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결과

자신만 생각하는 각자도생의 사회

불안한 현실은 불신의 벽을 높인다

신뢰라는 뜻의 영어 ‘Trust’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에서 유래됐다. ‘신뢰한다’는 말에는 ‘편안하다’는 의미가 내포돼있으며 역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불편하다’는 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즉 사회를 불신한다는 말은 사회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생이 불편한 마음과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과 함께 사회 불신 원인을 알아봤다.

  대한민국이 불편하다

  사회를 향한 대학생의 불신이 중대한 문제인 이유는 그들이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책임질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은 사회를 믿을 수 없게 된 걸까.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청년 세대의 비관적 의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현재 대학생은 자신의 미래와 전망을 확신할 수 없어요. 기득권의 부정부패, 고질적인 취업난 등 각박한 현실에서 비롯된 불만을 사회 지도층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하는 거죠.” 저성장, 고실업으로 대표되는 청년 문제가 사회 불신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비관하는 의식뿐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의 확산도 불신 풍조에 영향을 준다. “사회 전반에 공적인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을 강조하는 문화가 퍼져있어요. 또한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기도 해요.” 이정환 교수(청주대 사회학과)는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세태와 사회규범을 홀대하는 관습이 사회에 대한 불신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윤상철 교수(한신대 사회학과)는 현 대학생이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능력에 의해 공정하게 보상받길 원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부정부패나 비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기본 지식수준이 높고 경제적·정치적으로 안정된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구조인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선호하죠.”

  일그러진 권력의 삼각형

  국회= 자신이 표를 던져 뽑은 대표자를 유권자 스스로가 신뢰하지 않는 역설적인 현상은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서찬석 교수(사회학과)는 국회의 행태가 여전히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이 국회를 불신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는 과거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보여주는 등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국회가 변화하는 속도와 정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죠.”

  의회제도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국회 불신의 원인이 된다. “파벌 위주의 공천권 행사로 인해 후보자가 정당 내 유력인사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정환 교수는 공천 단계부터 유권자가 소외되기 때문에 의정활동에 민심이 정확히 반영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감시할 제도가 미비한 점도 유권자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부= 반복되는 정책 실패는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정부 불신은 취업난, 사회 양극화, 일자리의 질적 하락 등에 대해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요.” 윤상철 교수는 현 정부가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발목 잡혀 경제 현안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또한 윤상철 교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추락한 정부의 신뢰도 대학생의 인식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를 경험하면서 정부 자체에 대한 신뢰를 철회했다고 볼 수 있어요. 현 정부가 지금과 같은 정책적 실패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정부 신뢰도는 더 낮아질 거예요.”

  이병훈 교수는 사건의 여파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정부 신뢰를 평가할 때 이를 반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결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권이 바뀌었어요. 헌정 사상 처음이었던 대통령 탄핵이 주는 충격이 여전히 작용하죠. 또한 아직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사건에 관심을 두고 있죠.”

  법원= 현 대학생의 사법부를 향한 불신은 그들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을 무색하게 만든다. “최근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내려진 이해할 수 없는 판결 등의 영향으로 대학생이 불신을 보낸다고 볼 수 있어요.” 이병훈 교수는 법원 신뢰도가 낮은 여유를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 정서를 판결에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원의 보수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다. 법원은 안정적이고 일관된 판결을 내리기 위해 과거의 판결 기준에 구속되는 경향이 있다.

  이병훈 교수는 법원이 가진 폐쇄성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국민 정서와의 괴리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들만의 특수한 집단성을 갖고 있어요. 판결 과정에 현실과 동떨어진 법원 내부의 재판 논리가 더 많이 작용하죠. 따라서 일반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판단이 발생해요.”

  사적(私的) 집단의 공적(公的) 의무

  언론=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유는 취재 윤리와 보도 규정을 위반하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언론은 지금까지 기본적인 취재 규정 및 윤리를 지키지 않거나 자료를 왜곡하고 현실을 호도하는 보도 행태를 보여 왔어요.” 서찬석 교수는 대학생이 언론에 요구하는 공정성 기준이 높은 데 반해 언론사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학생이 언론을 불신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대학생의 목소리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상철 교수는 이 부분에서 기성 언론과 젊은 세대가 충돌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는 모진 현실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기존 사회 질서에 비판적인데 주류 언론의 보도 관점은 대부분 이와 대치된다는 것이다. “언론이 정치 권력에 의해 통제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해왔어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이 미비하죠. 이 때문에 젊은 세대가 언론을 불신하게 됐어요.”

  기업= 정경유착과 노동착취 등은 산업화 이후 지속적인 기업 불신 풍조를 만들어왔다. “대기업 총수들이 보여주는 부정부패나 갑질 등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이는 사회 불평등이나 기업 간 양극화 문제와도 직결돼요.” 이병훈 교수는 기업의 부도덕한 행태가 윤리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확장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 일자리 창출 능력 저하, 하청 업체와 불공정 거래 등으로 기업 불신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한편 서찬석 교수는 국민이 기업에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기업은 진공 상태에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성장해요.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기업이 성장했기 때문에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기대가 더 크게 존재하죠.” 기업이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신을 받게 됐다는 게 이병훈 교수의 설명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국제 규범 차원까지 정립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많죠.”

  높은 불신을 오히려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첫 단계는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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