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가다’란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서 나가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번 학기 기획부는 사회 에 존재하며 누군가를 억압하는 틀을 찾아 벗 가보려 합니다. 첫 번째 틀은 ‘우울증’입니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의 4%에 해당하는 3억 2천 200만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이 중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죠.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넘쳐나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어떤 틀 에 가두고 있는 걸까요. 총 5명의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재편집해 우리가 몰랐던 우울증의 현실을 알아보고 그 틀을 조사해봤습니다.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우울증

인지해도 방치, 치료보다 눈치

통념의 벽에 갇힌 우울한 사람들

계절이 변하는 시기를 환절기라 부른다. 환절기마다 사람들은 감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한다. 감기는 귀찮으면서도 때론 고통스러운 질병이다. 하지만 지겨운 감기를 이겨내고 회복할 때쯤 또 다른 계절이 우릴 찾아온다.

  삶 또한 계절과 같다. 우리의 삶을 계절처럼 나눈다면 수많은 변화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우울증이란 감기 같은 존재를 맞이하곤 한다. 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회복할 수 있는 감기와는 달리 우울증은 그리 쉽게 낫지 않는다.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 일컫지만 아픈 정도는 분명 더 심각하다. 삶의 환절기 속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주 오지만 가볍진 않다

  감기에 걸리는 이유는 우리 몸의 면역체 계가 약해질 때 감기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우울증도 우리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약해질 때 찾아온다. “인간 관계에 있어 회의감이 든 적이 있어요. 저는 우선순위가 친구라 생각했는데 친구는 저와 달리 친구를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껴졌죠. ”A씨는 친구 관계에서 느낀 서운함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말 했다.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것이다.

  B씨 역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었을 때 우울증이 시작됐다. “열심히 준비 한 시험이 잘 풀리지 않았고 가족관계도 좋지 않아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무리하게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어서 신체적인 피로도 상당했죠.” B씨의 사례를 보면 동시다발적인 불행으로 안정적인 상황이 깨질 때 우울증이 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우울 증은 우리에게 흔히 발생한다. 쉽게 걸릴 수 있고 증상도 다른 질병에 비해 가시적이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우울증은 사회에서 대수롭지 않은 질병으로 생각된다. A씨는 지속되는 우울감에 괴로웠지만 잠깐일 거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울했다가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으니까 일시적이라 생각했죠.” 우울증을 단순히 우울한 감정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곧 다시 우울감에 빠졌다.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졌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계속되는 자기비하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제가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도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죠.” 자신을 계속해서 친구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게 확실한 친구들의 모습 앞에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A씨는 성격적인 변화 이외에도 신체적 변화를 겪었다. “나태해지고 결국은 입맛도 없어서 체중이 급감했어요.”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적 무기력함이 신체적 문제로 전이돼 식욕을 억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B씨 또한 우울증이 신체적으로 전이되자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잠이 안 오거나, 잠이 들어도 금방 깨고는 했죠.” 심해진 우울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적 질병으로 퍼지게 된다. 가벼운 질병은 시간이 지나 우리 몸이 면역체계가 회복되면 낫는다. 하지만 우울증은 가벼운 질병이 아니다. 방치할수록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병원에 간 B씨는 검사 결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주말 새벽에 가까스로 대학병원을 찾아갔어요. 우울증으로 인해 불규칙한 일상생활이 지속되면서 혈압이 최고치까지 뛰었죠.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였어요.” 이처럼 신체적 질환으로까지 퍼진 우울증은 생명의 위협을 줄 정도로 위험해질 수 있다.

  우울증이라 더 우울하다

  “남들에게 숨기고 또 숨겼어요.” C씨에 게 우울증보다 괴로운 것은 주변 시선이었다. 우울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그를 의지가 약한 염세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런 시선은 그가 우울증이 있다고 밝히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는 십년지기 친구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우울증을 겪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우울증을 고백했다면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사람’ 혹은 ‘불 쌍한 사람’으로 바라봤을 거예요. 그런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우울증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고 증상은 더 심해졌죠.”

  증상을 숨긴채 살아가면서 C씨는 털어 놓지 못한 고민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어요. 생각을 내뱉지 못하고 삼켜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죠.” 그는 우울증이 의지가 나약한 탓이 아니라는 걸 사회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A씨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우울증을 겪는다고 말하지 못했다. “차마 가족에게 우울증을 알릴 수가 없었어요. 가족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평판과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에게 우울증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질병이었다.

  한편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다고 알려도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은 계속됐다. B씨는 우울증과 함께 상실감이 커져 주변 사람에게 우울증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 우울증을 말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친구들은 B씨를 걱정했다. 그러나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우울증을 밝힌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들이 걱정해줘요. 하지만 계속해서 우울한 감정을 호소하면 친구도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병세보다 무서운 병원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정신건강의학과는 너무나 멀다. D씨는 우울증 자가진단을 통해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이 보험 가입이나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 병원에 가지 못했다. “진료비가 부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신병원 방문 기록이 남는다는 게 두려웠어 요. 정신병원 진료기록이 있으면 사람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C씨 역시 우울증을 인지했지만 ‘마음의 병’에 걸린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며 외면했다. 그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우울증 증상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울증 증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치료를 받았다. “정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어요. 정신건강의학과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죠.”

  그러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힙합 뮤지션이 솔직하게 우울증 사실을 고백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다른 사람도 우울증을 겪는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껴 자신도 우울증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더는 우울증을 숨기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병원에 방문했다. 우울증을 숨기는 기존의 사회 분위기를 벗어나 우울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덕분에 그는 우울증을 바라보는 사회로부터 시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주변에 서 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관한 소문 때문에 걱정이 이어진다. 특히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처방받는 약이 독하고 중독되기 쉽다는 통념은 우울증 치료에 큰 걸림돌이 된다. A씨는 우울증 치료를 받을 때 약물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결국 수면제를 두세 알씩 먹었죠. 약효 덕분에 잠들 순 있었지만, 약물에 점점 의존하게 되 는 것 같아 무서웠어요.” 증상이 심해져 약을 먹는 순간에도 그는 ‘독한 약’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울증 환자는 정신적, 신체적 아픔을 겪 는다. 하지만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증상만이 아니다. 우울증과 정신건강의학과를 왜곡하는 렌즈는 그들의 고통을 잘못 된 프레임 안에 가두고 있었다. ‘나 우울증 이야’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 머리가 아프면 병원에서 편하게 증세를 설명하고 약을 받듯이,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마음 편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나본 우울증에 걸린 이들보다 우울증을 이상하고 낯설게 여기는 사회가 더 큰 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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