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르르 맑은소리가 잔을 채우고, 발그레한 볼엔 웃음이 피어오릅니다. 중앙대의 인기 강의 <술의세계와주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인데요, ‘신의 물방울’이라고도 불리는 와인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풀어가는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와인 교육자인 손진호 강사님(다빈치교양대학)을 만나봤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와인과 함께 걸어온 강사님의 길을 들여다봅시다.


-역사학을 전공하셨다니 의외네요.
“중앙대 사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하던 학생이었죠. 역사학자를 꿈꾸며 석사까지 마친 뒤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을 갔어요. 유럽 내에서도 정치·외교·문화의 중심인 프랑스에서 서양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해보고 싶었죠.”

  -그 전에도 와인에 관심을 두고 계셨나요?
  “아니 전혀요.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는 여느 대학생처럼 바가지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들이켜곤 했어요. 그러다 프랑스 ‘농촌사’를 연구하며 자연스레 와인을 접하게 됐죠. 농민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우리나라 시골에 논이 많듯 프랑스의 시골은 온통 포도밭이더라고요. 식사 자리엔 늘 포도주와 함께했고요. 자연스레 와인을 마시는 게 일상이 됐고 다양한 지방의 와인을 마시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와인에 빠지게 됐죠.”

  -그렇다면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대로라면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려고 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IMF 사태’가 일어나며 경제가 어려워져서 현실적으로 임용이 힘들어졌어요. 그 일을 계기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프랑스에 머물며 와인을 공부하게 됐어요. 이렇게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정말 우연히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 무렵 당시 한국에 들어와 알고 지내던 와인 수입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께서 제 방향에 확신을 주는 조언을 해 주셨어요. ‘IMF 사태가 끝나면 와인 분야가 뜰 것이다’, ‘그때 필요한 건 와인 교육자다’라는 얘기였죠. 제가 그동안 쌓은 역사, 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을 깊이 있게 공부하면 와인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마음을 굳힐 수 있었죠.”

  -확신이 현실이 됐네요.
  “그렇죠.(웃음) 2000년에 최초로 중앙대 평생교육원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했어요. 와인에 대한 책도 목표했던 대로 12권 이상 냈고, 와인 칼럼도 꾸준히 연재하고 있어요.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죠.”

  -강의를 하며 특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와인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어요. 와인은 좋은 소통 수단이죠. 와인을 통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유럽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해요. 또한 이 강의를 듣고 학생들이 새로운 진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와인이라는 분야를 이해하고 자신의 새로운 능력이나 장점을 발견했으면 해요. 실제로 제 강의를 듣고 와인과 관련된 직업을 희망하게 된 학생도 있어요.”

  -다른 술과 구별되는 와인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술을 먹느냐에 따라 술자리의 분위기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와인은 적당히 절제하면서 즐겁게 마실 수 있다는 큰 매력이 있죠. 식사하면서 조금씩 곁들여 마실 수도 있고 다양한 활동에 어울리죠.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어요.”

  -수많은 와인을 맛보셨을 텐데 교수님의 뇌리에 박힌 와인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모든 와인이 자식같이 사랑스럽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와인은 ‘라 따슈’예요. 프랑스 브고뉴의 유명한 피노누아 와인이죠. 굉장히 고가의 와인을 우연한 기회로 맛보게 됐는데 거의 뭐, 천국의 맛이었죠. 항상 꿈꿔왔던 와인이었어요. 영롱한 색은 물론 베리 향과 싱그러운 과일 향이 입에 착 감기는 게, 밸런스와 우아함 모두 환상적이었죠.”

  -천국의 맛이라니 저도 언젠가 꼭 마셔보고 싶네요. 처음 와인을 접하는 학생들에게 와인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일단 마트에 가서 가볍게 와인을 둘러보세요. 마트에 있는 1~2만원대 와인들은 다 맛있어요. 오히려 지나치게 고급인 와인은 개성이 뚜렷해 부담스러울 수 있죠. 저렴한 와인을 고르더라도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 여러 품종을 마셔보는 것을 추천해요. 한 달에 한 품종씩 시음해 보며 맘에 드는 와인을 찾는 거죠. 자신과 맞는 와인을 적절한 음식에 곁들여 마셔 보면 와인을 더 친숙하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와인은 저마다 특유의 색과 맛, 향을 가지고 있어요. 각각 자신만의 멋이 있고 우열을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와인을 통해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죠. 와인처럼 모든 사람은 지역, 학력 등에 상관없이 유일무이한 개성을 가진 인격체이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해요. 갓 만들어진 와인의 거친 맛이 숙성을 거치며 한층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되는 것처럼, 여러분도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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