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걸에서 꼴페미,
김치녀, 메갈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반격의 역사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

‘백래시: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인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가 여성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대통령이 당선됐고 여성 장관 비율이 최다를 기록했다. 이제 여성은 완전한 평등을 달성한 듯 보이지만 아직도 한국의 OECD 성평등 수치는 바닥이고 고용 시장에서의 성차별 역시 만연하다. ‘완전한 평등의 가능성’만 커지고 있는 현재, 한국에서 백래시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메갈’, ‘페미나치’ 등 언어 프레임을 이용한 ‘페미니즘 낙인찍기’는 끊임없이 여성의 목소리를 옥죄고 있다. 전문가와 함께 언어 프레임을 통한 백래시의 역사적 흐름을 알아보고 해결방안을 살펴봤다.

  사고를 지배하는 자, 프레임

  ‘프레임’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마음속 틀’이다. 이 틀은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방향 짓는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이 중 ‘언어 프레임’이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사고를 결정하는 틀을 의미한다.

  이택광 교수(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는 사람들이 한 사회 내에서 언어 프레임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언어 프레임은 기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만들어요. 그 집단이 가진 이데올로기가 언어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공유하는 거죠.”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 프레임은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이 과정에서 강화된다. 사람은 사건을 인식할 때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사건을 프레임으로 단순화해 인식하게 된다. 이택광 교수는 이 방식이 프레임을 계속해서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안이나 집단을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프레임만을 따라가게 되죠. 사람의 인식 과정에서 프레임이 거의 무의식적,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거예요.” 프레임을 통해 사람들은 특정 대상을 더 효율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강원대 SSK사회통합연구센터 석승혜 연구교수는 프레임이 잠재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기득권 세력이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고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데 프레임을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 집단은 자신의 집단을 다른 집단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설정하기 위해 프레임을 이용한다. “다수 집단은 다른 집단에 부정적 편견의 프레임을 씌워요. 다른 집단을 편견 그대로 판단하고 일반화함으로써 자신의 집단을 다른 집단보다 뛰어난 존재로 설정하는 거죠.” 이러한 태도는 다른 집단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도록 막는다.

  ‘페미니즘=메갈=사회악’ 프레임은 언어 프레임의 특성을 이용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적대감을 확산시킨다. ‘메갈’ 프레임은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며 많은 사람이 프레임을 통해 페미니즘을 생각하게 한다. 페미니즘 내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페미니즘 자체를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백래시’가 작동하는 것이다.

  변화의 공포, 백래시로 나타나다

  페미니스트에게 프레임을 통한 백래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라 볼 수 있는 신여성에게 가해진 언어 프레임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신여성은 ‘모던걸’이라고 불렸지만 한편으로 ‘못된걸’, ‘불량소녀’라며 조롱당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신여성은 ‘창녀’, ‘더러운 년’, ‘방종한 년’으로도 취급됐다. 기존의 여성상과 다른 여성을 ‘문란한 여성’으로 취급해 변화를 막으려는 일종의 백래시였다.

  온라인을 통한 언어 프레임에 백래시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군가산점제도 폐지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신체가 건강한 남성만이 군대에 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에게만 채용 상 가산점을 주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었어요. 지난 1998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도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비난의 화살은 제도적 보완을 마련하지 않는 국가가 아닌 여성을 향했죠.” 이후에도 부산대 페미니즘 커뮤니티 ‘월장’이 복학생 문화를 비판했다가 사이버 성폭력을 당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소희 활동가는 당시 ‘꼴페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여성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됐다고 말한다.

  IMF 발생 이후, 2000년대 초반에 ‘된장녀’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명품을 사거나 비싼 음료를 마시는 여성을 ‘된장녀’라 불렀다. 이소희 활동가는 ‘된장녀’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여성을 향한 백래시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여성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는 이유로 된장녀라 불렸어요. 한 번 된장녀가 되면 외모에서부터 인식에 이르기까지 싸잡아 비난받아야 했죠.”
2009년 전후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김치녀’가 탄생했다.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김치녀’에는 개념녀 대 김치녀로 여성을 나눠 판단하려는 의도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서구 초창기 페미니즘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진 ‘여성 이분법’이라는 것이다. “집 안의 여성에게는 순결과 정조를 강조하고 이외의 여성을 ‘걸레’, ‘창녀’ 등 각종 오명과 낙인을 덮어씌우는 역사가 계속 변주돼 온 거죠.”

