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는 혼자 하기 힘든 많은 경험과 이에 따른 긴 사유의 과정을 짧은 시간에 간접적으로나마 체득하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특히 탁월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진 글쓴이가 수년간에 걸쳐 이뤄 놓은 방대한 저작 행위의 결과를 짧은 시간에 읽고 내가 가진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맑아지는 경험을 할 때는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넘어 빚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책이 흘러넘치기에 이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말한 그런 고귀한 체득의 경험을 주는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런 느낌은 독서가 생활이 아니고 의무감을 해소하는 방편처럼 생각되면서 일상이 점점 게을러져 가고 있는 필자 자신의 한계 때문이라고 가끔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필자에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상기시켜준 보석 같은 책이었다. 사실 책의 유명세 때문에 책을 구매한 지는 몇 달이 지났지만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 때문에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저하던 끝에 어렵사리 읽기 시작했는데 단 며칠(?) 만에 다 읽고 말았다. 그만큼 이 책은 잘 읽힐 수밖에 없는 섬세하고 치밀한 이야기 전개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인류의 거대한 서사를 다룬다. 오늘날 지구의 유일한 지배자로서의 사피엔스, 즉 우리 인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 책은 과감한 가설과 치밀한 논증을 통해 차근차근하게 조망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다른 종에 비교해 훨씬 더 큰 규모의 집단을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지구를 지배하게 됐다고 하라리 교수는 말하고 있다.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신, 국가, 화폐와 같은 가상의 질서를 통해 집단을 형성하고 소통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과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지금도 인간사회의 지속과 번영은 이에 근거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건축을 논하는 것도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 장치로서 일상의 건축뿐 아니라 통치권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궁전, 교육을 위한 학교나 박물관, 지식 보존을 위한 도서관, 치안을 유지하는 감옥, 신앙을 위한 종교시설 등 다양한 사회제도의 실현은 그에 상응하는 건축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자연스럽게도 인간사회의 발전과 변화는 건축의 발달이나 정교화와 궤를 같이한다. 

  사이보그화돼가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건축의 미래는 어떠할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적 탐구가 될 것이다. 독자가 누구이든 이 책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제공할 것이다.

최윤경 교수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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