봤던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두 시간도 못 채우고 독서실에서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뛰쳐나와서는 또 병규네 가게로 향했다. 손님이 없을 때면 카운터에 앉아 비문학 지문을 분석하고 영단어를 외웠다. 공부하다 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고깔 모양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독서실보다는 집중이 잘 됐다. 병규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장난을 쳤다. 내 공책에 졸라맨을 그리거나 펜 뚜껑을 바꿔 끼웠다. 빨간색 펜인 줄 알고 밑줄을 그었는데 파란색 잉크가 나와서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때로 병규는 건물 뒷골목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나는 걱정이 돼서 병규를 쫓아갔다. 사람들이 보고 신고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병규가 피식 웃으면서 받아쳤다. “난 노안이라 괜찮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몇 년 사이 키가 이십 센티나 자라고 젖살이 쪽 빠져서 병규는 이미 다 큰 어른처럼 보였다. 통닭집에서 통닭과 술을 나르는 병규를 고등학생으로 볼 사람은 아마 없을 듯싶었다. 병규는 담배를 보도블록에 문질러 끈 다음,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리를 까딱이면서.

캐스팅되던 날도 병규는 뒷골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빅뱅이나 동방신기, 샤이니 노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뚱뚱한 대머리 남자가 병규에게 다가와 몇 살이냐고 물었던 것만 기억난다. 병규가 열일곱 살이라고 답하자 남자는 키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병규가 백칠십팔 센티라고 답하자 남자는 병규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리고 명함을 건넸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명함에 적힌 주소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남자가 자리를 뜬 뒤, 우리는 명함을 살폈다. 명함 중앙에 ‘굿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최재훈’이라고 적혀 있었다.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도 기재되어 있었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제금융로 316번지 선우빌딩 3층. 027865300.’ 병규가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굿 엔터테인먼트? 여기가 어디냐?”

“엔터테인먼트라잖아. 아이돌 키우는 소속사겠지.”

“빅뱅이 여기 소속이냐?”

“빅뱅은 와이지 소속이야.”

“그럼 동방신기가 여기 소속이냐?”

“걔넨 에스엠이고.”

“씨발 뭐야. 안 유명한 회사잖아.”

병규가 명함을 구겼다. 나는 병규에게서 명함을 빼앗았다. 구겨진 명함을 다시 피면서 말했다.

“야! 안 유명한 회사라도 이게 어디야. 너 방금 길거리 캐스팅 당한 거야. 혹시 알아? 여기로 찾아가면 너 아이돌 시켜줄지.”

당시 나는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병규가 난색했다.

“아, 뭔 아이돌이냐.”

“아이돌이 뭐 어때서. 아이돌 되면 감사지. 아이돌 돈 무지 잘 벌어. 너 지드래곤이 명품만 입는 거 몰라?”

나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지드래곤 사진을 병규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 지드래곤은 샤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샤넬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를 신고 샤넬 로고가 새겨진 백팩을 매고 있었다.

“아이돌만 되면 니 인생은 백팔십도 달라지는 거라고. 아이돌 되면, 너 서빙 안해도 돼. 아저씨는 아르바이트를 쓰실 수 있겠지. 아니다, 니가 벌어다 준 돈 쓰기도 바쁘실 테니까 가게는 그냥 때려치워도 될 거야. 너 연예인 특례로 대학도 갈 수 있지. 몇 년만 빡세게 활동하면 강남에 몇십억짜리 아파트도 살 수 있어.”

병규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쌍꺼풀진 눈을 천천히 깜빡이면서 물었다.

“진짜?”

나는 대답했다.

“진짜.”

병규는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굿 엔터테인먼트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건물 한 층 규모의 작은 소속사지만 연습실이니 녹음실이니 있을 건 다 있더라면서 병규는 기뻐했다. 며칠 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서는 아예 방방 뛰었다. 병규가 그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나는 처음 봤다. 늘 퉁명스럽게 굴던 병규가 기뻐하니까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병규는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병규가 아이돌 되는 걸 썩 내켜 하지 않았다. 병규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을 즈음, 병규와 아저씨는 크게 다퉜다. 여느 날처럼 가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병규가 보이지 않았다. 부엌에 있나? 싶어 카운터 뒤 통로를 따라 부엌으로 걸어가다가 거친 말소리를 들었다. 나는 통로에 숨어 부엌 안을 엿보았다. 아저씨는 불가마 오븐 앞에 앉아 있었고 병규는 아저씨 앞에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몹시 닮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싸우는 중이었다. 아저씨 말의 요지는,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이루지 못할 꿈을 좇다 보면 허파에 바람만 든다. 그런데 병규 네가 지금 이루지 못할 꿈을 좇고 있다. 그건 꿈이 아니다.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라. 병규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지금 나더러 아빠처럼 살라는 거야? 평생 여기 처박혀서 통닭이나 구우라고?”

