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북베트남 비밀요원을 즉결처형하는 남베트남군 장군의 사진, 세계무역센터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 국경이 철조망으로 막힌 상황에서 아이만이라도 건너편으로 건네는 사진 등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죠.

  사진전을 보고 나온 후부터 저는 보도사진가가 돼 사진전에서 본 사진처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꿈은 계속 이어져 왔고 보도사진가라는 직업을 조금이나마 직접 맛보고 싶어 중대신문에 사진기자로 지원하게 됐죠.

  신문사 사진기자는 ‘아스팔트’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현장을 누비면서 여러 풍경을 카메라로 옮깁니다. 중대신문도 별로 다르지 않았죠. 한번은 폭염 속에서 퀴어 퍼레이드 현장을 찍기도 했고 폭우 속에서 축제의 모습을 담기도 했죠.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 사장님을 인터뷰하다가도 어느날은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 후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처음엔 특종이랄 만한 사진을 한장 건져 대학언론상 같은 상을 받게 될 기회만 꿈꿨습니다. 별거 없는 것 같아 보이는 행사보다는 특별한 행사를 찍고 싶어 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교수님에게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자신만만히 저의 꿈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교수님의 반응은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꼭 그렇게 스케일이 큰 게 중요한 것은 아닌데…”

  집에 돌아와 교수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뒤에 생략된 말이 뭔지도 궁금했죠. 오래전 전시회에서 봤던 퓰리처상 수상작을 다시 한번 찾아봤습니다. 전에는 전쟁, 테러, 자연재해 등 커다란 규모의 사진만이 눈에 들어왔지만 천천히 살펴보니 다른 사진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꼬마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여 이야기를 나누는 경찰과 꼬마의 사진, 소아암 선고를 받은 데릭이라는 아이가 투병 생활 끝에 땅에 묻히는 과정을 담은 다큐 사진 등 소소하지만 감동을 주는 수상작들도 많았습니다.

  지난 198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H. 화이트는 “누구나 자기만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죠. 저널리스트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거대한 합창곡도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독주곡이 합창곡보다 못한 것은 아닙니다. 소외당하고 잊혀진 사람의 모습을 담는 것도 커다란 사건을 다루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학기 사진부의 컨셉을 휴머니즘으로 잡았습니다.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리는 약자의 노래가 다른 커다란 노래에 묻히지 않게 인포커싱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죠. 앞으로 중대신문에서 보낼 시간이 반학기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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