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람 자타리, 「사진가의 그림자」, 2017, 28점의 하네믈러 포토랙 위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 작가소장

레바논.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죠. 아크람 자타리(1966~)는 과거 사진을 재해석해 고국 레바논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사진이란 틀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자타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사진가이자 고고학자이다”

다양한 시선으로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다

과거의 사진을 ‘발굴’하고 ‘재구성’해

개인의 삶으로 사회를 풀어내다

사진은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낸 형상’을 의미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기록된 이미지는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히 ‘고정’된 이미지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 이미지는 부식되거나 변형이 일어나고 사진이 전달하는 의미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크람 자타리는 사진을 이용한 파격적인 방법으로 급변하는 고국 레바논과 아랍 세계의 상황을 담아냈다. 사진을 발굴하는 작가 아크람 자타리를 국립현대미술관 ‘아크람 자타리 : 사진에 저항하다’ 전시회에서 살펴봤다.

  상상력으로 사실을 채우다

  아크람 자타리의 고국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서구화된 나라였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로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레바논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레바논 내전으로 최대 23만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35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내전 이후에는 독재정권이 들어섰고 1997년이 돼서야 레바논에 자유가 찾아왔다.

  독재정권이 붕괴한 1997년 자타리는 동료 사진가와 아랍이미지재단 (AIRF)을 설립해 본격적인 사진 수집과 작품 활동에 나섰다. “자타리는 아랍이미지재단 사진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역사와 기억을 재구축한 작품을 보여주죠.” 아랍이미지재단은 19세기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약 60만 점 이상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신동원 도슨트는 작품에서 아랍세계의 삶과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예루살렘 사진작가 안트라닉 바커르쟌은 1948년 1차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과 난민이 모인 세인트 제임스 수녀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바커르쟌은 전쟁 때문에 제대로 된 시설과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현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진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주름지고 갈라지는 등 완벽하게 보존되지 못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필름의 화학 도료가 벗겨지며 사진은 더욱 훼손됐다. 「필름의 본체」는 바커르쟌의 사진을 자타리가 확대해서 재촬영한 작품이다. “자타리는 사진 이미지가 아닌 사진에 남아있는 흔적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에 남은 흔적이 관중의 상상력을 유발해 원래 사진보다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아크람 자타리, 「필름의 본체」(일부), 2017, 라이트 박스

  「CMYK속 키티」에서도 ‘사진 이면’의 해석을 독자 상상력에 맡기는 자타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카이로 사진작가 아르샥은 벨리댄서 케이티 포사티(키티)의 사진을 촬영했다. 아르샥이 사진을 찍을 당시는 C(시안), M(마젠타), Y(옐로우), K(키) 색을 활용한 컬러 사진 인쇄 기술이 막 개발됐을 때였다. 당시 사진가는 컬러 사진이 흑백 사진보다 보존력이 좋지 않아 컬러 사진을 의뢰한 고객에게 흑백 사진도 같이 찍을 것을 권유했다. 아르샥 또한 2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 키티의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흐른 뒤 컬러 사진은 일그러지고 변형돼 원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흑백 사진은 상대적으로 왜곡되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를 전시하지 않았다. 신동원 도슨트는 자타리가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컬러 사진만 보여줘 독자가 키티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우연한 ‘겹침’으로 표현한 세계

  과거에는 브롬화은 젤라틴 용제를 발라서 만든 ‘유리건판’이 사진 필름 대용으로 사용됐다. 유리건판은 유리를 세척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지만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다른 유리건판과 붙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유리건판이 붙으면 사진 2개가 겹쳐 보이게 된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 자타리는 역사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담고자 했다. 「분리되지 않는 역사」에서 우연히 겹쳐진 두 유리건판의 본래 주인은 팔레스타인의 칼릴 라드와 유대민족주의자 야코브 벤 도브다. 역사적으로 대척점에 선 두 민족의 사진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보관되면서 중첩된 것이다. 칼릴 라드와 야코브 벤 도브는 모두 예루살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전혀 달랐다. 이슬람과 유대인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모습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아크람 자타리, 「분리되지 않는 역사」(일부), 2017, 유리 인쇄