부엌을 박차고 나오던 병규가 통로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여기서 뭐하고 있냐?”

“너 아저씨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병규는 몇 초간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자기가 망상이나 좇는 망상병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 거라고.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병규는 정말 열심히 연습생 생활에 임했다. 하교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넘어가서 노래와 춤 트레이닝을 받은 뒤 자정 넘어 귀가하는 게 병규의 일과였다. 덕분에 나조차 병규 얼굴을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못 봤다. 병규는 목을 아껴야 한다면서 담배를 끊었다. 금연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병규는 금연도 힘들지만 춤 트레이닝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노래만 불러 봤지, 춤을 춰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병규의 팔다리는 춤추다 넘어져서 생긴 멍 때문에 얼룩덜룩했다. 병규는 그만큼이나 열심히 살았다. 매달 소속사에 트레이닝비도 육칠십만 원씩 갖다 바쳤다. 그러나 끝내 아이돌이 되지는 못했다.

데뷔할 뻔한 적이 있긴 있었다. 열아홉 살 때. 수능이 백 일도 채 남지 않았을 시기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카운터에서 정신없이 <수능특강>을 풀고 있었는데, 병규가 머리를 샛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병규는 가게가 떠나가라 외쳤다. “나 데뷔한다!” 연습생 생활 일 년 반 만에 드디어 데뷔 조가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다른 연습생 네 명과 병규. 그렇게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 조만간 데뷔할 거랬다. 병규의 예명은 ‘타이거’라고 했다. 솔직히 촌스러운 예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하필 타이거로 정했느냐고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호랑이는 존나 세니까. 호랑이한텐 아무도 못 덤비잖아.” 병규는 자기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포스터도 한 장 가져왔다. 데뷔 앨범에 실릴 포스터라면서. 며칠 뒤, 가게 홀 벽에 포스터가 붙었다. 아저씨가 붙인 거였다.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스터를 들여다보곤 했다. 포스터 속 남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저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 아들놈요. 저놈 커서 뭐가 되려나 걱정했는데 곧 티브이에 나온다네요.” 통닭 냄새가 유난히 구수하게 느껴지던 시절. 그땐 정말 데뷔가 코앞인 줄로만 알았다.

소속사 사정으로 데뷔가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말 그대로 데뷔 시기가 다소 늦춰졌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늦춰져 봤자 서너 달 안엔 데뷔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고 넉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데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전문대학 세무회계과 합격 통보를 받았을 즈음, 굿 엔터테인먼트는 아예 문을 닫았다. 대표이사 최재훈이 야반도주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최재훈은 십팔억의 빚을 진 빚쟁이로, 연습생들이 갖다 바치는 트레이닝비로 이자를 메꾸고 있었더랬다. 경찰은 그게 흔한 사기 수법이라고 혀를 찼다. 제대로 된 소속사는 연습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면서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충고도 했다.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그 소식은 인터넷 기사에조차 실리지 않았다. 누군가 큰 빚을 지고 회사가 망하고 회사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 인생도 덩달아 망하는 건 우리한테나 충격적인 일일 뿐, 전 국가적으로는 너무 흔한 일이라 화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별수 없이 병규는 소속사를 옮겼다. 그러나 새 소속사에서도 데뷔하지 못했다. 이후 에스엠이나 와이지 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소속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애매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노래 실력이 특출나지 않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이삼 년간 계속 떨어지기만 하다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군대에 갔다. 입대를 삼 년 이상 미루려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데 병규는 대학이나 회사,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았으므로 미룰 핑계가 없었다.

십구 개월간 군대에 갇혀있다 나온 뒤로 병규는 변했다. 이제 병규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 않는다. 스물네 살을 연습생으로 받아주는 정신 나간 소속사는 한국에 없다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밖에서는 캡모자를 절대 벗지 않는다. 성격도 전보다 더 퉁명스러워졌다. 실없이 장난을 치다가도 짜증을 낸다. 서빙 일은 곧잘 하지만, 손님이 없을 땐 아저씨한테 패악을 떤다. 쪽팔리니까 벽에 붙은 포스터 좀 떼라고 소리친다. 직접 떼어 보겠답시고 포스터 가장자리를 잡아 뜯기도 한다. 하지만 양면테이프가 눌어붙어서 떼어지지 않는다. 자기가 데뷔하지 못한 데에는 아저씨 책임도 있다고 따진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느니 헛된 망상이라느니 옆에서 초를 쳐 대서 자기가 데뷔를 못 한 거라고. 말이 씨가 된 거라고. 아저씨는 반박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닭을 구울 뿐. 불가마 오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아저씨의 얼굴은 더욱 붉어 보인다.

