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역사 속 '인물'의 '뒷'이야기,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 연개소문을 만나봅시다.

고구려 국정을 총괄하는 ‘대대로’ 선출을 둘러싸고 귀족 간 다툼을 벌이는 장면. 사진 출처: KBS 칼과 꽃
고구려 국정을 총괄하는 ‘대대로’ 선출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장면.                         사진 출처: KBS 칼과 꽃

오는 19일 영화 <안시성>이 개봉한다. <안시성>에서는 당태종 침략에 맞서 싸운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안시성 전투 총괄 책임자는 따로 있다. 바로 연개소문이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 군사와 정치를 이끈 막강한 권력자로 중국 경극에선 강력한 악당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스크린 속 양만춘만큼 우리 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 연개소문을 만나볼 시간이다.

  대막리지에 오르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 장군이자 정치가다. 연개소문이 활약한 7세기 한반도는 삼국으로 분열돼 서로 다투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등장한 시점이었다. 당나라와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던 영류왕과 달리 연개소문은 당에 맞서자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후 자신을 제거하려는 영류왕과 귀족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연개소문은 선수를 치기로 한다. 결국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그는 국가 행정과 군사권을 책임지는 ‘대막리지’ 관직에 스스로 오른다.

  한편 당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핑계 삼아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당군은 파죽지세로 주요 성을 함락하면서 고구려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막강했다.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과 고구려 백성들은 힘을 모아 당군을 막아낸다. 결국 고-당 1차 전쟁은 고구려 승리로 끝난다. <삼국사기>에는 임종을 앞둔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을 중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방용철 강사(경북대 사학과)는 연개소문을 뛰어난 군사 및 외교 전략가로 평가한다. “연개소문은 20년이 넘도록 지속된 당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입니다. 이러한 과업에 힘입어 권력 기반 또한 견고하게 유지했죠.”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연개소문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외세 침략을 막아낸 영웅이라는 관점과 임금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라는 관점이다. 방용철 강사는 연개소문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대에 따라 크게 변해왔다고 말한다. “충과 효를 중시하던 조선시대에는 연개소문을 임금을 살해한 역적으로 평가했어요. 반면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야 했던 일제강점기에는 그가 지닌 영웅적인 면모가 주목받았죠.”

  연개소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연개소문>과 <칼과 꽃>이 있다. <연개소문>은 옛 고구려의 명성을 부활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그 중심에 있는 주인공 연개소문을 절대선(善)으로 그려낸다. 정동준 연구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해당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을 영웅화해 표현했다고 말한다. “<연개소문>은 중국에 당당히 맞서는 강한 고구려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리고 그 상징적인 인물로 연개소문을 내세웠죠. 따라서 연개소문이 당나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이라는 측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칼과 꽃>은 역사적 내용이 아닌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따라서 연개소문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시대 배경의 일부로서 연개소문을 비교적 객관화해 표현한 것이다. 정동준 연구교수는 해당 드라마가 연개소문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은 않는다고 평가한다. “<칼과 꽃>은 전쟁의 부정적 측면과 영류왕을 비롯한 대외온건파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 모두 보여줬어요. <연개소문>과는 대조되는 부분이죠.”

외교에 능한 연개소문

  군사 전략가 및 정치가인 연개소문은 외교에도 능했다. 방용철 강사는 그가 펼친 외교술이 빛을 발한 사례로 안시성 전투를 꼽았다. “안시성 전투에는 항쟁만큼이나 극적인 연개소문의 외교적 술책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입니다.” 이이제이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한 세력을 이용해 다른 세력을 제어하는 전략을 말한다. 실제로 연개소문은 당군이 안시성을 공략하는 사이 유목민족을 부추겨 당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이에 동의한 유목민족 설연타는 10만 기병을 이끌고 당나라 수도 장안 방면을 공격한다. 더 이상 안시성에 붙들릴 수 없는 처지가 된 당태종은 결국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회군한다. 이렇듯 연개소문은 안시성 전투를 통해 외교가 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드라마 한 장면. 사진 출처: KBS 칼과 꽃
사진 출처: KBS 칼과 꽃

고구려에 드리운 그늘

  연개소문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력을 결집해 외세를 물리친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지닌 역사적 한계점 역시 존재한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 김용만 소장은 연개소문이 추진한 장기간 전쟁의 한계를 언급한다. “연개소문의 지나친 대외강경 정책은 계속된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경제적인 황폐화를 초래했죠.”

  방용철 강사는 또한 연개소문이 고대 사회 보수적인 귀족으로서의 한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연개소문은 세 명의 아들에게 권력을 상속하며 독재 정치를 이끌었어요.” 한편 김용만 소장은 같은 맥락에서 연개소문이 고구려 멸망에 일부분 책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장점인 합의정치와 유연한 정책 결정방식을 무시하고 일방적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했어요. 왜곡된 정치 구조는 그가 죽고 난 후에 고구려 정치구조에 치명적인 약점이 됐죠.” 실제로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고 난 후 극심한 권력 누수 현상을 겪었고 이는 후계자 분열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까지 이어지자 700년 역사를 이끈 고구려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국력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내세우며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했다. 특히 고구려 운명과 7세기 이후 동아시아 역사 흐름을 바꾸어놓은 고-당 전쟁은 연개소문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지나친 대외강경 정책을 펼치고 독재정치를 이끌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방용철 강사는 끝으로 연개소문을 평가하는 관점에 대해 제언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연개소문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온전히 우리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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