  다른 작품에서도 자타리는 겹쳐진 유리건판으로 상반된 세계 중첩을 보여준다. 자타리가 레바논 트리폴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안트레닉 아누시안의 사진을 다시 근접 촬영해 제작한 「얼굴을 맞대고」에는 인물 2명이 중첩돼 있다. 앞쪽의 인물은 레바논 지역 주민이고 뒤에 모자를 쓴 인물은 프랑스 군인이다.

  레바논은 과거 20년 이상 프랑스 식민지였다. 신동원 도슨트는 자타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미지를 겹쳐 표현해 역사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지배자인 프랑스 군인과 피지배자인 레바논 주민은 눈빛만 봐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죠.” 지배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점령지 주민의 얼굴을 거쳐야만 한다. 자타리는 사진을 통해 현지 주민의 시각에서 지배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식민지 주민의 고단함을 현실로 소환하고자 했다.

아크람 자타리, 「얼굴을 맞대고」(일부), 2017, 라이트 박스

  잊혀진 이들을 기록하다

  자타리는 개인의 이미지를 수집하는 작업을 ‘발굴’이라고 묘사하면서 자신을 고고학자에 비유했다. ‘사진’이라는 과거의 기록을 활용해 해당 시대에 개인이 실감했던 감정을 현재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타리는 예술가의 역할이 은폐된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를 재기록해 우리가 알던 사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튜디오 세헤라자데」는 레바논 사진작가 하심 엘르 마다니의 사진 스튜디오 ‘세헤라자데’를 촬영한 작품이다. 마다니는 세헤라자데가 위치한 사이다 시에서 약 7만5000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다. 사이다 시 구성원 대부분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자타리는 마다니가 찍은 수많은 개인들의 사진을 분류해 작은 도시 사이다 거주민의 일상 변화를 기록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개인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을 관찰하면 사이다 시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자타리는 다양한 개인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 속에서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사진의 역할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아크람 자타리, 「스튜디오 세헤라자데」, 2010, 세 폭 제단화 C프린트

  자타리의 작품 「사진가의 그림자」에는 사진에 등장할 수 없었던 사진가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가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줄 뿐 실제 사진에는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자타리는 사진가의 그림자를 강조해 마치 사진가가 전능자처럼 사진을 지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신동원 도슨트는 자타리가 작품에서 사진가의 존재를 부각해 관람객의 시선이 사진가에게 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소외된 계층의 모습을 기록한 작품도 있다. 자타리는「계급의 건설」에서 사진에서조차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하층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1920년대 후반 부자는 여행할 때 사진사를 대동해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다.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의무이자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속에서 낙타의 고삐를 잡은 하인의 얼굴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보이지 않는다. 하인의 얼굴이 사진에 나타나는 것을 꺼려해 사진의 의뢰인이 얼굴을 지우게 했기 때문이다. “자타리는 여행 사진에서조차 차이를 강조하는 지배층의 계급의식을 폭로하고자 했어요.” 신동원 도슨트는 왕권, 즉 강력한 계급을 상징하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어 계급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개인의 삶의 기록을 수집한 자타리는 이후 개인에게 다시 사진을 돌려주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많은 자료를 소장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타리는 사진을 단순히 보관하기보다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가장 궁극적이고 적극적인 보존 행위라고 판단해 아랍이미지재단에 소장된 작품을 개인에게 반환하기도 했어요.”

  자타리는 사진을 단순히 기록을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초월해 독특한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본다’는 것의 이면을 드러내 관중들이 실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전시회는 ‘대규모 발굴 현장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굴된 역사적 유물을 관찰하면 보이지 않는 개인들의 모습과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사진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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