그렇게 병규는 망했다.

망해버렸다.

망해버린 병규를 보고 있노라면 죄책감이 든다. 그 옛날, 명함을 받았을 때 내가 바람만 잡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병규는 가난하고 평범한 통닭집 아들로서 분수에 맞게, 살던 대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시간을 돌린다 해도 우린 똑같은 선택을 할 터였다. 그때 우린 뭐라도 믿어보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손님들도 하나둘 자리를 뜬다. 아홉 시를 넘기자 홀은 다시 텅 빈다. 나와 병규는 테이블을 치운다. 커다란 비닐봉지 하나에 치킨무와 닭 뼈를 버린다. 맥주 캔과 음료수 캔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는다. 포크와 칼과 빈 무쇠 그릇을 부엌으로 옮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뒤, 나는 그만 집에 가 보겠다고 말한다. 카운터 구석에 벗어둔 연보라색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두른다. 행주로 테이블을 벅벅 닦고 있던 병규가 고개를 든다.

“벌써 가냐?”

“피곤해. 가서 일찍 잘래.”

나는 부엌으로 가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기다란 쇠 집게로 까맣게 탄 장작을 빼내고 있다. 코트 입은 나를 보더니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인사를 마치고 다시 홀로 나오니 병규가 검은색 롱패딩을 주섬주섬 입고 있다. J역까지만 바래다주겠다면서.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또 손님 오면 어떡하냐고 말리자 병규는 롱패딩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보인다.

“너 바래다주는 김에 한 대 피우려고.”

나와 병규는 J역 삼 번 출구를 향해 나란히 걷는다. 깜깜한 길을 걷는 내내 병규는 담배를 피운다. 스쳐 가는 사람들이 병규를 매섭게 쏘아본다. 병규는 알파벳 ‘T’가 수놓아진 캡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면서 말한다.

“유튜버, 하자.”

나는 되묻는다.

“안 할 것 같더니. 웬일로?”

병규가 피식 웃는다.

“그거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며.”

“근데 무슨 주제로 찍을지는 생각해 봤어?”

“먹방 어떠냐?”

“무슨 먹방?”

“생닭 먹방.”

가게 냉장고에 보관 중인 생닭만 해도 수십 마리니까 한 마리만 빼서 먹자는 것이다. 생닭 먹는 동영상을 올리면 사람들이 궁금해서라도 보지 않겠느냐고 병규는 이야기한다. 순간 살모넬라균, 식중독 같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생닭의 연분홍색 살이 떠오른다. 오돌토돌한 껍질이 떠오른다. 맛은 어떨까. 역겹겠지. 후추나 소금을 뿌리면 좀 덜 역겨울까. 역겨워도 맛있는 척 먹어야 하겠지. ‘도전! 콜라에 밥 말아 먹기’ 동영상 속 여자가 그랬듯이.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껍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식중독이든 뭐든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대답한다.

“좋아. 내일부터 당장 하자. 뭘 준비해야 하지?”

“니가 핸드폰만 있으면 된댔잖아.”

“맞다. 핸드폰이랑 생닭만 있으면 되겠다.”

“드디어 데뷔하네. 유튜버 데뷔.”

그렇게 중얼거리는 병규가 어쩐지 좀 안타까워서, 나는 희망찬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병규야, 우리 유튜버로 대박 나면 구찌 운동화 사자.”

병규도 거든다.

“고야드 클러치도 사자. 루이비통 지갑도 사고.”

우리 빡세게 돈 모아서 강남에 아파트도 사자. 아니, 강남까진 바라지도 않아. 서울 아무 곳에나 아파트 한 채 사자. 서울 집값은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으니까. 차도 사자. 기종은 벤츠나 비엠더블유여야 해. 아니, 요샌 렉서스나 볼보도 괜찮대. 그래, 어쨌든 외제차여야만 해. 국산차 타면 사람들이 무시하니까. 아니, 일단 아저씨 가게에 아르바이트생부터 구해드리자. 아니아니, 그냥 가게 정리하시라고 하자. 평생 닭만 구우셨잖아. 이제 그만 쉬시라고 하자…….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J역 삼 번 출구가 코앞이다. 여기서 집까지는 금방이다.

“이제 나 혼자 갈게.”

병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렇게 빨리 가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 그냥 집 앞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한다.

