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볼 때 작가가 뭘 만들고 싶었는지를 먼저 따져본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는지, 세부적인 요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마치 작가의 의도를 맞추는 퀴즈처럼 무의식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를 설정한다. 작품의 모든 의미는 작가에게 달려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조심스럽게 먼발치서 봐야만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감상자는 작가보다 열등한 존재일까? 작품 수용을 소비로 비유한다면 작가와 감상자는 판매자와 소비자로 볼 수 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 우리나라에선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쓰인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요지는 작가를 우선순위로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작가가 작품보다, 감상자보다 잘난 존재라면 그 잘 만든 작품을 굳이 우리에게 보여줄 이유는 자랑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 온 힘을 쓰는 것은 불닭볶음면을 ‘만든 사람이 매운맛을 느끼라고 만든 거구나’라면서 입에 대지 않는 꼴이지 싶다. 작품은 우리와 관계하여 의미를 만들어낸다. 즉 입에 대고 맛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가수의 정말 신나는 노래를 듣고 한참 뒤 가사 해석을 보니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노래였던 적이 있었다. 영어를 읽을 줄 몰라서 반주와 목소리로만 듣고 즐긴 결과였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시각예술은 언어로 명료화되지 않기에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다. 문맥상 의미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지시할 수 없다. 게다가 작가의 전달 실력이 출중하지 않은 일도 있다. 우리가 해석이 명료한 양질의 글만 읽지 않는 것처럼 시각예술에도 작가마다 편차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작가의 의도는 순수하게 우리에게 전달되기 힘들고 가능하더라도 큰 의의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으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없겠지만, 작가가 원하는 것은 ‘어떤 의도를 통해 이런 효과를 느꼈으면 좋겠다’이지, ‘어떤 의도를 통해 이런 효과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나의 의도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짧은 질문을 던져본다. 딸기 맛 젤리를 먹을 때 딸기가 정말 들어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감상에서 잠시 작가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별이 아니라 “잠깐만 비켜주세요”하는 느낌으로.

  물론 작품을 볼 때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작가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형태와 리듬, 질감과 관계 등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먼저 감상하면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작가가 짜놓은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가의 의도까지 생각하며 머리 아플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선 보고 느끼는 자세가 더 폭넓은 해석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수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답지를 먼저 봐버리면 그래도 재미없지 않은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재미를 잃지 않고 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한현 학생
사진전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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