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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내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명성황후'인데요.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유독 극적인 변화의 굴곡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는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서 그려내는 그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죠. 재평가의 역사 속 명성황후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역사 속 '인물'의 '뒷'이야기,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OST ‘나가거든’의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이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OST ‘나가거든’의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이다.

 

타락한 왕비인가 유능한 외교관인가
재해석 된 ‘명성’의 다면성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드라마 <명성황후>의 OST ‘나가거든’의 일부분이다. 슬픈 숙명을 담은 가사처럼 명성황후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는 조선의 국모(國母)로 칭해지는 한편 조선왕조를 망하게 한 주범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명성황후는 바라보는 시각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만큼 복잡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 명성황후가 걸어간 행보를 따라 가보자.

  ‘악녀’에서 ‘여걸’로

  구한말부터 오랜 시간 동안 명성황후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여겨져 왔다. 미신에 빠져서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국고를 모두 탕진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게다가 가부장제가 지배적이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 시아버지와 정치 권력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장영숙 교수(상명대 계당교당교육원)의 논문 「명성황후와 진령군」에 따르면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명성황후는 매체 속에서 ‘권력욕에 불타는 사악한 여인’, ‘집안을 망친 암탉’ 등으로 묘사돼 왔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65년에 개봉한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는 명성황후에 대한 파격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정치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명성황후의 정치적 역량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동안 ‘민비’라고 불리며 부정적으로만 묘사돼 왔던 명성황후는 영화 해당 작품을 통해 ‘여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공임순 연구원(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은 해당 영화가 제시한 시각에 주목한다. “여걸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명성황후를 남성 못지않은 정치적 수완과 능력을 갖춘 여성으로 비추고 있어요. 그동안의 부정적인 평가에 반기를 든 거죠.”

  내가 조선의 국모다?

  여전히 대중의 마음속에 잠재돼있던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해 완전히 뒤집어진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1995년 초연 이후 큰 인기를 얻으며 아시아 뮤지컬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후 명성황후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2001년 드라마 <명성황후>의 성공과 함께 명성황후는 나라를 망하게 한 ‘민비’에서 악랄한 일제에 의해 희생된 조선의 ‘국모’로 자리매김한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당당히 최후를 맞는 장면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드라마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대중화시켰다. 또한 당시 역사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남성 인물만이 주인공으로 다뤄지던 기존 역사 드라마의 통상적 흐름을 환기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인물의 비극적 최후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명성황후라는 인물을 능력 있는 정치가로 바라보기보다는 숭고한 죽음을 이룬 존재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명성황후의 죽음이 ‘국모의 희생’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그의 영웅적 측면이 모성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재현된다는 의견도 있다. 매체 속에서 여성이 영웅이 되는 방식을 제한한다는 비판이다. 공임순 연구원 역시 논문 「죽음의 미학화와 대중 정치의 반동성」을 통해 해당 드라마 내에서 여성이 영웅으로 호명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공임순 연구원은 명성황후를 국모로 추앙하는 과도한 신성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국모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것은 인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명성황후의 정치적 성과는 오히려 가려지는 거죠.”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명성황후를 사랑했던 무명의 처절한 순애보를 다룬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명성황후를 사랑했던 무명의 처절한 순애보를 다룬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여인 민자영을 보다

  한편 명성황후의 비공식적 애정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창작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실이 아닌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의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2009년에 개봉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팩션(faction)이다. 영화는 허구 인물 호위무사 무명과 명성황후의 신분을 초월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허구적인 이야기지만 명성황후의 개인 서사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정 관계를 다룸으로써 그를 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바라본다.

  공임순 연구원은 ‘근대적 개인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를 설명한다. “기존 여성은 남성 혹은 가문에 종속된 존재였어요. 그랬던 여성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서사에는 여성해방의 측면이 분명히 있는 거죠.” 이는 작품에서 여성을 능동적인 주체로 만드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성 인물이 정치적이 아닌 낭만적 서사에서만 능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민족을 비추는 거울

  명성황후는 난세의 여걸, 민족의 어머니, 혹은 로맨스의 주인공 등 다양한 모습으로 매체에 등장한다. 매체상에서 보이는 여러 모습은 실제 명성황후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크게 미쳐왔다.
공임순 연구원은 명성황후에 대한 정치적 평판이 극명하게 갈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매체가 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이유는 ‘민족주의적 심상’에 있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강한 민족주의적 심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하는 일본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거죠. 이것이 명성황후에 투영된 것이라 봅니다.” 실제로 일제는 식민통치 정당화를 위해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명성황후를 더욱 악독한 정치인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진행됐다. 이로 인해 봉건 시대 이후 주도적인 근대 여성 인물이 등장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임순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공적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 속 여성 인물에 대한 조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매체가 명성황후와 같은 유명한 여성 영웅만 찾기보다는 역사 속 다양한 여성에게도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시대적 한계를 뚫고 목표를 성취하려 했는지, 그 속에서 좌절한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시각이 여성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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