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중대신문에는 1학기부터 이어져 온 사안들을 추적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전자전기공학부 전대 학생회의 학생회비 횡령, 안성캠퍼스 불법 촬영 사건, 일본어문학전공 K교수의 직위해제 등의 사건을 꾸준히 취재한 기자들의 수고가 엿보였다.

  인권센터 세칙 개정에 대한 기사는 개정 전후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성폭력 신고기한이 연장됐으나 예외 조항이 사라져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해낸 점 또한 훌륭했다.

  ‘중앙대 서비스 만족도 조사’ 기획은 두 면이나 차지하는 데 비해 피상적인 내용을 다루는 데 그쳤다. 교육 환경 분야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서라벌홀이나 봅스트홀의 노후한 시설로 다수가 불편을 겪어도 310관 착공에 열을 올린 이유, 완공 후에도 여전히 공간이 부족한 이유 등 조사 결과는 여러 문제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사 결과를 중대신문의 고민으로 확장했다면 더욱 차별성 있는 기사가 됐을 것이다.

  칼럼은 그 내용과 수준에 따라 매체의 격을 높이기도, 떨어트리기도 한다. 칼럼 ‘갈등의 속성’은 후자였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갈등의 속성을 강조하며 혜화역 시위를 언급하던 필자는 느닷없이 갈등 속에서 이득을 취하는 기회주의자들을 비판한다. 놀랍게도 예로든 기회주의자는 무혐의 판결이 난 사건의 미투(Me Too) 고발자다. 무혐의가 곧 무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명한 시대에 “기회주의자를 구분해내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는 말은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꽃뱀’을 구분해 내야 한다는 세간의 비아냥거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해당 글의 논조에 중대신문이 동의했다면 의아할 따름이다. 그렇지 않다면 독자에게 칼럼의 논조는 곧 매체의 논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더 섬세해진 중대신문을 기대하며 수많은 학내 이슈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신현욱

중앙문화 편집장

영어영문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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