  ‘강남역 살인사건’은 페미니즘을 다시 불붙인 계기가 됐다. 지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했다. 가해자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소희 활동가는 해당 사건 이후 여성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여성이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범죄의 피해자’라고 느끼도록 만들었죠.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거예요.”

  그는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가 발생했고 백래시 또한 거세졌다고 덧붙였다.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인터넷상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에게는 이제 ‘페미나치’, ‘메갈’ 등의 낙인이 붙었다. “SNS 등 다양한 형태로 여성의 목소리가 증폭된 만큼 백래시도 더욱 강력한 형태로 발생한 거죠.”

  지난 1월부터 시작된 ‘Me Too(미투) 운동’도 언어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백래시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나영 교수는 백래시가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꽃뱀’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본질을 벗어나 오히려 여성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한다. “미투운동의 본질인 성별 권력 관계와 성차별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여성은 ‘페미나치’로 몰렸어요. ‘여자가 문제니 펜스룰을 통해 배제하자’는 사람도 있었죠.”

  보이지 않는 천장이 되어

  이소희 활동가는 페미니즘을 적대시하고 페미니스트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는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위한 발언을 쉽게 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언어 프레임에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당연한 말을 하는 것에서도 불안감을 느끼게 돼요. 여성들이 ‘성차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조심하도록 만들죠.”

  언어 프레임은 마치 여성이 스스로 안전바를 미리 마련한 채 대화를 시작하게 만든다.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때 ‘나도 메갈은 싫어하는데’라고 말을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서민 교수(단국대 의예과)는 여성이 사용하는 회피 표현이 ‘메갈’로 찍혀 공격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쉽게 주장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옥죄는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다. 이나영 교수는 ‘페미니스트=메갈=사회악’이라는 프레임이 여성 개인의 역량계발을 막고 여성을 과거의 고정관념 속에 밀어 넣는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역할을 아이를 낳고 모성애를 가진 재생산의 도구이자 성적 대상으로 축소하죠.”

  그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성차별을 방치하는 것이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어떤 차이를 가지고 태어나든 인간이라면 모두가 보편적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 발전 요소죠.” 그러나 백래시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막아 결국 사회 발전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백래시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 중 하나인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이소희 활동가는 얼마 전 한 게임회사에서 발생한 ‘메갈 사상 검증’은 개인의 사상에 대한 자유를 억압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내가 어떤 단체를 후원하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어떤 종교를 믿든 그건 모두 자유에요. 회사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회사가 사상을 강제로 드러내고 제제를 준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죠.”

  ‘반격’을 반격하려면

  언어 프레임에서 비롯된 백래시는 많은 고통을 준다. 이택광 교수는 언어 프레임에서 비롯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프레임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안이나 다른 집단을 바라볼 때 프레임으로만 접근하기보다 다양한 각도로 봐야 해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죠. 사건과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는 태도는 교육을 통해 갖출 수 있죠.” 사회에 존재하는 프레임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의심하고 생각하는 태도를 통해 개인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프레임의 근거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이 아닌 편견을 기반으로 백래시가 발생할 때 프레임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메갈’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이런 방식을 통해 프레임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없앨 수 있어요.”

  이나영 교수는 ‘메갈’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봉건적, 가부장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의 삶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죠.” 단순한 성별 고정관념을 넘어서 ‘다른 집단’이 차별받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평등과 인권 교육이 기존의 사고방식을 타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을 통해 모든 인간이 평등한 관계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죠. 실제로 북유럽 국가는 체계적인 성평등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은 적 있나요?”

  이소희 활동가는 특히 기업과 국가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젠더 문제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무지한 태도는 백래시를 심화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있던 한 게임 회사 사상 검증 사태는 기업이 젠더문제에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죠. 회사는 ’직원이 메갈인지 아닌지를 관여하거나 확인할 의무가 없다’고 노동자를 보호했어야 해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이러한 백래시가 발생했을 때 올바른 태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백래시로부터 여성을 보호할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백래시를 방치하는 기업과 국가가 여성을 더욱 무방비한 상태로 공격받게 한다는 것이다. “한 남성이 여성 BJ를 찾아가 살해 협박을 했을 때 국가는 그에게 겨우 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했어요. 우리는 기업과 국가 모두 백래시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거죠.”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과 오해를 접고 왜 이들이 ‘메갈’이라 불려야 했는지 깨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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