J역 삼 번 출구는 십 년이 지나도 바뀐 게 하나 없다. 오 층짜리 상가에선 여전히 천원피자와 롯데리아, 김밥천국이 영업 중이다. 출구 앞엔 여전히 결이 갈라진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 여럿이 벤치에 모여 앉아 있고, 비둘기 여러 마리가 애들 주위를 돌면서 쓰레기를 쪼아먹는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난다. 중학교 시절, 우리와 함께 떠들고 침을 뱉고 욕을 하던 애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들 대학에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후의 소식은 모른다. 상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노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병규를 쳐다본다. 어둠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난 병규의 얼굴. 그 익숙한 얼굴을 관찰하면서 익숙한 어둠 속을 걷는다. (*)

 

 

<당선자 인터뷰>

소설 부문 당선자 이정연 학생 interview: 자극 사회에 무뎌진 우리를 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사람이 없듯,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모습의 인생도 없다. 사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정연 학생(동국대 문예창작전공 4)은 다양한 모습의 사회 속 꼭 우리 옆에 있을 만한 인물을 포착해 소설로 그려냈다.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문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낸 이정연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수상작 당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소감 한마디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였는데 당선 소식을 들어 기분이 좋고 힘도 나네요.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출품하신 <병규>는 어떤 작품인가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두 아이 이야기예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랐고 삶이 뜻대로 되지 않다 보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유튜버를 꿈꾸게 되죠. 사회적 약자라고 지칭되면서 차별받아온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한정된 꿈밖에 꾸지 못하는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죠.”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사회 그리고 차별이 굳어진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사회가 점점 강한 자극을 원한다고 느꼈거든요.”

  -자극적이고 차별적인 사회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어요.

  “저도 유튜브를 즐겨 보지만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백인분을 일부러 먹는 등의 콘텐츠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미디어가 우리 일상에 필수가 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가 차별이 공고화돼있고 사회를 더 바꿔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외면한 채 그렇게 자극적인 것만 찾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중요한 이야기네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어떤가요?

  “그 아이들 인생이 많이 공감돼요. 인생이 어떤지는 소설에서 충분히 얘기한 것 같고 어쨌든 잘 살았으면 좋겠는 동생들이네요. 특히 화자인 ‘나’에게 가장 애착이 가요. ‘나’는 병규를 관찰하는 인물이면서도 자신 역시 어릴 때부터 차별을 겪어온 인물이잖아요. 그런 점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애정이 가네요.”

  -소설을 쓸 때는 영감을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작품 소재를 얻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요?

  “일상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한번은 인터넷으로 연예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전혀 모르는 아이돌이 있더라고요. 성공한 아이돌은 엄청난 부와 인기를 거머쥐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돌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일상을 고민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볍게 차용하기도 해요. 작품 속 참나무 숯불 통닭집은 우리 집 앞에 실제로 있어요.”

  -마지막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해 고착된 인식이 강하다고 봐요. 서로를 틀 안에 가두고 남들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안감을 느끼죠. 소설 속 병규와 ‘나’가 뒤처진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좀 늦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문화가 사라지면 좋겠어요. 만약 사라지게 할 수 없다면 지금 우리라도 이 고정관념에 대해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심사평>

슬프고 가슴 저린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응모작은 매우 풍성했다. 응모 작품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준도 대단히 높았다.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직면한 문제와 딜레마를 깊이 파고드는 문학청년들의 패기와 열정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이효원의 「하자 없는 집」과 이정연의 「병규」였다.

  「하자 없는 집」은 의미심장한 설정과 상상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자살한 사람이 살던 집을 내놓으려면 계약서에 반드시 ‘하자 있는 집’이라고 명시해야 하는 제도를 이 소설은 배경으로 설정했다. 이효원의 작품은 그만큼 자살자가 많은 우울한 사회의 묵시록인 셈이다. 우울한 시대의 희생자들은 옥탑방에서 사는 서민들에서 한남동 대저택에 사는 특권층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부모를 잃고 이모의 손에 이끌려 ‘하자 있는 집’을 ‘하자 없는 집’으로 세탁하는 주인공의 삶은 독자의 가슴에 무거운 돌을 매다는 힘을 발휘한다. 다만 초반의 강렬한 설정이 뒤로 가면서 흐릿해지는 것이 아쉬웠다.

  「병규」는 유튜버가 유일한 출구가 된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다.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 먹방을 보고 생닭을 먹는 먹방으로 파워 유튜버가 되려고 하는 이들의 선택은 슬프고 가슴 저리다. 두 남녀는 전철역을 배회하는 불량 중학생으로 만났지만 한 번도 불량한 인간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건강하고 따뜻한 인물들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그러한 역설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참나무 통닭을 폐목 통닭으로 만들지 않고 강원도에서 참나무를 구해와 오늘도 주방 구석에서 통닭을 굽고 있는 아버지와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아들이 있는 치킨집. 오늘 저녁 우리가 가게 될 치킨집이 그런 집일지도 모른다. 아양도 허세도 없는 단단한 문장은 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합의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정연의 당선을 축하하고 이효원을 비롯한 응모자들이 더 큰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 

  심사위원=오정희·방현석(대표 집필 방현석)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